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ello(1)

1. 활을 그으면, 기억이 울린다

by 아루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끝방. 붙박이장 거울 앞에 앉았다. 첼로를 다시 안은 건 꼭 스무 해 만이었다.


세월은 분명 흘렀다. 거울 속의 나는 많이 변해 있었지만, 첼로는 거의 그대로였다. 단단하고 견고한 몸체. 그런데 예전보다 어쩐지 조금 더 부드럽게 안겼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때문일까, 아니면 세월을 지나며 내 마음이 먼저 유연해진 걸까.


나는 첼로를 배우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현을 짚는 손가락은 늘 불편했고, 피아노처럼 또렷하게 떨어지는 음도 아니었다. 한동안은 아름답지 않은 소리만 계속 내며 연습해야 했다. ‘아름다운 소리’라는 목표 지점을, 겨우 여덟 살의 내가 이해하기란 무리였다.


처음 첼로를 접하게 해 준 전공자인 언니는 바른 소리를 내게 하려고 꽤 엄격했다. 나는 그 ‘무서움’도 싫었다. 연습실에 앉아 있으면 자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런데 조금 시간이 흐르자 ‘나비야’, ‘비행기’ 같은 동요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아주 조금 풀렸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학교에 처음으로 현악부가 생겼다. 마침 담임선생님이 현악부 담당이었고, 음악을 참 사랑하는 분이었다.


그때 첼로를 연주할 줄 아는 아이는 나 혼자였다. 현악부는 4학년부터 들어갈 수 있었기에, 3학년 동안은 줄곧 혼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소한 일이지만, 어린 나는 그 상황이 꽤나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만 가진 무언가처럼.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각자의 특별함을 스스로 모를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첼로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고 믿어왔다.


물론 우리의 첫 만남이 호락호락했던 건 아니다. 겉모습은 새침데기 같지만 속은 깊은 친구처럼, 첼로는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시골에서 첼로를 배우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애정과 열정으로 피아노도, 첼로도 사주셨다. 레슨도 간간이 이어갔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음악보다 먼저였다. 경제적인 사정도, 내 의지도 그 사이에서 조금씩 흐려졌다. 다시 불을 붙여보려 했지만, 첼로에 대한 사랑은 예전처럼 쉽게 타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스무 해 만에 첼로를 꺼냈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뭉클했다. 우연히 맘카페에서 본 취미 앙상블 모집 글, 그 글을 올린 선생님, 그 글을 눌러본 나 자신까지—모든 계기가 고마웠다.


잘 건조된 나뭇결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페그, 에프홀, 브리지. 각각의 곡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이 곡선들이 그 깊고 웅장한 소리를 머금고 있었구나 싶었다. 첼로를 안자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인간의 슬픔과 위로를 담아내기에, 참 잘 어울리는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 레, 솔, 도…’


한 음 한 음 활을 그을 때마다, 잠자고 있던 기억들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라—여덟 살의 첫 만남. 레—함께 연주하던 친구들. 솔—이모 집에서의 시간들. 도—나의 기쁨과 슬픔.


기억들은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운명 같았다.


내가 다시 첼로를 하게 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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