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은 얼마나 오래 유지되어야 할까

설렘이 기준이 될 때

by 지난

설렘이라는 말은

언제나 긍정적인 얼굴로 등장한다.

처음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

메시지를 기다리는 마음,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어지는 감정.


설렘은

관계가 잘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언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묻는다.

아직도 설레?


그 질문 속에는

설렘이 사라졌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은근한 기준이 함께 섞여 있다.


설렘은 얼마나 오래 유지되어야 할까.

한 달일까, 일 년일까,

아니면 어떤 관계의 단계까지

의무처럼 남아 있어야 하는 감정일까.


설레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관계를 돌아보기보다

먼저 마음을 의심하게 된다.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 식어버린 건 아닐지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재단한다.


나는 가끔

설렘이 줄어든 자리에 남아 있는 감정을

너무 서둘러 이름 붙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한다.

익숙함을 권태로,

안정을 무관심으로,

편안함을 식어버린 마음으로

쉽게 바꿔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설렘은 본래

지속을 전제로 만들어진 감정이 아니다.

새로움 앞에서만 반응하는

몸의 자연스러운 신호에 가깝다.

그 신호가 줄어드는 것은

관계가 잘못되어서라기보다

관계가 다른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표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설렘이 사라지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설레지 않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닐지,

관계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신호는 아닐지

미리 겁부터 먹는다.


하지만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이

무관심인지, 익숙함인지는

생각보다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조용히 곁에 머무는 마음,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믿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될 거라는 확신.

그 감정들은

설렘만큼 눈에 띄지는 않지만

관계를 더 오래 지탱한다.


설렘은

시작을 알리는 감정이고,

지속은 선택의 영역이다.

설레지 않는 날에도

함께 있기로 결정하는 것,

그 반복 속에서

관계는 다른 밀도로 깊어진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설렘이 사라지는 순간을

두려워해야 할까.

아니면 그때부터

비로소 다른 형태의 마음을

배워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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