최근 나는 다시 일이 하고 싶은 마음에 채용사이트를 열심히 기웃거렸다.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서니 앞 숫자가 5로 바뀌기 전에 경력을 쌓아야 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급습했다. 늙은 나를 누가 써주겠느냐, 내 일을 하겠다 해도 경험 없이 했다간 하루아침에 빚만 쌓일 것 같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신감이 눈곱만큼이라도 남아있을 때 나가보자!
역시나 밟히는 게 많아 결국 제자리걸음. 큰 아이는 오히려 직장맘이 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으로 응원을 해 주고 있는데, 남편이 반대다. 손이 많이 가는 둘째를 초등 졸업 때까지만이라도 챙겨달라고. 둘째 나이에 엄마를 잃었던 남편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기 때문에 이번에 찾아온 마음의 동요도 아무 일 없었듯 일시정지시켜 놓는다. 그래, 나중에 뭐라도 할 수 있겠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나는 왜 이렇게 일을 고집하고 있을까.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전 세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 나에게는 반쯤이나 줄어든 느낌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덧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을 때의 내 공허함,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가까운 미래에 닥칠 것만 같은데, 그래서 소질이 없는 이 글쓰기에도 집착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많이 쓰지는 못하더라도 놓지는 말자는 심정으로, 내 독백의 공간에 지금도 끄적이고 있다.
나는 줄곧 커피를 마셔온 사람이다. 커피를 한잔도 마시지 않으면 거의 생활이 안된다는 카페인 중독자는 아니고 밤늦게 즐겨도 아무렇지 않게 잠을 잘 수 있는 커피 애호가. 눈뜨면 커피부터 생각나고, 커피 향이 맴도는 곳은 어디든 좋은, 갓 내린 커피의 혀에 닿는 첫맛의 행복을 즐기는 자. 그런 나의 눈에 우연찮게 들어온 바리스타 수업. 딱 두 자리. 그래, 그중 하나는 내 자리다 하고 바로 등록을 했다. 15년 전에도 기웃거리던 과정이었지만 그땐 꽤 고가의 수업이어서 전문 바리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면 말자라는 생각으로 접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이번엔 여성인력개발센터의 수업이라 적당한 가격에 오전 스케줄로 나 같은 주부에겐 제격이었다.
시시때때로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은 내 상상의 미래에 앞치마를 두르고 원두를 갈아 탬핑을 하여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내가 보인다. 간혹 나는 동네 사랑방 주인을 꿈꾸곤 하는데, 동년배들에겐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고 편안하고 친근한 입담으로 일상을 묻는 주인장으로, 어린아이들에겐 가끔 수학도 가르쳐주는 동네 할미로,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중고딩들에겐 엄마표의 건강한 홈메이드 간식도 내줄 수 있는 가게 주인아주머니로 살고 싶다. 화려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늘 옆에 두고 소소한 일상을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는 삶,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꿈꾸는 노년의 삶이다.
같은 기계, 같은 원두를 사용해도 커피를 내리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참 알면 알수록 신기한 커피의 세계. 한잔을 내려도 맛있는 커피이길 바라며 멋진 시니어 바리스타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내 모습에 오늘도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