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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14. 2019

미국 고등학교에 처음 임시교사로 출근한 날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 취업 이야기 13


안녕하세요? 저 영어 진짜 못하는 한국 아줌마예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 일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유창한 영어는 안 되지만 대책 없는 용기와 아줌마의 뻔뻔함이면 되더라고요.



드디어 고등학교까지 임시교사로 가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클 아이들이 나처럼 서툰 영어로 더듬거리는 동양 아줌마 Sub를 무시하면 어떻게 하나 겁이 났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막상 해보니 겁을 먹었던 것보다 훨씬 편한 일이 고등학교 임시교사였다.

 



임시 교사로 출근하는 동안 틈만 나면 Sub Website를 확인하면서 다른 Sub Job 요청이 오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Sub 대기자들이 있는지 누르기도 전에 요청이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Sub Website 한편에 광고 알림으로 떠있던 유료 Sub App(앱)을 깔았다. 매월 소정의 사용료를 내야 하지만 내가 웹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아도 Sub요청이 뜨는 경우에 바로 알림이 울려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Sub 대기자들도 같은 생각으로 앱을 이용하고 있어서 인지 알림이 울리고 바로 수락을 클릭해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Sub App 덕분에 수시로 사이트에 접속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었고 많은 Sub 요청을 수락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의 Sub 달력은 대부분 해당 날짜에 출근할 학교가 있다는 초록색으로 바뀌어서 나의 의욕을 충만하게 만들어주었다.




돈을 내고 가입한 Sub App에 알림이 뜨기에 일단 수락을 누르고 나서 확인을 하니 옆동네 고등학교 과학교사 Sub 자리였다. 

반나절짜리 일이었지만 몇 번 초등학교의 임시교사로 일한 뒤여서 중고등학교는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하지만 나보다 키와 덩치가 더 클 미국 고등학생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조금 겁이 나기도 하였다.

그 날 저녁에 담당 교사에게서 해야 할 일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함께 조금 일찍 오면 자신이 설명해주겠다는 친절한 이메일이 왔다.

긴장하고 있던 차에 그 제안이 무척 감사했던 나는 일찍 가겠다며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다.  


다음 날, 담당 교사와 약속한 시각에 맞춰 임시교사로 일할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고등학교는 초등학교와 달리 학교의 규모가 무척 커서 교직원 주차장을 찾느라 좀 헤매야 했다.

일단 빈자리에 주차를 한 뒤에 사무실에 들어가 Sub로 왔다고 하자 직원이 임시 주차권을 주면서 운전대 위에 올려두라고 하였다.

주차권이 잘 보이게 놓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니 학교 지도와 시간표가 적인 종이와 함께 출석부가 들어있는 폴더를 주었다.


수천 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미국의 공립 고등학교는 규모가 큰 만큼 교실의 위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겨우 교실을 찾아가 담당 교사가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에 들어서니 학생이라 불릴 뿐이지 밖에서 만나면 아저씨인지 아가씨인지 학생인지 구분할 수 없을 성숙한 학생들이 시험지를 풀고 있었다.

친절한 담당 교사는 시험지를 어떻게 나눠주고 어떻게 걷어야 하는지, 학생들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시험 보는 아이들에게 나를 잠깐 소개한 후 교육구에서 회의가 있다면서 교실을 떠났다.

몇몇 학생들이 시험을 보면서 나를 힐끗거리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 보느라 분주했다. 


수업 끝날 시각이 되어 교사가 알려준 대로 시험지를 걷어야 했다.

나름 위엄을 갖추고 틀리지 않으려 애쓰며 또박또박 말했지만 나를 쳐다보는 서른 명 가량의 부리부리한 눈들을 마주하니 긴장이 되었다. 

시험지를 내고 웅성거리며 교실을 나가는 학생들 중 대부분은 나 보다 한 두 뼘은 더 큰 것 같았다.


다음 시간은 Tutotial 시간이었다. 

정규 수업 시간이 아닌 보충 수업의 개념으로 운영되는 20분 정도의 Tutorial 시간은 보충 시험이나 숙제 확인 또는 교사들에게 질문하기 위한 시간이다.

일반 수업시간처럼 미리 요일별로 Tutorial에 가는 일정표가 학생들 마다 각자 미리 정해져 있어서 정해진 교실에서 Tutorial 시간을 보내게 되므로 교사는 명단에 있는 학생들이 다 왔는지 출석을 확인해야 한다.

교실에 우르르 들어오던 학생들은 나를 보더니 “Sub”라면서 자기들끼리 수군대었다. 

나보다 덩치 큰 미국 학생들이 나를 힐끗거리며 공부할 애는 공부하고 친구와 시시덕거리는 애는 시시덕 거리는 것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쳐다보며 걷은 시험지를 정리하였다. 

그때 어떤 학생 하나가 과제를 내지 못해 제출하려고 들어왔다가 담당 교사가 없는 것을 보고 망설이기에 노트를 남겨주겠다고 하며 숙제를 받았다. 

학생 이름과 수업 시간을 적어 걷어둔 시험지와 함께 책상에 잘 놓았다.


곧 종이 울리자 다음 수업을 들을 학생들이 들어왔는데 Tutorial  때 이미 와있던 학생들 절반이 그 수업 시간 학생들이었다.

나는 교사가 알려준 대로 학생들에게 휴대전화 보관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은 뒤 지정된 자리에 앉으라고 하였다.

나를 쳐다보는 서른 명 가량의 다 큰 학생들의 얼굴을, 그것도 ‘또 Sub로군’ 싶은 무표정하고 시큰둥한 표정을 마주하니 초등학교에서 했던 것처럼 나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할까 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름만 이야기하고 바로 출석 확인에 들어갔고 출석 번호 1번인 학생을 시켜 사무실로 출석부를 보냈다. 

초등학교 Sub로 가는 경우 그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해야 하니 나에 대해 몇 가지 소개를 하는 것이 아이들의 관심을 끌고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되지만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동안 준비된 학습지나 시험지를 하고 나갈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길게 이야기해봤자 시간 낭비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반응을 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후에 몇몇 중고등학교 Sub를 하면서 실감했다. 


담당교사가 알려준 대로 지시사항을 알려준 뒤 시험지를 나눠주자 학생들은 익숙하게 계산기를 꺼내 시험지의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시험지를 다 푼 학생들의 시험지를 걷으면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으라고 하자 몇몇 학생들은 딴청을 피우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알아서 할 일을 하였다.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우르르 교실을 나갔고 다음 시간 학생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을 떠났지만 간혹 와서 “Thank you, Ms. P”하며 인사를 해주는 학생들에게 무척 고마웠다.

3교시 동안 세 차례를 시험을 치르고 나니 학교가 끝났다.

인사하고 시험 지시사항 전달과 시험지 걷으면서 몇 마디,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이 그 날 내가 사용한 영어의 전부였다. 


교실을 정리하고 임시교원 카드를 반납한 후 집으로 향하면서 애들이 커서 살짝 겁이 났지만 초등학교에 비하면 너무도 수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때 실수할까 봐 조심스러웠지만 초등학교와 달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만 수군거릴 뿐 나에게는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고 내가 몇 마디 하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금방 이해하고 알아서 했다. 

학생들이 할 일을 하는 동안 조금 뻘쭘하기도 하고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웠지만 몸과 마음은 아주 편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는 가능하면 고등학교 Full-day Sub를 해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Full-day Sub 자리, 그것도 고등학교는 굉장히 치열해서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벌써 그런 욕심을 내고 있었다.   



Tip 1

고등학교에서 출석 확인은 학생 관리와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초등학교는 담임제이기 때문에 한 학급에 Sub로 가면 아침에 출석 확인 후 사무실의 출결 업무 담당 직원에게 출석부를 보내면 되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우리나라와 같이 교과전담제이기 때문에 특정 과목 교사의 Sub로 가게 되므로 수업 시간마다 바뀌는 학생들의 출석을 확인해야 한다.

미국은 교사의 출석 표시를 통해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제대로 입실을 했는지 지각과 조퇴는 없는지 확인을 한다. 출결관리가 학생관리와 연계되어 부모의 사전 연락 없이 출석에 결석으로 표시된 경우 당일에 부모에게 공지가 간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Sub들에게 매 수업 시간마다 출석 확인을 먼저 하고 바로 출석부를 사무실 출결 담당자에게 보내도록 요청한다.

중고등학생들 중 짓궂은 아이들은 Sub가 있는 경우 일부러 자리를 섞어서 앉거나 옮겨서 앉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을 대비하기 위해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Sub를 위한 자리표를 미리 만들어두기도 하니 그것을 참고하여 출석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어른이라도 되는 양 무표정한 얼굴과 시니컬한 자세로 앉아있는 중고등학생들도 덩치는 커도 아직 아이들이라 그런지 교실에 들어오면 자기가 출석부 갖다 주고 싶다며 다가와서 시켜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손을 드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나 나는 괜히 출석부 갖다 준다고 나가서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올까 봐 그런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늘 출석 번호 1번 학생에게 출석부 배달을 시키곤 했다. 


Tip 2

고등학교는 Sub Plan 내용이 간단한 편이다. 고등학교 교사들은 Sub가 오는 날 대체로 시험이나 프로젝트를 과제로 준비해두기 때문에 그것만 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학생들의 성적과 수준에 따라 같은 과목도 일반 수업과 Honors class, Ap class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공부에 욕심이 있거나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있는 Honors class나 Ap class의 수업은 지시사항만 알려주면 신경 쓸 것도 없이 알아서 열심히 하기 때문에 수업 후 과제물만 잘 걷어두면 된다. 그러나 일반 수업 학생들의 경우 그저 고등학교 졸업이 목표이거나 수업 시간을 채우기 위해 와 있는 학생들도 적지 않게 있어서 수업 태도가 불량하거나 떠들고 돌아다니며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화장실 가는 것도 철저하게 확인해야 하고 수업 시간 동안 과제를 마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Honors class나 Ap class가 있는 과목인데도 일반 수업을 듣는 12학년 학생들은 졸업을 코 앞에 두고 마음이 교실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임시 교사가 허술한 틈을 노려 일탈행동을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학생들의 출결과 입실 상황을 잘 확인해야 한다. 


Tip 3

미국 학교는 교실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수업 시간에 사용하다가 걸리는 경우 사무실로 연행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교사들 몰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학생들도 있으니 이를 예방하기 위해 대부분의 교사들이 교실 벽에 휴대전화 보관 주머니를 걸어두고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오면 출석 번호가 적힌 칸에 전화기를 꽂아 두도록 하고 수업이 끝날 때 꺼내가도록 한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만 봐도 학생들의 출결을 알 수 있다. 임시 교사가 있는 경우 은근슬쩍 휴대전화를 보관 주머니에 넣지 않고 희희낙락 거리는 학생이 있으니 담당 교사가 전화기를 걷도록 하는 경우 학생들 모두 전화기를 보관 주머니나 보관함에 넣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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