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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Jul 12. 2022

내일 만나~ :)

나의 내일아 함께 걷자.




하루를 마무리하며 달빛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근 3개월 동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살얼음판 걷듯 매일 조심스럽지만 일상의 루틴을 찾아가는 중이다..


난 병원에만 가면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하는 것을 정확히, 끝까지 말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의사는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답을 내렸다. 그리고 다른 의사의 진단을 폄하했다. 처음 어지럼증이 왔을 때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를 하고 메니에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예전에 이석증 증세와 좀 다른 양상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4월 한 달 동안 이석증이 5번 재발했다. 그때마다 병원에 가서 이석 치환술을 받았다. 이석 치환술을 받을 때는 이석을 제자리에 넣기 위해 뒤로 쓰러트리고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린다. 영화에서 나오는 회오리 사탕처럼 세상이 뱅글뱅글 돈다. 심할 때는 구토도 나온다. 몇 번의 이석증 재발은 일상을 흔들어놨고 번개 맞은 듯 몽롱한 상태로 겨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석증과 메니에르라는 병명으로 치료를 했지만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남편은 여기저기 알아보고 귀 질병을 전문으로 하는 한의원을 알아왔다. 딱히 방법이 없었던 난 남편 손에 이끌려 한의원으로 향했다. 한의사는 내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꼭 내가 이석증이 아니면 안 될 이유가 있는 것처럼 메니에르는 아니다! 열을 내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내가 메니에르라고 진단을 내린 사람도 아니고, 의사도 검사를 해서 낸 진단명을 몇 마디 듣지 않고 어린아이 혼내듯이 얘기하는 한의사를 향해 욱하는 성질이 올라왔다.

"제가 혼나러 왔나요? 왜 이렇게 혼을 내세요?" 차분히 감정을 누르며 한마디 했지만 용암이 끓어 올라온 듯 감출 수 없이 겉으로도 화끈거림이 드러났다. 나의 반응에 한의사는 좀 당황한 듯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쨌든 한의원에서 이런저런 비싼 검사를 했다. 그날 귀에 약침을 맞았고 머리와 손, 다리에 침도 맞았다. 다음 날 그렇게 힘들게 했던 어지럼증이 많이 호전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있었는데 약침을 맞고 큰 어지럼증이 좋아졌으니 어쩌겠나, 한의사가 말하는 대로 비싼 한약도 짓고, 고분고분하라는 대로 따를 수밖에. 다행히도 약침을 시술하는 한의사는 여자분이어서 진료를 본 원장님과는 마주치지 않았다. 말이 안 통하거나 단절된 느낌이 드는 사람과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어 버리는 성격이니 어쩌겠나..


문제는 한의원 치료를 받고 한두 주 사이에 약 80% 정도 호전이 되었지만 누웠을 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아득해지는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다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에 한 달 넘게 한약과 약침을 맞으며 다녔는데 20% 남은 증세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분명 한약을 더 먹어야 한다고, 약침을 계속 맞아야 한다고 강요를 할 것 같은 원장님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석증이라고 확고하게 정해놓은 분이 내 증세를 뭐라 할지 듣고 싶지 않은 꼬인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이석증이 아닌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돼서 남편은 잘한다는 신경외과를 검색해서 알아왔다. 미리 예약한 신경외과에는 환자가 많았다. '음.. 용한가 보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그동안 치료받은 내용을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의사는 또 내 얘기를 끊었다. 그리고 "뭐가 중요하냐!! 이러다 큰일 난다. 몸이 쉬라고 아우성치면 말을 들어라.. " 등등 잔소리를 한 보따리 들었다.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상황이 안되니 도움받으려고 진료를 받은 것이 아니냐고 겨우 입을 뗐다. 의사는 내 증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알약 하나씩 매일 세 번과 자기 전에 먹는 약 한 알을 처방받았다. 처방약 봉투에는 약 이름만 기록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약일까 궁금해서 집에 와서 검색을 했더니 우울증 약과 신경안정제였다.


충격이었다. 아마 의사는 내가 갱년기 여성에다 무리하게 일을 하고 있고, 예민해서 느끼는 통증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신경안정제와 우울증 약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마음은 상했지만 혹시나 호전될지 모르다는 생각에 약을 이틀 정도 먹었다. 증세가 호전되기는커녕 메슥거리고 어지러운 증세가 더 심해졌다. 약 부작용 같았다. 다른 병원에 가는 것조차 엄두가 안 났다. 말하기 전에 잘려 버린 뒷 말들을 다 풀어내 본들 이 불편한 아픔에서 해방시켜 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런 답답한 만남을 더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어지럼증이나 통증도 반복되면 익숙해지듯이 인생의 반려 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스스로 치료가 될 수 있도록 운동과 식이요법, 영양제 등을 챙겨 먹었다. 그중에 하나 예전의 페이스로 돌아가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걷기를 시작했다. 몇 년 전에 걸으면서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체중도 빠진 경험이 있어서 언제든 걷기만 하면 또 그 영광을 얻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다. 일 년 반 전에 새로 일을 시작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과로, 걷기를 할 수 없을 만큼 빠듯한 일정 때문에 건강이 급속도록 안 좋아졌다. 거기에 갱년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석 달가량 이석증인지, 메니에르인지, 아니면 우울증 일지 모를 아픔을 겪으면서 정말 최소한 포기하지 말아야 시간을 나에게 선물해줘야 함을 깨닫는다. 병원 치료로도 해결되지 않는 아픔은 언제든 날 힘들게 할 것이고, 마음의 버거움도 따라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와 함께 가야 할 친구라면 좀 더 친절하게, 느슨하게 맞아보자.




지난주에는 초승달이 어찌나 예쁘던지 달빛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했었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처음에는 1~2km를 걷기도 힘들었다. 점점 늘려 4~5km를 걸었다. 오늘 밤은 살짝 덜 채워진 보름달을 보며 6km를 걸었다. 달빛을 벗 삼아 도란도란 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내 이야기를 절대 자르지 않는다. 묵묵히 다 들어준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언젠가는 어느 틈에 괜찮아져 있는 날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을의 철학 송수진 작가는 친구와 이야기하다  "문득 ‘아, 내일도 이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라고 했다. 나에게도 내일 또 내일이라는 반복되는 날 속에서 함께 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가장 가까워야 할 나 자신과 매일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다 풀어내지 못하고 스스로 잘라버린 뒷 말을 조근조근 얘기해주고 싶다.

p270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아, 내일도 이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시간의 반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에 눈물이 차올랐던 적도 있다. 그래서 괜히 더 감사하게 느껴지는 어찌하지 못하는 이런 감정들.--중략-- 늙어간다는 것과 죽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철학자들의 언어에서 다시 배운다. 그들의 언어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가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을의 철학 -송수진-


내일이면 보름달이 뜨겠지만 장맛비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확실하지 않은 내일이 있기에 기대할 수 있다. 비가 와도 비가 안 와도, 조금 더 아파도, 덜 아파도 내일을 기다릴 수 있다.

언젠가는 나의 내일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당연하지 않은 내일을 꿈꾸고 기다린다. 오늘이 벅차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일 만나. 나의 내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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