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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윤 Nov 20. 2022

엄마는 올해 30년 차 직장인

퇴사할 때마다 가장 신경쓰인 사람은 엄마다. 그래서 이제는 퇴사에 대한 고민을 말하지 않는다. 퇴사일을 결정하고 엄마에게 퇴사하게 된 이유를 후보고한다. "퇴사가 하고 싶어"가 아닌 "퇴사하기로 했어"로 말문을 시작해 나만의 타당한 이유를 열거하며 엄마를 납득시킨다. "자식이 행복해야 부모가 행복한 것을 알고 있다."며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퇴사야."라고 엄마를 반협박하는 사람, 바로 나다. 


엄마는 올해 근속 연수 30년, 그것도 한 직장에서만 근무하고 계신다. 2020년에는 16년 째 역임한 팀장 역할을 내가 결혼함과 동시에 내려놓으셨다. 엄마는 회사란 재미로 다니는 곳이 아니며, 그곳에서 책임과 인내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보통의 엄마처럼 본인의 딸이 안정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길 원하셨다. 하지만 난 그녀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성장이 즐거운 내가 성장하지 않는다고 느끼는데 월급을 위해 한 회사에 버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일이 재밌다면 일을 잘하게 될 것이고, 일을 잘하면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회사의 성장에도 일조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재미없는 일을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이 책임과 인내를 배우는 것과 무슨 상관관계일까 싶었다.


이제는 그녀가 말한 책임과 인내가 무엇인지 안다. 엄마에게 책임과 인내란 오롯이 본인만이 아닌 가족을 향한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본인이 지치고 힘들 때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표현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그만둔 적이 없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한 엄마에게 일이란 성장의 척도가 아닌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더욱이 막내딸의 퇴사소식에 가슴을 철렁하며 걱정하시곤 했다. 왜냐하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지금껏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준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옳다고 판단하는 선택들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야 후회가 있든 없든, 월급쟁이가 되든 백조가 되든, 결국 스스로 결정해야 후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가 딸의 퇴사 소식에 적응할 날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멈춘 적이 없다. 때문에 오늘도 엄마에게 말한다. 지금처럼 저를 믿고 응원해주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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