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반겨줄 리 없지
처음 혼자 살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가던 해였다. 기숙사 문을 열었을 때, 낯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누군가 떠난 자리의 공기와 새로 산 이불의 냄새,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묘하게 차가웠다. 낯선 공간에 짐을 풀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 들떴다.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방, 처음으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불을 끄는 밤이 시작되었다.
그 뒤로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학교 근처 원룸, 지하방, 조금 더 나은 빌라. 이사할 때마다 ‘이번엔 제대로 살자’고 다짐했지만 짐을 다 풀고 불을 켜면 언제나 같은 고요가 방 안을 채웠다. 벽지는 다르고 창문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지만 적막의 온도는 이상할 만큼 늘 같았다. 처음엔 그 고요가 외로움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어쩌면 내 삶의 배경음이 되었다.
혼자 사는 동안은 ‘도착’이란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문을 열며 “도착했다”라고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주문에 가까웠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분 그래도 매일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는 안정감. 그 두 감정 사이 어딘가에 내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퇴근 후 방 안에서 노래를 켰다. 윤종신과 박정현의 〈도착〉이 흘러나왔다. “잘 도착했어, 제일 좋은 건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아.” 그 가사 한 줄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다는 말을 그렇게 담담하게 부를 수 있다니. 그건 외로움이라기보다 차분한 체념처럼 들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오는 일에도 나름의 평화가 있다는 것을.
그 시절의 내 방은 늘 어수선했다. 책상엔 컵라면 용기가 쌓였고 세탁은 미루기 일쑤였으며 창문 틈으로는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어수선함 속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의 시선도, 기대도, 간섭도 없는 공간. “잘 살 것 같아, 제일 좋은 건 아무도 날 위로하지 않아.” 박정현의 목소리가 그 구절을 부를 때 나는 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웃었다. 위로는 없었지만, 자유는 있었다.
혼자 사는 시간은 외로움과 자유의 줄다리기였다. 누군가의 존재가 그리울 때도 있었지만 그리움이 지나가면 다시 나 자신에게 돌아왔다. 밤늦게 방 안 불을 끄면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냉장고 소리, 지나가는 차의 불빛이 벽에 스치는 모습, 그 모든 게 낯선 도시의 배경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았지만 그 대신 나는 나 자신을 기다릴 수 있었다.
〈도착〉은 그 시절 내 삶의 작은 거울 같은 노래였다. 떠난 뒤의 공허함보다는 홀로 서 있는 사람의 담담한 숨결을 닮아 있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혼자 있는 일이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서도 괜찮아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누군가와 함께 살지 않았고 그렇기에 매일의 ‘도착’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이 내 안의 균형을 만들어주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혼자의 시간’을.
불 꺼진 방 안에서 들리던 〈도착〉의 멜로디는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낯설지만 익숙한 공기, 아무도 반겨주지 않던 밤의 고요,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던 나 자신. 그건 분명 외로움이었지만 동시에 시작이었다. 나는 그 밤마다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했다. “잘 도착했어.” 그리고 그 말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에게 도착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