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ello(2)

2.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by 아루

(1) 나의 아빠

길을 가는데 어느 상점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이상은이라는 가수의 노래에 나오는 한 소절이다. 10대 시절 들었던 이 노래, 당시에는 ‘멜로디가 참 아름답구나.’ 정도로만 기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가사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 역시 그랬다. 계속 젊을 줄 알았고, 계속 사랑할 줄 알았다. 젊은 날이 계속 반짝반짝 빛날 줄 알았고, 소중한 이들도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우연히 들었던 그 노래는 며칠 동안 내 귓가에서 맴돌았다.


잊었던 첼로를 꺼내 더듬더듬 연주해 보았다. ‘미파솔파 미레 미레도 라라솔라솔도 미솔......’ 가슴은 아린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양쪽 입 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언젠가는’을 연주했는데, ‘my way’가 답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이 나이쯤 되니 이해할 것도 같았다. 습기 찬 유리창을 닦아내면 선명해지는 시야처럼 삶이 내게 말하려는 것이 또렷해지는 듯했다.

선명해진 시야로 보이는 아빠. 허무하게 떠나버리신 아빠가 생각났다. 9남매 중 여섯째였던 아빠는 형제들이 타지로 모두 떠날 때도 홀로 고향을 지키셨다. 아빠 밑으로 아직 미혼인 동생들도 돌봤다. 큰아들네로 가신다고선 끝내 가지 않으신 할머니도 94세까지 모셨다.


건강하셨고, 정직하셨다. 농사짓다가 기계에 팔이 끼이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강도에게 배를 찔리는 생사를 오가는 사고들도 있었다. 친척과 친구에게 빚보증을 잘못 서서 온 가족이 오랫동안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마지막 빚을 모두 갚은 지는 아빠가 이미 노년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만세를 불렀다. 빚을 갚고 남은 땅들이 문화재 보상지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바닥을 보이던 아빠의 자산도 다시 보름달처럼 채워가고 있었다. 이제 행복하기만 하면 됐는데......


그놈의 술.

엄마가 언젠가부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그놈의 술.


맞선을 보고 결혼한 부모님. 아빠는 원래 술을 드시지 못했다. 그래서 까다로운 외할머니 심사대에서 사위로 최종 합격 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외삼촌들은 주량이 셌다. 그때 아빠는 술을 배우셨고, 젊은 시절에는 술을 드시면 거의 조용히 주무셨다.


그러다가 노년에 가까울수록 각지에서 은퇴하고 돌아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드시기 시작했다. 아빠는 술이 많이 약하셨다. 인사불성이 된 다음날은 식사를 못 하셨다. 며칠을 못 드신 날도 있으셨다.


그렇게 술은 아빠를 조용히 갉아먹고 있었다. 처음으로 아내와 큰 딸, 작은 딸과 함께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그 전날까지 딸이랑 사위가 여행 보내준다고 자랑도 많이 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놈의 술도 같이. 내가 결혼을 하고 난 뒤에야 가족 여행을 몇 번 다녀왔다. 멀리 돌고 돌아 온 가족 여행. 어릴 땐 근처 유원지에 우리가 졸라도 엄마가 졸라도 한 번을 안 데려가 주시더니...... 하던 섭섭한 마음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는 소설처럼 갑자기 아프셨다. 그래도 이걸 반전으로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전후로 충격과 슬픔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에는 더했다. 늘 두통을 달고 있었고, 불안하고 두려웠다. 밑도 끝도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걸 떨쳐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침 그때 즈음나는 다시 시작한 첼로에 의지를 했다. 거실 한쪽에 놓여 있는 나의 첼로. 따뜻한 나무 빛깔의 첼로는 햇빛을 받으면 윤기가 돌았다.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스크롤부터 브리지, 에프홀까지 각각의 부드럽고 곡선은 마치 이아소(치료의 여신)의 우아한 손길이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2) 상실의 위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첼로곡 중에서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과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자주 켜곤 했다.


두 곡은 모두 시작부터 깊은 슬픔이 무겁게 쏟아져 나온다. 특히 재클린의 눈물은 그저 정직하게 슬픔을 표현한다. 그때의 내 마음처럼......


그리고 이 곡과 깊은 연관이 있는 자클린 뒤 프레라는 첼리스트의 인생 스토리까지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슬픔까지 전해지는 듯했고, 마치 그녀가 살아나 내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천재 첼리스트였던 자클린은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피아니스트 겸 세계적 지휘자와 개종까지 하며 결혼을 했다. 하지만 불치병인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28세에 전신 마비가 되고 결국 4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자클린의 남편은 그녀가 죽기 전 러시아 피아니스트와 바람을 피웠고, 자클린이 죽자마자 재혼을 한다. 홀로 쓸쓸히 병마와 싸우며 죽어갔던 그녀......

아빠는 물론 그렇진 않았지만, 결국 죽어가는 고통은 오롯이 혼자 감내하셨다는 생각에 또 가슴이 저려왔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슈베르트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작곡되었다. “매일 밤 잠들 때마다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했을 정도로 가난과 질병에 찌들어 있었다. 그래도 곡 후반부로 가면 밝아지는 리듬과 멜로디가 나오기에 슬픔을 한 단계 승화 시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다. 그런 점이 재클린의 눈물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빠를 잃은 나에게 위로가 되는 곡을 찾다 보니 자주 듣고 연주했던 곡이다. ‘나는 갑자기 왜 이 곡들에 꽂혔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병으로 고통받으며 돌아가신 아빠의 인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너무 아까웠고, 아빠의 고통을 오롯이 지켜보고 결국 아빠를 잃은 나도, 남은 우리 가족들도 안쓰러웠다. 인생은 끝이 있기에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맞지 않는 말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시간 동안 재클린의 눈물로 슬픔을 쏟아내고,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로 슬픔을 다시 회복하고 싶었나 보다. 상실의 위로.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고, 멋진 곳에서 바람을 쐰다고,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위로받을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이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정말 몰랐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몸은 그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일상으로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잘못을 하고 혼날까 봐 못 들어가고 집 주변을 맴도는 아이 같았다. 겉으론 아닌 척 살고 있을 뿐.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문득문득 내 마음이 집 주변을 돌고 있으면, 나는 첼로를 안았다. 첼로의 나무빛깔이 눈부터 선하게 만들었다. 어쩜 그을린 아빠 팔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첼리스트 같은 아름다운 소리는 아니지만 부드럽고 깊게 울리는 소리는 뭔가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리고 편안하게 안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연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보면 활을 잡은 오른 팔도 현을 짚는 왼 팔도 온통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빠와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서투른 표현을 하던 부모 자식. 술 한 잔 드셔야 속마음 얘기하시던 아빠, 먼저 다가가 깊은 대화 나누지 못했던 아빠 닮은 딸, 나.


뒤늦었지만 그렇게 나는 종종 첼로를 켜며 떠나고 없는 아빠를 이해하려 꽤 오랫동안 노력 했고, 어느 순간 마음으로 잘 떠나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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