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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Oct 04. 2024

이 이야기 참 좋다.

삶의 발명 _ 정혜윤

인간이 사랑을 발명했다는 시인이 있고, 신을 발명했다는 평론가도 있고, 이야기를 발명했다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이제 삶을 발명한단다. 어떻게? 

여기 이야기를 찾아 다니는 이야기 수집가가 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어딘가 다른, 좋은 에너지를 품은 이야기를 찾아 세상에 내어 놓는 이야기 보부상, 아니 소매상인가? 자신이 만난 이야기의 에너지로 하루하루 삶을 발명해가는 사람, 좋아하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삶을 살아가는 사람. 세월호 참사와 조선인 전범,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 등 우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고개 돌린,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의 속살을 용감히 마주하고, 그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이 한 발 나아가기를 바라는 사람. 그가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냐'고. 그가 전해 준 ‘앎, 사랑, 목소리, 관계, 경이로움, 이야기’의 발명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나눠보았다.

 

 

1. 전체적인 감상, 각각의 발명 중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었는가? 혹은 아쉬웠던 이야기는? 

유 : 2007년 이 작가의 <침대와 책>이 나온 얼마 후 내 첫 책 <그녀의 프라다 백에 담긴 책>이 나왔다. 나혼자 은근 라이벌 느낌을 가졌다. 그 책은 잘 팔리기도 하고 표지도 예뻤다. 그런데 책장을 세 장정도 넘기고는 문체가 너무 혼란하고 나랑 안맞아서 덮었다. 그후 이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았다. 그로부터 17년 정도 지난 지금 이 작가의 책을 읽으니 ‘아, 에세이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했다. 특히 고래가 죽은 고래를 계속 떠받치기 위해 점핑하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포로 감시원이라는 존재도 처음 알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콰이강의 다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전혀 모르던 이야기라 놀라웠다. 좀 아쉬웠던 부분은 ‘경이로움의 발견’이 다른 부분들과 성격이 많이 달라 책의 분량을 채우려고 넣어둔 느낌이었다.  

 

주 :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이런 전개 방식은 나와 맞지 않았다. 특히 ‘경이로움의 발견’은 화자가 누구인지 시점이 너무 헷갈렸다. 그래도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얘기가 나왔던 고래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았고, 그 외에도 ‘거북이 알’이야기가 좋았다. 흑두루미 울음소리는 궁금해서 찾아보기까지 했다. 

 

효 : 경험을 이렇게까지 깊고 넓게, 범인류적 범우주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을 다층적으로 느낄 수 있다니 놀라웠다. 물론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러다가 ‘경이로움의 발견’을 읽는데, 왜 앞쪽이랑 느낌이 다른 걸까, 왜 안읽히지, 다들 분들은 어떤가, 나만 이런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다들 비슷하게 느꼈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그 부분을 빼면 이 작가가 생각하는 관계나 방식 등이 경이롭게 느껴져 약간 벅찼다. 고래 이야기도 영화나 드라마처럼 감동적이었고, 세월호 관련 이야기들은 이제는 좀 잊혀지고 있다 생각했는데 다른 맥락 속에서 환기시켜주는 부분이 좋았다. ‘나는 사랑은 창조행위라는 말을 그들을 보면서 이해한다’라는 문장에서는 뮤지컬 <헤드윅>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나 너무 좋았다. 

 

매 : 이 책의 ‘들어가며’가 별로였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정리가 안된 느낌. 그런데 본문이 너무 좋았다. 특히 전범 이야기는 감탄사가 나올만큼 놀라웠고, TV프로그램 <꼬꼬무>를 보는 느낌이랄까. PD라는 작가의 직업이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 글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들을 다시 편집해 그 의미를 연결하고 풍성해지는 방식이 굉장히 훌륭하게 느껴져 주변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경이로움의 발견’ 전까지는 대단한데?!하면서 집중해서 봤다. 그리스는 내가 잘 몰라서 재미가 없는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그 부분이 길을 잃은 것은 작가의 첫 그리스 경험이다보니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유능한 작가도 이런 과정이 있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ㅋ

 

광 : 첫 챕터 ‘앎의 발명’에서 임팩트가 되게 컸다. 아마존 원주민 얘기를 하다가 무방비상태에서 본론이 훅 들어오는 방식이 되게 충격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다음부터 또 뭔가 엉뚱한 센 것이 들어오겠지 했는데 그렇지 않아 오히려 좀 부작용도 있었던 것 같다. 차라리 이 글들을 한 번에 책으로 엮지 말고, 한 편 읽고 여운이 좀 가시고 나면 또 읽고 이랬으면 좋지 않았을까. 짧은 책이라 2~3일에 후루룩 읽게 되니 그게 좀 아쉬웠다. 


 

2. 내가 좋아하는 류의 이야기, 혹은 좋아하는 이야기 플롯은? 

정 : 성장담, 꽉 닫힌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결국 영화나 소설 등 지금 우리가 하는 상상과 이야기가 미래의 풍경이 될 확률이 높다. 인간이 생각하는대로, 말하는대로, 꿈꾸는대로 미래상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기대하고 상상할 수 있는 생각의 경계, 상상의 한계를 좋은 쪽으로 확장시켜주는 희망적인 작품이 많아지길 바란다.(보건교사 안은영, 우영우, 나의아저씨, 무브투헤븐 등)

 

효 : 성장담을 좋아하고 그런 이야기에 늘 자극을 받지만, 결말은 딱 정해져 있지 않은 열린 결말, 얘네들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면 더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공연을 볼 때는 비극이 오히려 세게 남는다. 천재들이 비극을 맞이하거나, 폭삭 망한 사랑이야기(절대 성공한 거 말고) 이런 게 훨씬 재미있다.

 

매 : 디스토피아적 열린결말을 좋아한다. 성장담은 딱 재미없고, 너무 뻔하게 느껴진다.

(유:너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아) 그럴 수도 있어요. ㅎㅎ

(유:작가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뭔줄 알아? 성장이 없잖아요, 이띠, 성장 너가 해)

(효: 그런데 그런 말 있잖아요. 모든 이야기는 결국 성장담이다.)

매 : 그래서 저는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ㅎㅎㅎ 뭔가 여운을 남기는데 이게 뭐지? 하는 이야기. 

 

유 : 이 질문이 뭔지 몰라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왜 그랬을까’ 질문이 떠오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은 개인적으로 미친듯이 파고들었던 이야기이다. 도대체 저 여자에게 무슨 매력이 있어서 남자들이 당한 걸까, 저 심리는 뭘까,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질문이 드는 이야기.

 

광 : 보통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괴짜, 천재’들이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이해받거나 사랑받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특히, 팀버튼의 이야기들. 플롯의 경우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우리의 고정관념을 트릭으로 쓰는 걸 무척 좋아한다. 내가 이런 고정관념에 갖혀서 진상을 파악하지 못했구나 하고 알게되는. 

(정 : 그런 작품 추천해주세요.)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그렇고, 

<명탐정의 재물>은 인민교회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사이비 집단 소재의 추리소설인데, 2023년 일본 추리소설 베스트다. 







주 : 드라마는 로맨스. 남녀간의, 가족간의 사랑, 관계를 다루는 작품을 좋아한다. 플롯은 ‘광’과 비슷한데, 거기다 딜레마를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 (모두 : 어우 피 말라) 한 쪽 이야기를 들으면 완전 공감했다가, 반대편 얘길 들으면 또 반대로 끌려가는, 갈팡질팡하는 그 상황을 좋아한다. 또, 일상 속 작은 영웅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사람들.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하거나, 식당에서 갑자기 쓰러진 사람을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와 구하는 이야기를 보면 온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그래서 좀 힘들 때면 일부러 그런 기사나 영상을 찾아보면서 힐링한다. 


 

3. <앎의 발명> 최근에 확장된 앎의 지도가 있는지?

정 : 이책. 최근들어 포스트잇을 많이 붙인 책 중에 하나다. 전범은 다 전범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는 A급과 B급이 나뉘는 게 이런 의미인지 몰랐고, B급 전범의 죄질이라고 해야 할지, 이게 죄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악역을 맡을 줄 몰랐던 것. ‘악의 평범성’의 대명사 아이히만이 주장한 ‘나는 그냥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요’라는 의미를 좀 더 이입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게 기본값, 열심히 산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도덕적 부채감을 덜어낼 명분이 있다 생각하기도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가치들을 마주했을 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D.P> 속 황병장처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지? 시점을 좀 앞으로 보내서 ‘지금은 맞지만, 내일은 틀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악의 평범성이라고 욕을 할 수 있나,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던 사정을 이해해야 되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거다. 물론 변치 않는 (클래식이라 부르는 고전적인, 성경적인) 가치들이 있지만, 아주 사소한 영역까지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질문들이 앎의 지도가 확장되는 경험이었다. 

 

옥 : 독서량이 적고 시각의 폭이 넓지 않은데 섬북동에서 같이 책을 일을 때마다 앎의 지도가 확장된다. 예를 들어 쿠팡맨 책.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서 그들을 욕하는 것만 많이 보다가, 책을 읽으면서 실제적인 상황과 맥락을 알게 되니 그게 단편적으로 안보였다. 함부로 쉽게 얘기할 수 없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앎의 지도가 넓어졌다 느꼈다. 

 

유 : 드라마 <굿 파트너>를 보면서 양육비 소송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대사 중에 ‘지금 이 4명 중에 가장 큰 손실을 보는 사람이 그 분이다, 돈을 20억을 주겠다는 건 그만큼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나중에 애들이 엄마를 안 만날것 갖냐’라는 말을 듣고 ‘와, 내가 생각했던 것과 해결되는 것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를 보고 일제강점기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이 아닌 ‘일본씨’이라 불리며 30여년을 일본으로 돌아가지도 못해 어머니의 임종도 못지킨 사연을 보고 또 저런 역사의 그늘이 있구나 알게 되었다. 

 

효 : 혹시 연극 <빵야> 보셨는지? 한 드라마 작가가 소품창고에서 일본 구식 총을 발견하는데, 그 총의 시점으로 총을 스쳐간 주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비극이 계속 이어져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그 중 제일 비극적인 것은 일본군이 남기고 간 총으로 우리나라 남과 북이 서로 싸웠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총은 여러 작품에 끌려다니며 끝나지 않는 전쟁을 계속 겪는다, 현재까지도 비극이 끝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처음 일본 장교의 손에서 태어나 한국 사람을 쏘다가 반대로 한국인의 손에 넘어와 일본인을 쐈을 때 속시원했을 거 같다는 작가의 말에 총은 대답한다. ‘죽이기 위해서 죽이는 것과 살리기 위해서 죽이는 것이 뭐가 다른가, 총은 결국 총일 뿐이다.’ 세계적인 전쟁 문제를 이 연극을 통해 더 넓게 생각하게 되었고, 어떤 시선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광 : 가벼운 얘기를 하자면, 이 책을 통해 흑두루미가 되게 귀한 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봄이 되면 동네에서 흑두루미를 본다. (모두 : 와!! 좋은 동네산다!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어!) 집에서 한 2~30분 걸어나가면 강가에 있다. 처음엔 흰 두루미가 보이다가 까만 두루미가 있어 놀랐는데 보다보니 익숙해졌다. 

 

주 : 친구가 아이를 낳고 도움을 청할 때가 있다. 가까이서 보면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육아의 세계와 찐유부녀, 엄마의 입장에서 말하는 육아는 완전 다른 것 같다. 친구가 엄마모드로 희생적인 모습을 보일 때, 다른 환경에서의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4. <사랑의 발명> 세월호 유족들이 선택한 정체성은 '사랑하는 자'이다.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생각하고 행한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인생 명함’을 만든다면 뭐라고 쓸 것인가?    

 

광 : (질문을) 잘못 읽었구나. 

정 : 그럼 어떻게 생각을? (질문을 명확하게 하지 못한 저의 불찰에도 성실히 답해주심 감사합니다)

광 : (내가 유족의 입장이라면 어떤 정체성을? 이라 생각함) 복수하는 사람. 복수 계획부터 짜고. 왜냐하면 가족을 죽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원인, 최종점에 가장 큰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먼저 파악해야지. 최종빌런이 누구냐 따라 계획이 달라짐. 책임자를 결국 제대로 벌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참사가 일어나는 것.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역사를 봐도 대체적으로 참사의 가장 큰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한 사례가 거의 없지. 

정 : 책에서도 A급 전범은 일본의 수상이 되었는데, B급 전범은 그 자손의 삶까지 피폐해진…

 

매 : 처벌도 처벌인데, 사과하지 않는 문화가 화가 나요. 잘못된 점을 짚고 넘어가야하는데 스윽 사라지니까. 

유 :  난 최근에 누가 나한테 잘못을 해서 사과를 받았어.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게 하나도 내 상처에 도움이 안되는 거야. 그래서 왜 그런가 열심히 생각을 해봤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사과를 하긴 했는데 진심으로 한 게 아닌거야. 일단 내가 상처받았다니까 사과를 하긴 한건데, 보통 진짜 미안한 사람들은 미안할 짓을 안해. 그래서 난 ‘나에게 사과해’라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사과 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효 : 그 사람에게 똑같이 복수한들, 또는 사과를 받은 들 뭐가 달라질까, 생각하니 착잡합니다. 

광 : 일단 개인적인 해결은 없을 것 같고, 정신적으로는 재발금지 정도가 최선이겠죠. 

효 : 그래서 세월호 유족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재발방지’ 인 거겠죠. 

매 : 어떤 사건을 겪은 가족들이 방송에서 말하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에 담긴 의미와 그 깊이를 우리가 몰랐죠. 

 

그리고, 생각한 각자의 정체성 키워드

유 : 글쓰는 이유정, 그리고 걷는 사람 Writer, Walker (묘비명 : 적어도 끝까지 걸었다.) 

주 : Dreaming, Writing, -ing (꿈꾸는, 쓰는, ~현재진행형 사람)

효 : No day but today, 오늘을 사는 자  

 


5. <목소리의 발명> p.118 '00를 사랑하게 된 그 시간에 감사드린다’는 문장을 채운다면?

유 : 이렇게 적어놨어. ‘00이’ 칠면조나 새는 아닌데 (모두 : ㅋㅋㅋㅋ)

 

주 : ‘나’를 사랑하게 된 그 시간에 감사드린다. (모두 : 우오~ 완전 자기중심적, 찐mg)

가끔씩 스스로가 너무 싫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내 자신이 너무 좋을 때가 있다. 일전에 친구를 위로할 때 내 말에 친구가 감격해서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다가 내 말이 너무 멋있어서 ‘아 나 오늘 위로 찢었다, 위로하는 나 너무 멋있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좀 흐르고 친구가 그때 그 말 때문에 자기가 아직도 버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 ‘역시, 나야’ 하면서 좀 도취되었다. 순간적으로 내 자신이 너무 만족스러울 때, 그때 ‘너무 감사하다, 내가 나여서 너무 감사하다’ 그런 생각을 한다.    

 

모두 : 대체 이 질문의 의도가 뭐야? 

정 : ‘삶은 결국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말할 줄 알게 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되니까, 그런 것들이 있는지…

 

정 : ‘아이를 사랑하게 된 그 시간에 감사’드린다. 사실 나는 반려동물도 안 좋아하고, 뭘 기르고 양육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관계 속에서 부여된 책임, 해야한다는 일들을 가급적 수행하려 애쓰며 살아왔다. 자기주도적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는 셈이다. 학교 가야지, 취직해야지, 결혼해야지, 아이 낳아야지, 하는 must do 숙제 같은 일상을 버티고 헤쳐오는데 급급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초반에 너무 힘들었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어떤 기쁨이나 즐거움은 얕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이와 엉글어지는 과정을 하루하루 버텨서 지금에 온 건데, 어떤 존재가 세상에 나와 자신만의 관계를 맺고 어떤 서사들을 만들어 가는 걸 쭉 보아오니까, 이제서야 내 세계도 함께 열려왔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보다는 좁은 인간이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효 : 뭐를 사랑했던 얘기를 하다보니 좀 정리가 됐는데, 저는 사랑했던 게 너무 많아서.. 덕후로 살았던 그 시간에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덕질을 하면서 살았고, 그로 인해 제 안에 쌓인 경험이나 추억들이 많기 때문에.

 

정 : 뭔가를 사랑하게 된 그 시간이라는 게 삶의 지도가 확장됐던 시간인 것 같아요. 언니는 뭐 없어요?

유 : 아, 몰라! 나 안해~ 

효 : 이 질문은 언니 취향이 아니에요.

정 : 제가 잘못했네요. 

광 :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했어야…

유 : 00..(이름)

모두 : 꺄아~~~ (급 분위기 몽글몽글) 

매 : 나 울 것 같아 (ㅠ_ㅠ)

효 : 여기서 이런 얘길 들을 줄이야. 

광 : 왜 다들 여기서 반박할 수 없는 얘기를 하지

효 : 언니가 뭐에 감동했는지 알 것 같아요. 

정 : 나 언니가 ‘몰라 안할거야’ 했던 심정 알겠다. 이 언니 연막 장난 아닌데?

주 : 언니 빌드업 장난 아니네요. 

매 : 드라마 작가가~~ 어우 당했어, 직격탄 맞았어, 

효 : <빵야> 대사에 그런게 있어요. 작가들이 쓰는 대본에 ‘시청자의 몸에서 물이 나오게 했으면 그건 절반이나마 성공’이라고 

매 : 물이 나왔어, 짜증 나.   

  


6. p.120 포기의 발명 관련하여, 만약 <내가 50층 높이의 아파트를 매일 걸어다니면, 중동전쟁을 막을 수 있다, 단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면 당신의 선택은?

초반에는 굉장히 많은 항의와 질타(질문이 뭐 이따위냐, 불편하다 불편해, 여름엔 못해!, 내 다이어트가 주 목적이면 가능하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는데 고작 일주일만 전쟁을 막을 수 있다(일주일만 할 수 있다)는 자괴감이 든다, 질문이 너무 성경적이다, MBTI 성향 중 ‘S’인 사람은 현실적이지 않아 이입이 안된다 등)가 있었으나, 오랜 수다와 아이디어를 모은 끝에 우리는 결국 합의점을 찾았다.   

1) 기간이 정해지면 할 수 있다, 

2) 여럿이 나눠서 같이 하면 할 수 있다.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하자.

3) SNS에 인증하면 할 수 있다. 이 질문의 가장 문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영웅들이 보상을 바라지 않고 노고를 숨기잖아요.)

 

정 : 질문의 의도는 우리 안에 영웅이 될 만한 요소가 얼마나 있는가에 대한 얘기인 거죠. 

광 : 알려지지 않는 영웅이 된다는 건 힘든거지. 스파이더맨 너무 힘들었겠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살아야 된다, 혼자는 못 구하지만 함께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어.라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결론에 도달했다.  

 


7. <이야기의 발명> 이 세계에 돌려주고 싶은, 우리가 나누고 싶은 '가장 맛있는 귤 이야기'가 있는가?

주 : 겨울에 먹는 귤이 제일 맛있는 거 아니에요?

정 : 아니야, 첫귤이 제일 맛있어, 8월 말에 나오는

광 : 일단 ‘맛있다’는 정의부터 내려야 돼. 

유 : 덤앤더머야? 이 질문이 그 의도가 맞아?

주 : 제가 너무 1차원적으로 답을 해서 언니가 말렸지, 말려들었어. ㅋㅋㅋㅋ

정 : 언니 빨리 뭐 준비해온 대답 없어요? 뭐 좀 해봐요. ㅋㅋㅋ

 

‘가장 맛있는 귤 이야기’는 우리에게 와서 ‘가장 000한 무엇’에 관한 이야기로 자라났다. 한 여름 엄마와 갔던 제주여행에서 해가 쨍쨍한 십자가의 길 끝에 만난 ‘가장 홀리한 커피 이야기’, 남편과 갔던 하와이 트래킹에서 아찔한 고생 끝에 확인하게 된 ‘가장 사랑스러운 물 한 병 이야기’, 냉장고에 하나 남은 홍시는 이제부터 절대 엄마 것임을 알게 된 ‘가장 효심 울리는 홍시 이야기’, 어릴 적 손가락이 얼만큼 추운 겨울날 할머니가 뜨끈한 아랫목에 넣어두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귤’이야기 등이 뭉게뭉게 흘러나왔다. 차가운 귤보다 미지근한 귤을 좋아한다, 차거운 거 요새 너무 이시리다, 따뜻하게 하면 약간 당도가 올라간다, 귤을 구우면 고구마 맛이 난다던데, 겨울에 이불 속에 귤 넣었다가 동생이 밟고 지나가고 엄마가 소리지르고, 귤은 이불 속에서 까먹어야 맛있는데.....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살아나고 피어나 꿈,틀,꿈,틀, 제멋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반짝이는 물 이야기’를 들었다. 

 

유 : 생각을 해봤는데, 이 작가가 이 일과 저 일을 엮어서 되게 멋지게 만드는 이야기의 고수잖아.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가져와도 그 정도가 좀 안되더라고. 근데 그냥 이 책을 보다가 스페인 여행 때가 생각이 났어. 같이 간 친구가 구글 맵으로 숙소 2개를 보여주면서 정하라했는데, 난 그냥 싼 데를 찍었거든. 그랬는데 정말 첩첩산중인거야.  무슨 스페인 어쩌구 산맥 정중앙, 산 중턱에 있는 숙소였던 거야. 올라가는 길도 댐 공사를 하고 있어서 절벽을 타고 가다가 사슴, 양떼무리 만나고 그랬는데, 우여곡절 끝에 도착을 했어. 할 일도 없으니 저녁에 일찍 잠을 청했는데 목이 말라 한밤중에 깬 거야. 물이 차에 있었거든, 친구는 자고 있어서 혼자 나갔는데, 숙소 주인들이 그 시간에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식당을 막 뛰어다니고. 머리는 산발을 해서 밖에 나왔는데, 그 집에 수영장이 있었거든, 그런데 수영장 위로 하늘에 북두칠성이 딱! 거꾸로 서있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과 반대로. 그게 내 맨 눈에 보인거지. 설산이 있는 산맥 위에 그 별들이 있고, 수영장을 보면서 여름에 오면 정말 좋겠다 하며 한참을 놀다 올라왔지. 다음날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왜 자기는 안깨웠냐며… 그날 참 되게 희한한, 이상한 어떤 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모두 : 싸서 좋았지만, 가기 힘들어서 나빴는데, 그 덕분에 별자리를 보게된…스페인 새옹지마 이야기. 

정 : 세상에서 제일 반짝이는 물 이야기네요.   

 

 작가는 말한다. 타인의 이야기에 초대 받는 것을 '삶의 발명'이라고. ‘이야기의 힘은 이야기가 우리의 내면에 뿌리내리고 우리가 그 안에 굳어져서 그것에 따라 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없으면 타인이 그린 지도, 타인의 이야기에 따라 살게 된다. 하나의 이야기밖에 모른다면 하나의 삶 밖에 살지 못하고, 다른 세계가 다른 삶이 가능함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가 행복이라 믿었던 것, 당연한 가치라 여겼던 것, 그래서 그 길을 달려가게 만들었지만 늘 뒷통수가 당겼던 것들은 뭐가 있을까.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과 세시간 남짓한 수다 속에 우리의 삶은 조금쯤 달라졌는지. 이제 다시 표지로 돌아가 책의 부제를 본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습니까’



시간 : 2024년 9 월 7일 토요일 오전 11시 

장소 : 시청역, 히든아일렛 카페 

참석 : 유, 주, 효, 매, 광,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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