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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04. 2019

중학교 간 임시교사, 무서운 미국 중딩의 세계를 맛보다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 취업 이야기 14


안녕하세요? 저 영어 진짜 못하는 한국 아줌마예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 일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유창한 영어는 안 되지만 대책 없는 용기와 아줌마의 뻔뻔함이면 되더라고요.



여기저기 다른 학교에 Sub로 출근하는 횟수가 느는 만큼 꾀도 늘었다.

유료로 가입한 App에 요청이 뜨면 일단 수락을 한 뒤 내용을 살펴보고 그것이 Full-day가 아니거나 저학년 담임인 경우 취소를 누를 요령과 여유까지 생겼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어느 중학교 임시 교사 자리를 수락하게 되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쩌면 전 세계 어디서든 중학교 아이들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건 사고 소식을 보면 대부분의 학교 관련 문제들은 중학생들이 연관되어있다.

한국의 중2와 아줌마들이 무서워서 북한이 못 쳐들어온다는 농담이 완전히 농담만이 아닌 것 같다.

자신들이 성인 못지않다고 생각하는 철이 안 든 무모하고 무분별한 중학생들에게 예의나 범절은 말을 꺼낼 수도 없고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그들의 행태에 '정말 요즘 중학생들, 참 무섭다'라는 생각만 든다.

그런데 무서운 중학생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한국의 중딩에 비하면 점잖은 편일지도 모르지만 미국에 와서 만난 중딩들도 막무가내 제멋대로였다.




캘리포니아는 세게 각국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지역이고, 타주에 비해 아시안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캘리포니아 남단에 있는 내가 살고 있는 학구는 백인, 멕시칸, 아시안 그리고 흑인 순으로 인종의 비율을 나눌 수 있는데 지역이나 도시에 따라 백인이 대다수인 학교와 멕시칸이 주류를 이루는 학교로 나누인다.   

이 날 내가 Sub로 간 중학교는 우리 학구의 가장 남쪽에 있는 중학교였다. 인종차별의 의도는 없지만 임시교사로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학생의 주류를 이루는 인종에 따라 학생들의 성향이나 학교 분위기가 다르다.

백인 아이들이 주류를 이루는 학교에 가면 아시안 임시교사인 나를 살짝 무시하는 느낌은 받지만 기본적인 매너는 지켜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속은 어떠하든 겉으로는 예의 바른 웃음을 보이는 백인들의 태도가 드러나는 듯하다.

멕시코 아이들이 많은 학교는 매우 명랑하고 자유롭다. 학급의 규칙이나 교사에 대한 예절쯤은 남의 나라 일이고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고 웃고 싶은 것은 웃어야 하며 그런 예의 없는 태도를 당연히 여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간혹 아시아 아이들이 적지 않은 학교에 가면 같은 아시안이어서인지 반가워해주는 아이들도 있지만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 책 잡을 것은 없는지 찾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날, 임시교사로 간 중학교는 멕시코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있는 학교이어서인지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멕시칸 아이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무시와 차별이 만연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노동직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멕시칸들에게 아시안은 잘난척하지만 별것 아닌 존재라는 것이 내가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다. 중학교에서 만난 멕시칸 학생들도 그런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 듯했다. 자유분방하고 웃고 떠들며 현재를 즐기는 문화를 가진 멕시코 부모들에게 배운 그대로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자유로운 영혼들이었고 진짜 담당 교사도 아닌 임시교사쯤은 동네 개가 짖는 것 같이 여겨도 되는 듯 자신들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했다.


특히 8학년, 우리나라 학제로 계산하면 중2 아이들 수업 시간에는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아서 후회할만한 일을 저지를 뻔했다. 담당 교사가 주고 간 학습지를 나눠주고 하라고 하는데도 내가 돌아서면 자리를 바꾸고 장난을 치며 딴짓을 하거나 음악을 들어도 된다면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낄낄거리던 아이들, 이게 필요하다 저게 필요하다 하면서 돌아다니며 수업 시간 내내 다른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맘때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점점 화가 났다. 아마도 아이들의 예의 없는 모습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아이들의 표정과 언행이 나를 비웃는 거라 착각하며 아이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스스로 자격지심적인 의미를 부여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고 해도 말싸움 한 번 못해보고 말문이 막힐 것을 알기에 나는 짐짓 못 본 척 모른 척 교실을 빙빙 돌아다니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썼다.


그 날 학교를 나서면서 ‘멕시칸 아이들 정말 싸가지도 없네. 무얼 보고 배우며 자란 거야.’라고 혼자 답답했던 마음을 운전대에 털어놓았다. 그리고 다시는 중학교 임시교사로는 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 날,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중학생들을 내가, 그것도 버벅거리는 영어로 상대하겠다는 생각이 오만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로 Sub 요청을 수락했는데 중학교인 경우 취소를 하면서 가능하면 중학교를 피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백인이 대다수인 중학교에 임시교사로 가게 되었다. 출근하는 아침, 도를 닦는 심정으로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성경구절을 중얼거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인종적, 문화적 성향 때문인지 이 날 만난 중학생 아이들은 생각보다 깍듯했고 생각이야 읽을 수 없지만 수업 시간에 지켜야 할 것들을 잘 지켜주었다. 그 날 집으로 가는 길, 모든 중딩이 무섭거나 싹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중학교는 가능하면 피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미국에서 살면서 또 미국 학교에서 일을 하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편견이나 선입견을 떠나 인종에 따라, 문화적 배경에 따라 그리고 부모들의 양육 성향이나 교육태도에 따라 아이들의 행동과 생활이 참 다르다. 학교에서 같은 것을 가르치고 배워도 부모들의 말과 행동뿐 아니라 그들이 자라면서 보고 배운 민족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나 지나는 사춘기요 누구든 겪는 중딩 시절이지만 그 마음속에 어떤 소용돌이가 치든, 어떤 감정이 밀려오든지 기본적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가진 아이들로 그 시간을 무사히 지나기 위해서는 부모나 가정으로부터 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선한 영향력을 받아서 사람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갖춰져야 하는 것 같다.

결국 그 후로 다시는 멕시칸 학생들이 대다수인 지역의 중학교 임시 교사로는 가지 않은 겁쟁이 임시교사였던 내가 하기에는 좀 부끄럽고 낯 간지러운 말이지만, 두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지에 대해 늘 반성뿐인 엄마로서 내리는 결론이자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Tip


1학년 ~12학년 까지 거의 모든 학년의 Sub를 해본 후 Sub로서의 소감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영어회화실력을 기르고 싶으면 초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수업 내용에서 아이들과 함께 배울 수 있고 아이들이 수시로 와서 말을 걸기 때문에 듣기와 말하기 연습에 큰 도움이 된다. 단, 아이들은 인내심이 부족해서 내가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면 차분하게 다시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Never mind”하면서 가버리거나 보채며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집중을 해도 못 알아들을 때 내가 쓴 전략은 아이들이 와서 이야기를 할 때 표정을 살피는 것이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면 알겠다면서 가서 보여달라고 하였다. 그러면 학습지가 찢어졌다든지 다른 친구가 잘못한 현장을 보여줬다. 뭔가 즐거운 듯 신나서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Oh! Really?”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Yes, 어쩌고 저쩌고.”이야기를 한다. 그런 경우 “It’s cool.”이나 “Good job.”이라고 하면 가끔 뭔가 석연치 않은 듯한 표정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개 만족해하며 돌아갔다.  아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영어가 부족한 나는 경험과 눈치로 여백을 메꾸며 겨우 겨우 아이들과의 하루를 보내곤 했다.


2. 쉽고 편하게 임시교사를 하고 싶다면 가능하면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좋다. 가끔 O교시부터 수업하는 교사들이 있어서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할 일이 간단하고 많은 말이 필요 없어서 좋다. 대부분의 고등학교 교사들은 임시교사가 오는 날 시험이나 프로젝트 등을 준비해두므로 Sub Plan에 있는 전달사항을 알려주면 학생들이 알아서 하는 편리함도 있다. 특히 Honor class나 AP class인 경우에는 학생들도 진지한 자세로 과제를 수행하여 한 마디만 하면 대부분 다 알아서 척척하고 매우 열심히 과제를 수행하기 때문에 마치 시험기간의 도서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다만 같은 과목으로 Honor class나 AP class도 있는 일반 수업인 경우, 수업에 흥미가 없어서 수업 태도가 불량하거나 제멋대로인 학생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  그런 경우에는 학생들이 교실을 이탈하지 않고 과제를 마치도록 단속을 해야 한다. 특히 12학년이 대다수인 일반 수업의 경우에 이미 마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의 자유를 향해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많아서 어디로 튈지 모르므로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생들을 교실에 잘 붙잡아두어야 한다.


3. 경험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중학교 임시 교사가 가장 힘들었다. 중2병이라는 말이 한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말은 많지만 대체로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아이들은 조금 철이 들어서 기본적인 매너를 지켜주기 때문에 영어가 조금 부족해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 아이들은 말도 많고 매너나 예의를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해서 영어가 서툴고 만만하게 보이면 제멋대로 굴면서 말썽을 부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물론 학교 분위기나 학생들의 인종 비율에 따라 그 정도가 차이는 있었지만 나의 경우에는 중학교 학생들을 감당하기에 내 영어 말발과 마음의 강단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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