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옥미 Jun 24. 2022

나만의 리듬으로..

뻔한 결말은 재미가 없지.




내 인생의 황금기였던 20대에 경상북도에 위치한 사회복지 시절에서 간호사로 6년을 근무했다.  조현병, 알코올 중독, 우울증  정신질환 앓고 있는 환자 케어하는 시설이었다. 30 전에는 사회 인식이 부정적이기도 했고, 병에 대한 무지함도 있어서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힘든 정형편 때문에, 병원이 아닌 사회복지시설을 선택했었다.


20 어린 나이임에도  거리낌 없이 씩씩한 모습으로 환자들과 보낸 시간이 지금 생각해보면 신통하기도 하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러나 무식이 용감이라고 겪어 보지 않은 삶에 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당차게 보낸 것 같은 시간들이 쉽지 않았던 나의 가장 빛나는 20대는 실상 외로웠고, 버거웠고, 무서웠다.  


도시와는 떨어진 곳이다 보니 시설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고, 시설과 가깝게 위치한  한켠이  외의 시간을 보낼  있는 전부였다. 분출하지 못하는 나의 열정과 갈망 기타 하나와, 책, 음악으로 달래며 버텨냈다. 꾹꾹 누르며 견뎌냈지만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이런 삶을 계속 살아낼 자신이 없었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며 갈등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계속 살게 된다면..' 머리가 저어졌다. 나의 젊음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이 라이프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기로 결정했던 용기로 사표도 과감하게 냈다.


막상 고향인 인천으로 올라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슬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유흥이나 놀이에 관심이 없었고 오랜 기간 동안 지방에 있어서 연락되는 친구도 많지 않았다. 남은 시간을 학원도 다니고 또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매일이 불안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늘 따라다녔다.

젊은 날 그 많은 시간은 연기처럼 사라진 듯했다. 해보지 못했던 일에 대한 미련, 조금만 용기를 냈다면 잡을 수 있던 기회에 대한 아쉬움, 남는 시간에 여유 있는 쉼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조바심만 남았다.


그렇게 여전히 흔들거리는 여린 가지와 같았지만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새로운 인생을 살다 보면 겪을 수 있는 일들을 통해 생각과 방향이 넓어지는 것처럼 결혼을 통해,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갔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 닥쳐온 수많은 시련 속에 단단해져야 했고, 견뎌내며 매일 무너져 버리는 마음을 꽉 붙잡아야 했다. 젊은 시절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많은 것에 도전하게 되었다. 더 용감해졌다.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도록 권면하는 오지랖도 태평양만큼 넓어졌다.

 

젊은 시절에 괜찮다고, 누려도 된다고 말을 해줬더라면, 그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느라 시도해보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은 덜 들었을 텐데, 살아보니 두려움 때문에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아쉬움은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시도해보라고, 도전해보라고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권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살아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살아내는 것을 보면 나이 많은 사람이 쉬지 않고 도전하고 시도하는 모습에 용기를 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험으로 상대의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성처럼 보이는 열정적인 권면이 누군가에게는   괴리감과 낙심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SNS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받는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다들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더 좌절과 자괴감을 가지게 한다. 뭘 그렇게 까지 생각하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느껴보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겪는 감정까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이 내 맘처럼 되지 않았다. 나의 의지와 인내, 견딤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잦은 빈도로 내 일상을 파고들었다. 그때의 무력감, 좌절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 누군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아픔과 절망스러운 일을 겪고 있겠지? 다른 이들의 행복이 쓰디쓰게 느껴져 더 힘겨운 사람도 있겠다"

열정 다해 살았던 시간이 점점 나와 멀어지고 있다. 이젠 버겁고 힘든 일상이 친구처럼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런 내 인생도 이해받기 바라는 마음처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는 눈이 깊어지길 바란다.


맴임 씀방에서  해피딩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을 자주 했다. 우리는 사회적 통념으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글의 귀결이 세상에서 요구하는 답으로 정리해야   같은 본능이 작동한다. 정답처럼 답이 정해진 것 같은 결론을 우린 많이 보아왔다. 책이든, 드라마든, 교훈이든, 권면이든,, 그러나 우리 삶의 귀결이 어디 정답이 있던가? 뻔한 결말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삶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살아내는  자체만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진심이 담긴 결말이라면 해피딩도 새드딩도 읽는 자의 몫으로   있을 것이다. 나의 열심이 모든 자에게 힘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스스로도 페이스를 찾아야 한다는 결단의 기회로 삼았다. '나의 경험을 모두에게 대입시키지 않고 정답처럼 말하지 말자! 지나친 과 사랑 누군가게는 버거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꼰대는 되지 않기를.. 지혜를 구하고, 사랑을 구한다.


젊은 날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지금이라고 다 떨쳐지겠는가? 내 남은 인생에서 비록 넘어지고, 깨지고, 좌절할 일이 기다리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희망과 기쁨도 있으리라 믿는다. 내 생각과 고집을 나에게도 타자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리라. 나의 리듬에 맞춰 최선을 다하든, 천천히 걸어가든, 쉬어가든 가보는 데까지 가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오지랖과 사랑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