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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22. 2019

미국의 대안 공립고등학교에 임시교사로 간 날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 취업 이야기 16


안녕하세요? 저 영어 진짜 못하는 한국 아줌마예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 일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유창한 영어는 안 되지만 대책 없는 용기와 아줌마의 뻔뻔함이면 되더라고요.





미국에 와서 8개월가량 임시교사를 하면서 십삼 년 동안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때보다 교사로서 훨씬 더 넓고 깊은 경험을 하였다.

임시 교사(Substitute)로 우리 교육구의 여러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부적응 학생을 위한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공립 대안학교까지 가게 되었다. 




아직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기에는 버거운 나이의 아이들 중에 인생의 폭풍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런 학생을 돕기 위해 마련된 공립 대안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임시교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학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립 대안학교는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임시 교사 알림이 떠서 수락을 하고 보니, 학교 이름만으로는 무슨 학교인지 알 수 없는 학교여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는데 고등학교인 것 같았다. 

일단 가 보자고 내비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찾아가 보니 울타리 안에 임시 건물 몇 개가 있는 학교였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직원이 딱 한 사람뿐이었다.

내가 이 학교 임시교사는 처음인데 이 곳이 무엇을 가르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Sub 오는 이들 반응이 비슷하다면서 설명해 주었다.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 일반 학생들이지만 가정환경을 비롯한 여러 요인들로 우울증이나 심신 미약의 문제로 고생을 하거나 따돌림이나 정서적 문제들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구에 있는 일반 공립 고등학교 학생들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였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다양한 교육구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센터와 함께 주차장과 운동장을 함께 사용하는 고작 교실 두 개인 두 학급으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대안 학교였다.


교실에 들어가 수업할 내용을 살펴보는 동안 부적응이나 문제를 가진 고등학생들이 곧 교실에 들어설 것인데 평범하지 않을 그 아이들을 영어도 어설픈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겁이 났다.

학교 특성상 교육구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온 9학년 ~12학년 학생들의 개인적인 교육과정을 관리해야 하다 보니 반에는 담임교사와 함께 보조 직원이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보조 직원이 나에게 아이들의 특성과 학교 스케줄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직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혹시 학생들이 대들면 도와는 줄 사람은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다른 고등학교들은 이미 수업을 시작했을 느지막한 시각에 학생들이 어슬렁어슬렁 교실로 들어왔다.

학생들이 들어올 때마다 직원은 학생들과 나를 소개했다. 

학생들은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려고 애쓰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눈길도 주지도 않고  입으로만 “굿모닝”하고는 각자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눕는 학생과  핸드폰만 보는 학생 그리고 그냥 멍 때리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수업을 시작하자고 하니 꿈쩍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때 보조 직원이 Ms. P의 말을 따르라고 한 마디 하자 나무늘보처럼 축 늘어진 몸으로 교실 한편에 있는 공책과 연필을 주섬주섬  챙겨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옆 반과 내가 맡은 반 모두를 합하여 학생은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것도 두 명은 결석을 해서 여덟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두 반은 과목에 따라 교환 수업을 하기도 했는데 영어와 체육 수업만 교사와 함께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각자의 학년이나 교육과정에 따라 자기 주도 학습의 형식으로 그 날의 수업 분량을 채우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사실  자기 주도 학습이라고 하니 굉장히 선진적이고 효율적인 방식 같이 보이지만 내가 그 날 그리고 이후에 두 번 정도 더 가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교사와 보조 직원이 수시로 협박과 꼬심으로 그 날 그날 할 분량을 채우도록 재촉을 하면 하는 시늉을 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그중에는 매우 똑똑하지만 사회성에 문제가 있어 온 학생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일반 고등학교에서 보다 더 빨리, 더 높은 수준의 자기 주도 학습을 하고 있었다.


이 대안학교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주어진 교육과정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과정 학점을 무사히 채워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학교에 다니는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 각자 학구에 있는 자기의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가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다 돌아간 뒤, 보조 직원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나를 향해  학생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전화번호를 주면 다음에 또 연락을 하겠다고 하였다.

수업 전에 잠깐 내 소개를 할 대 내가 어눌한 영어로 5년 전에 한국에서 와서 영어는 서툴지만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했더니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늘 모나고 사나웠던 학생들이 다른 임시 교사들에 비에 나에게는 좀 너그러웠던 모양이다. 




몇 주 뒤, 대안학교 옆 반 교사에게 연락이 와서 다시 그 학교에 Sub로 가게 되었다. 

몇몇 학생들은 나를 보자 “Oh, Ms.P”라고 아는 척을 하며 반가워해 주었다. 

개구쟁이 한 학생은 뜬금없이 자기가 한국의 불닭 볶음면을 유투에서 봤는데 정말 맵냐, 어디서 구하냐면서 불닭 볶음면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학교에 임시교사로 세 번 가는 동안 학생들과 조금씩 정이 들면서 학생들의 마음과 상처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자기 스스로 몸에 문신을 새긴 것을 자랑하는 학생도, 머리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자살 시도를 몇 번이나 한 학생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알고 보니 비웃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표정이 습관이었다.) 힐끗거리며 낄낄 대던 학생이나 내내 잠만 자면서 오늘 해야 할 과제를 주면 피곤하다면서 미루던 학생들도 알고 보니 그렇게 무섭거나 험악한 학생들이 아니었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학교로 오기까지는 학교를 포기할 생각을 했던 학생들이 대안학교를 다니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철이 들어서 보기에는 거칠어 보이지만 각자 인생의 계획을 세워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의 이혼 그리고 부모의 무관심으로 인한 상처, 너무 똑똑해서 또는 어눌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면서 점점 깊어간 상처, 너무나 똑똑한 형제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었고 살아남기 위해 날카로워지고 모가 나서 사나워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처음에는 무서웠던 학생들의 면면이 불쌍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프고 슬픈 것을 감추기 위해 가시를 세워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받게 하기 위해 학구에서 대안학교를 통해서라도 부적응 학생들을 돕는 교육 제도가 있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쯤 내가 임시 교사로 일할 때 만난 대안학교의 학생들 중 12학년이었던 학생들은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도 그 학생들이 바란대로 다시 자신의 고등학교로 돌아가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은 또 다른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 그 학교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포기했을지도 모를 그들의 인생을 주변의 교사나 다른 어른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조금 더디더라도 다시 꿈을 꾸고 일어설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미국 대안학교에서 임시교사로 일하면서 배우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그때 만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려 본다. 

그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그 아이들의 상처가 기억난다. 

내 딸과 비슷한 세월을 살았지만  나보다 더 인생의 험한 꼴을 더 많이 경험했을 그 학생들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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