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노래
올해 들었던 노래 중 가장 강하게 나를 흔든 곡을 꼽으라면, 단연 이찬혁의 <비비드라라러브>다. 처음 들었을 때 그 충격은 단순한 “좋다”의 감상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된 신념 하나가 산산이 부서지고 그 조각들이 다시 모이지 못한 채 바닥에 흩어지는 감각에 가까웠다.
노래는 ‘비비드 라라 러브’라는 빛나고 선명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기필코 있다 했다”라고 “빛나는 눈으로” 말했는데...... 정작 노래는 끝까지 그것이 어디 있는지 단 한 번도 답을 내리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미 답을 내린 지도 모른다. 없다고. 찾을 수 없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 같은 건 이미 오래전에 금이 갔고, 다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가사에서 가장 마음을 후비는 구절이 있다.
“상한 포도알이 다시 신선해지나.”
이 한 문장만으로도 노래 전체의 정서는 선명하다. 세상은 한 번 상하면 다시 예전의 신선한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부패가 시작된 세계에서 우리는 계속 ‘비비드 라라 러브’를 찾지만 그건 마치 도둑맞은 상자를 찾아 헤매는 꼴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상해간다는 사실, 그 냉혹한 현실을 누구도 미화하지 않는 이찬혁의 태도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 그 몽환적이고 건조한 톤은 가사의 좌절감을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린다. 가사를 읽으면 슬픈데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절망이 더 정교해진다. 이 노래가 나에게 올해 ‘첫 번째 충격’을 준 이유다.
그런데 두 번째 충격은 정반대의 곳에서 찾아왔다. 바로 공연 무대였다.
노래만 들을 때와 달리 무대 위 이찬혁의 <비비드라라러브>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밝고, 행복하고, 축제 같았다.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비비드 라라 러브’를 찾아가겠다는 기묘한 행렬처럼 보였다. 가사의 우울한 현실 인식과 달리 무대는 꿈의 장소를 향해 전진하는 듯 가볍고 유쾌했다.
그 대비를 보는 순간 난 또 한 번 흔들렸다.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어쩌면 우리는 계속 찾으려고 애쓰는지도 모르겠다고. 희망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조차 희망을 포기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몸부림일 수 있다고.
결국 이 노래는 나에게 두 겹의 충격을 남긴 셈이다. 절망과 희망, 포기와 전진, 부패와 빛. 그 상반된 감정들이 한 곡 안에서 충돌하고 또 공연이라는 장면에서 새로운 의미로 확장된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추천한다. 유토피아를 찾다가 지친 사람에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찬혁의 <비비드라라러브>는 그런 우리를 향해 묻는다.
“정말 찾을 수 있을까?”
그러고는 또 이런 말도 건네는 것 같다.
“그래도 너는 계속 걸어갈 거지?”
어쩌면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찾을 수 없어도, 그래도 찾으려고 하는 것.
그게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비비드 라라 러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