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남자아이와 대화하는 법-1]

오늘도 너와의 전쟁

by 아루

오늘 오후 4시 30분, 큰 아이의 진료 예약이 잡혀 있던 날이다. 우리는 하교 시간에 맞추어 학교 옆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불안해서 이틀 전부터 여러 번 이야기해 두었다.


그런데 바쁜 일은 늘 겹치는 법이다.


현장학습을 다녀온 작은아이가 평소보다 늦게 하교했고, 늘 타던 학원버스를 놓쳐 내가 태워주기로 했다.원가 골목엔 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조급해진 마음으로 운전대를 움켜쥔 채, 아이와의 약속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가까스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역시,

큰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주차할 자리도 없고,

눈치를 보며 잠깐 정차했다가 다시 차를 돌렸다. 두세 바퀴쯤 같은 길을 돌다

결국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라면 냄새가 진동했다.

막 한 젓가락을 들려던 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다음은 불 보듯 뻔했다.


언성은 높아졌고, 아이는 그저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아무리 물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언젠가부터 그 특유의 낭창함을 장착한 채...


그 모습에 난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야, 그럼 엄마가 치매야?”


그 말에 아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어이없는 대답을 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순간, 숨이 멎었다.

이게 내 아들 맞나.

낯설었다.


“너 지금 엄마가 진짜 치매라는 거야?”

“아니, 그냥 뭐든 가능성은 0.1%라도 있으니까…….”


귀찮은 듯 툭 내뱉는 말투에

나는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결국

“네 마음대로 해.”

라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쾅 닫았다.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라 믿어왔는데,

그 순간의 나는 그저 감정에 휩쓸린 엄마였다.

억울했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자식 다 필요 없다.’

어른들이 하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한참을 앉았다가 누웠다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처음엔 답답함이었지만, 곧 분노로,

그리고 다시 섭섭함으로 변해갔다.


무심코 집어 든 전화기.

떠오른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전화를 걸자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편에게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그도 아이의 태도에 놀라며

전화를 끊고도 몇 번이나 다시 걸어왔다.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혼자 움직이는 게 어색했지만

남편은 이번엔 흔쾌히 그러라 했다.

가방을 챙기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가슴 한편이 허전했다.


낮에는 “엄마 사랑해.” 하며 웃던 아이였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전쟁이 되어버리다니.

폭풍전야였나 보다.


생각해 보면

‘치매’라는 말을 먼저 꺼낸 건 나였다.

아이는 간섭이 싫었겠지.

다운로드가 안 되는 컴퓨터 앞에서

예민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엄마는 결국 아이를 이해하려 애쓴다.

억울하고 화가 나도

결국 생각의 고리는 다시 그 아이에게 닿는다.


남편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애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냥 둘이서만 살 걸…….”


10년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처음 듣는 말이었다.


‘사춘기라서 그랬겠지.’

‘세대 차이 때문이겠지.’

이런 말로 스스로를 달래 보지만,

오늘 밤은 왠지 잠이 오지 않는다.


젊은 날 연애보다 더 생생하게,

엄마의 마음은 다시 뛰고 있었다.


너 때문에 웃고,

너 때문에 운다.


이런 마음을 언젠가 너도 알게 될까.

모르더라도 괜찮다.

엄마는 원래 그런 존재니까.


그제야 문득,

내 엄마도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이 든다.

나처럼 참았을까, 울었을까.

그 마음을 헤아리니 또 눈물이 난다.


결국 인생은

이런 감정의 파도를 넘는 일의 반복.

오늘도 그렇게 한 고개를 넘고 있는 나에게

그저 조용히, 토닥토닥 위로를 건넨다.


엄마도 상처받는 인간이다.

때로는 너보다 훨씬 더 나약한.


요즘 들어 아이와의 충돌이 잦아졌다.

서로 말은 하지만, 소통은 되지 않았다.

나도, 아이도 자기 말만 했다.


이제는 변해야겠다.

내가 먼저.


특히 약속 부분에서는

휴대폰이 없는 아이에게

메모로 약속을 남겨두어야겠다.

그리고 제발,

대화 전에 숨 한 번 고르자.


다음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오늘 엄마가 제대로 설명 못한 것 같아. 미안해.”

“약속 시간에 나오지 않아 마음이 조급했어.”


아이도 그때

작은 고개 끄덕임 한 번쯤은 해주겠지.


오늘은 그렇게,

나와의 전쟁을 잠시 멈춰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