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가 나를 인정하기 싫었던 이유

5011호의 대나무 숲.

by 신정희 해피제이

나는 오랫동안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어 했던 것에 가까웠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찍 입사를 했고,

안정적인 직장인,

자기계발에 능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문장을

나에게 붙여 놓았다.


나는 강한 사람이다.

나는 잘 버티는 사람이다.

나는 이겨내는 사람이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 내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내가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건 지금까지 쌓아 온 나를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몸이 아프면 쉽게 인정한다.
열이 나면

“아, 감기인가 보다.”

배가 아프면

“병원 가야겠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면

이상하게 기준이 달라진다.

“이 정도는 다 힘들지.”

“내가 예민한 거겠지.”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


마음의 통증은

‘참아야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나는 특히 그랬다.
직장인으로 지내면서

정신과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메워진 나.
고로,

나의 커리어에 흠집이 나는 게 싫었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더 어려웠다.
마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무너져도 되는 걸까?”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논리다.

의사도 아플 수 있고,

요리사도 배고플 수 있고,

운동선수도 넘어질 수 있는데.
그때의 나는

나에게만 예외 규칙을 적용하고 있었다.
나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버텼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잠이 무너지고,

호흡이 흔들리고,

일상이 버거워져도

계속 스스로를 설득했다.

“아직 괜찮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지금 멈추면 안 돼.”
그때의 나는

나를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픔보다

‘아픈 나’가 되는 게 더 무서웠다.

아픈 사람이 되는 순간

지금까지 지켜온 모습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실망하지 않을까?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 두려웠던 건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었다.
나 자신의 시선이었다.
나는 약한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버티는 사람이었고,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고,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괜찮은 척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너무 오래 혼자였던 것뿐이었다.


인정은 패배가 아니다.

인정은 시작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늦게 배웠다.


당신은

어떤 모습을 지키기 위해

지금의 마음을 외면하고 있나요?


당신이 인정하기 싫어하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