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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28. 2019

장애학생 사회적응 프로그램 운영 학교에 간 임시교사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 취업 이야기 17



안녕하세요? 저 영어 진짜 못하는 한국 아줌마예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 일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유창한 영어는 안 되지만 대책 없는 용기와 아줌마의 뻔뻔함이면 되더라고요.



Sub알람이 뜨기에 클릭하고 보니 ATP라는 곳이었다.

이건 또 뭐하는 것인가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Adult Transition Program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였다.

그 날은 몰랐지만 이곳에서의 만남이 나를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게 이끌었다.




매일 다른 학교의 다른 학생들을 만나면서 떠돌던 내게 감사하게도 처음 한 곳에 정착하여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며 매일 같은 학교에서 같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곳에서의 만남과 경험이 나를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몇 달을 임시교사로 일하다 보니 교육구 내에 있는 학교들 중에는 안 가본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런 나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에서 장애 때문에 독립이 불가능한 성인 학생들을 위한 공립학교 프로그램인 ATP에서 보낸 시간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ATP( Adult Transition Program)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나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립학교 산하의 장애 학생 사회적응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소속된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만 22세가 될 때까지 이 공립학교에서 직업 및 사회 적응 교육의 혜택을 제공받는다.

학생들의 상태나 장애 정도에 따라 5개의 수준으로 나누어 반이 구성되고 있었고 학생들의 능력과 가능성에 기초하여 나눠진 학급에서는 학생들의 수준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몸에 장애가 없이 약간의 정서 장애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 학생들에게는 조별로 거의 매일 미리 계약을 맺은 가게나 식당에서 몇 시간씩 일을 해보는 일자리 경험이 제공된다. 그 학생들은 지도교사와 함께 요일별로 정해진 곳에서 일을 한 뒤,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며 음식을 주문하거나 낯선 이들과 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또한 같은 학구에 있는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수업을 듣는 기회도 제공받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만 22살이 된 상위 학급의 학생들은 이후에 자신이 봉사 활동한 식당이나 가게에 취업을 하기도 한다.


지적, 육체적 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학생들의 상황과 수준에 따라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은 미리 계약을 맺은 마켓이나 몰에 가서 간단한 걸레질이나 물건 정리정돈을 하면서 일을 해보는 경험을 한다. 일이 없는 날에는 볼링장이나 공원에 나가 사람들과 소통하며 부대끼는 기회를 갖는다. 사실 이 학급의 학생들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취업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여 기본적인 규범이나 예절을 익힌 사회의 성원이 되도록 돕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식당이 문을 열기전 테이블을 준비하거나 마켓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이 학생들이 직업 체험을 위해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중증 장애 학교에서 보조교사를 하기도 하였고 일반 학교에 있는 특수학급의 임시교사로도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ATP에서 만난 장애 학생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없었고 학생들을 돕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의 장애인들이지만 장애 때문에 여전히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과 마켓에 가서 청소하는 것이나 정리하는 일을 돕고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챙겨주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갔다.


장애가 심한 학급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나보다 큰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도와주거나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했다. 그런 학생들과 점심을 먹을 때는 학생들이 스스로 먹도록 도우면서 틈틈이 나도 식사를 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정해진 일과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새 하교 시간이 되어 학생들을 스쿨버스에 태워 보낼 시간이 되곤 했다.

 

처음 ATP에 일하러 간 날, 다른 임시교사들처럼 겁을 내거나 우물쭈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돕는 내 모 고마웠다면서  담임교사가 다음에 자기 반에 임시교사가 필요한 날 연락하고 싶다면서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일이 끝나고 임시 교원 카드를 반납하러 사무실에 갔더니 사무실 직원이 오늘 일한 학급의 담임교사가 나를 무척 칭찬했다면서 지금 빈 보조교사 자리에 당분간 임시교사로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임시교사를 시작하고 매일 떠돌이 생활을 하며 조금 지쳐있던 나에게 과분한 칭찬과 함께 친절한 웃음을 준 ATP에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나는 ATP의 필요에 의해 수시로 그곳에서 임시 교사로 일하다가 한 학급에서 한 달가량 임시교사로 일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매일 다른 학교로 출근해 매일 다른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부담감으로 임시교사 일은 나에게 늘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매일 같은 학교에같은 사람들과 함께 같은 학생들을 돌보며 지내는 시간은 참 따뜻하고 즐거웠다.


그 학급에 한 달 정도 있는 동안 일주일에 이틀은 몰이나 가게에 가서 학생들이 청소나 정리 정돈하며 직업 활동하는 것을 지도하고 돕는 일을 하였다. 다른 이틀은 커뮤니티 칼리지( Community College)에서 수업 듣는 학생들을 챙기거나 수업을 못 듣는 학생들의 경우 커뮤니티 칼리지의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도록 격려하는 것이 내가 그 학급에서 하는 일이었다. 금요일에는 이벤트가 있어서 같이 볼링을 치러가거나 몰에서 아이쇼핑(Window Shopping)을 하기도 했고 가끔은 교실에서 음식 만들기 같은 것을 하기도 했다. 단순한 일정이 매주 반복되지만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그런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작업을 수행하는 법이나 사람들과 교류하며 남들과 어울리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Community College에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구내식당이나 페스트 푸드점에 가서 점심 식사를 주문하고 식사를 하기도 한다.


한 달 동안 매일 같은  보조교사들과 함께 학생들을 돌보다 보니 틈틈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그중에 딸 둘을 가진 칠레에서 온 보조교사 매기와 같은 팀이 되어 같은 스케줄로 움직이는 일이 많아지면서 많이 친해지게 되어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어떻게 임시교사와 특수학급 보조교사를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기는 나를 통해 임시교사 자격을 얻는 방법에 대해, 나는 매기를 통해 특수학급 보조교사가 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날마다 다른 학교의 스케줄에 맞춰 출퇴근하는 어려움과 매일 다른 직원, 다른 학생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물에 뜬 기름 같았던 나의 심정을 듣던 매기는 자기처럼 특수학급 보조교사를 해보라고 적극 권해주었다.


그전까지 나는 특수학급 보조교사는 특수학급 담임교사와 같은 수준은 아니어도 장애아를 돌보기 위한 특별한 자격 조격을 갖춰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매기에게 들어보니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을 요하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자격요건 없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이어서인지 하는 일에 비해서 시급은 많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으려나 망설이던 어느 날, 매기는 기쁜 얼굴로 교육구 사이트에 Full-time 보조교사 구인 광고가 떴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ATP( Adult Transition Program)에서의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은 8개월 정도를 매일 다른 학교를 정신없이 오가며 긴장의 연속이던 나의 삶에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니 거의 성인이나 다름없는 학생들이 고집을 피우거나 중증장애로 인해 힘이 필요한 경우 애를 먹기도 했지만 ATP에서 지내는 시간은 즐거웠고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제각각 다른 모습과 그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게다가 그곳에서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특수학급 보조교사라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게 이끌어준 고마운 친구를 만났다.


그를 통해 가끔은 한 사람과의 만남이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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