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은 왜 달콤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까?

달콤함이 기대가 되는 순간

by 지난

달콤함을 일컫는 말,

달코하지만 몸에 좋다고 여겨지는 허니, 스위트

그 말들 위에 조심스럽게 붙여진 이름, 허니문


우리가 달콤하다고 상상하는,

혹은 한때 분명히 믿었던

허니문의 결말은 무엇일까.


지난 주말,

그 허니문의 시작을 알리는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보다 허니문이 더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허니문이라는 기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

따뜻한 마음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를 기다리고 바라보는 연애와는

조금 다른 시간.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문학적으로, 학문적으로, 통상적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허니문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만 해도 떨리고 두근거리고

마냥 좋기만 한 시간일까.


누군가에게 말하면
“아, 그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말이고,
또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런 게 어딨어” 하고 웃으며 흘려보내는 말,
허니문.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달콤함이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감정일까를 생각했다.

달콤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아무 의심 없이 기대해 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허니문은
끝없이 달기만 한 시간은 아닐지도 모른다.


설탕처럼 빠르게 녹아 사라지는 단맛이 아니라,
혀끝에 남아 천천히 퍼지는
쌉싸름함을 함께 품은 맛.
처음엔 달콤해서 웃음이 나고,
곧이어 씁쓸해서 잠시 말을 멈추게 되는,
초콜릿을 한 조각 깨물었을 때처럼.


허니문은 아마도
사랑이 가장 설레는 얼굴로 등장해
현실이라는 이름의 온도에
처음 닿는 순간일 것이다.


달콤함만으로는
오래 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조용히 알게 되는 시간.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사람은 웃으며 부정한다.


허니문이란
달콤하다고 믿고 시작하지만
쌉싸름함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연습.


그리고 그 쌉싸름함이
사라지지 않고 입 안에 남아 있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사랑이란

달콤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맛을 끝까지 삼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계속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