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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24. 2019

특수학교에 간 임시교사, 장애아들의 세계를 엿보다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 취업 이야기 15


안녕하세요? 저 영어 진짜 못하는 한국 아줌마예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 일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유창한 영어는 안 되지만 대책 없는 용기와 아줌마의 뻔뻔함이면 되더라고요.




Sub App에 요청이 뜨기에 수락을 누르고 나니 낯선 학교 이름이었다.

뭐하는 곳인지 검색을 해보니 K-5 중증 장애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였다.

막 Sub를 시작했던 나는 당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과 부딪혀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가득해서 특수학교에도 한 번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십삼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한 번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쳐본 일이 없었다. 

때문에 장애를 가진 것이 안 됐고 마음 아프게 느껴졌지만 나와는 거리는 있는 세계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며 교직생활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임시 교사로 일을 시작한 뒤 특수학교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날이 내가 미국의 초등학교의 특수학급의 보조교사로 일하게 되는 지금의 삶의 첫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임시 교사로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는 즈음에 중증 장애아들을 위한 특수학교로 출근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Sub Orientaion때 배운 것에 여전히 충실한 Sub였기에 요청에 나온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하기 위해 가족들 중 제일 먼저 집을 나섰다.

낯선 길을 운전해서 가는데 내비게이션이 나를 바닷가 쪽으로 안내했다.

운전을 하면서 파란 하늘 아래 보이는 바다를 힐끗거리며 이런 곳에는 어떤 학교가 있는 건가 궁금했다.


각양각색의 집들이 평화롭게 늘어선 동네에 들어서서 몇 블록을 지나니 동네 한쪽에 생뚱맞게 들어서 있는 학교가 보였다.

텅 빈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학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무도 없었다.

조금 기다리는데 나처럼 Sub로 온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둘이 멀뚱 거리고 있는데 사무실 직원이 들어서더니 일찍 왔다면서 깜짝 놀랐다.

이전의 경험도 그렇도 이 날 직원의 반응도 그렇도 아무래도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육구 직원이 했던 30분 일찍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은 우리에게 임시 교원 카드를 주면서 일할 교실을 알려준 뒤 곧 교사들과 학생들이 올 거라면서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뒤 스쿨버스가 줄지어 들어왔고 어딘가에 있던 교사들이 로비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쿨버스를 타고 온 학생들 뿐 아니라 부모가 함께 온 학생들이 현관문 지나 학교 로비로 들어왔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말없이 마음속에 충격을 숨겼지만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온몸에 호스를 단 아이를 유모차 비슷한 것에 태워 들어오는 엄마, 워커를 붙들고 두 발을 끌다시피 걸어오는 아이, 온몸이 뒤틀린 아이가 탄 휠체어를 밀고 있는 다운증후군임이 분명한 아이와 그 아이들을 지켜보며 함께 걸어오는 교사.

웃음과 울음, 웅얼거리는 소리와 날카로운 괴성이 뒤섞인 로비에서 아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교사들의 목소리, 너무도 밝은 얼굴로 담소를 나누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피에로와 같은 표정으로 웃고 았었던 것 같다.


그 학교에서 내가 할 역할은 저학년 학급의 결근한 보조 교사를 대신하는 일이었다. 

이 특수학교에서는 스스로 걸으며 어설퍼도 자기 의사표현이 가능한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가장 높은 수준의 아이들이었다.  

동그란 눈을 통해서만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 말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동화책의 그림을 보여주며 책을 읽어주고 간식을 먹이거나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이 내가 한 일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휠체어에 태워 데리고 나갔다.


드디어 하교시간이 되었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어 지쳐있는 나에게  하루 몇 시간 함께 했다고 정들었는지 의사표현이 가능한 1학년 꼬마 둘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휠체어를 비롯한 장애아들이 사용하는 커다란 보조기구를 실을 수 있는 커다란 스쿨버스나 데리러 온 부모들과 함께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 임시 보조교사로 일한 학급에 가서 교실을 정리하였다. 

웃으며 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서면서 나는 그러 중증장애 특수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교사는 그 마음과 정성을 알아주는 누군가의 미소와 감사에 보람을 느끼기에 계속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애쓰고 수고한 것에 웃어주거나 고맙다고 말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육체적인 피로와 함께 감정적인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당시에 나는 그 학교에 다시는 임시교사로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몸이 많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장애가 심한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적부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그 날이 내가 특수학급의 보조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시작의 아주 작은 첫걸음이었던 것 같다.

한참 후에 나는 그 학교에 두 번 더 임시교사로 출근하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좀 더 편안하게 아이들을 대할 수 있었고 몸을 가눌 수 없는 그 아이들도 기쁘면 자기 나름대로 슬그머니 웃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면 싫다고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고마웠던 것은 한 다운 증후군 소녀가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해줬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그 속에서 만나는 반짝이는 순간의 기쁨과 보람에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해왔던 장애아들의 세계의 첫 발을 디딘 날이었다.

피부색이 하얗든 까맣든 또는 나와 비슷하게 누르스름하든, 장애의 아픔은 다 같은 것일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에 와서 특수학교에서 처음 장애아들의 학교생활을 접한 후, 나는 그 아이들이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는 법을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    



Tip 1

Substitute Teacher은 Cridential(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들이기 때문에 굳이 교직과목 이수를 하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일정한 교육국의 기준만 충족시키면 되는 Certificated Job인 보조교사의 임시교사 자리에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Certificated Pool에 있는 Substitute들은  Credential이 필요한 Substitute Teacher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보조교사 자리의 임시교사로 갈지라도 Substitute Teacher이기 때문에 다른 일반 임시교사 일과 같은 시급을 받게 된다.



Tip 2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의 보조교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IA(instructional assistant)는 교수활동 보조교사의 의미가 있고 IF(Independent Facilitator)는 장애아동들의 학교생활 조력자라고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일반 학교나 일반 학급에서 IA는 학급에서 학습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

특수학교나 특수학급 현장에서의 IA와 IF는 역할에 별로 차이가 없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돕고 교사를 보조하는 일을 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IF는 장애아동의 화장실 문제까지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규직원으로서 IF는 IA보다 기본 보수가 조금 높다.

그러나 Substitute Teacher로서 그 자리의 Sub로 가게 되면 일반 교사 자리든 IA나 IF 자리든 같은 시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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