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1호의 대나무 숲.
몸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마음보다 먼저 포기하지도 않고,
마음보다 먼저 거짓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조용히 신호를 보낸다.
처음에는 아주 작게.
잠이 줄어든다.
식사가 불편해진다.
가슴이 자주 뛴다.
그 정도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신호들을
“요즘 좀 바쁜가 보다.”라는
문장으로 정리했다.
문장을 붙이면
상황이 설명되는 것 같았다.
설명되면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설명은 해결이 아니다.
신호는 점점 커졌다.
새벽 2시가 되면 눈이 떠졌다.
알람 없이도 정확했다.
신기할 정도로 정확했다.
눈을 뜨는 순간
몸이 먼저 긴장하고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냥 깨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가장 시끄러운 건 생각이었다.
생각은 밤이 되면 커진다.
낮에는 견딜 수 있었던 것들이
밤이 되면 갑자기 무거워졌다.
작은 문제들이
갑자기 인생 전체가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매일 혼자 통과하고 있었다.
낮이 되면
나는 다시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출근을 하고,
업무를 소화하고,
사람을 만나고,
웃고,
이야기했다.
밤과 낮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낮의 나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밤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몸은 점점 더 직접적으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숨이 갑자기 가빠지고,
손이 떨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처음에는 놀랐다.
그다음에는 검색했다.
그리고 검색창은
아주 빠르게 답을 알려줬다.
불안. 공황. 수면장애.
나는 검색창을 닫았다.
검색 결과를 믿지 않기로 했다.
검색은 언제나 과장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또 시간을 미뤘다.
하지만 몸은
검색창보다 정확했다.
어느 날은
운전 중에 숨이 막혔고,
어느 날은 길을 걷다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느 날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 생각을 했다.
“이건 버티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 생각이 들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치료를 미루는 동안
삶이 멈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계속 진행된다.
일도 해야 하고,
약속도 지켜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한다.
그래서 더 늦어진다.
버틸 수 있으니까.
아직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사람은 완전히 무너지기 전까지
자신이 괜찮다고 믿는다.
나도 그랬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병을 미룬 게 아니라
나를 미루고 있었다.
나를 나중으로 미루고,
내 마음을 나중으로 미루고,
내 고통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나요?
그 나중은
언제쯤이라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