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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30. 2019

너는 몇 살 때 첫 키스를 했니?

여섯 살 꼬마들의 첫 키스를 훔쳐본 날, 놀란 사십 대 아줌마 이야기

첫사랑, 첫 키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설레고 특별한 경험들이다.

칠십 명가량의 아이들이 바글대는 학교 운동장 한 편에서 아마도 그 아이들의 첫 키스일 여섯 살 꼬마들의 그 설레고 특별한 순간을 훔쳐보게 되었다.

절대로 일부러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3번 방 남다른 꼬마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쉬는 시간이다.


특수학급이지만 유치원생들이 대다수인 3번 방 꼬마들은 늘 일반 유치반 두 학급, Ms. S 반과 Ms. B 반 아이들하고  같은 시간에 간식과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을 같이 갖는다. 워낙 별종스러운 열세 명의 남다른 꼬마들이 일반 학급이라지만 6살 아이들의 장난기와 에너지를 가진 육십 명가량 되는 다른 유치반 아이들과 섞여서 노는 시간은 즐거움과 혼돈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다른 보조교사들과 함께 남다른 꼬마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시도 몸을 가만 두지 못하는 3번 방 꼬마 랜든이 일반 학급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다. 물론 랜든은 같이 축구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볼 때는 같은 공간에 있을 뿐 그 놀이의 일원이 아닌 랜든 혼자 같이 경기한다고 착각하는 축구이다. 랜든이 다른 아이가 찬 공을 쫓아가더니 갑자기 공을 안고 뛰기 시작했고 축구를 하던 애들이 우르르 랜든을 쫓아갔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더 신이 난 랜든은 얼굴 가득 웃음기를 머금고 공을 들고 더 빨리 뛰기 시작했고 화가 나기 시작한 애들이 랜든을 덮칠 기새였다. 문제가 발생할까 싶어 나는 얼른 뛰어가서 랜든의 공을 뺏앗았다. 그리고 펄쩍 뒤는 랜든에게 축구는 공을 들고 달리면 안 되고 발로 차야한다고 설명을 해준 뒤, 공을 내려놓으며 랜든이 따라오던 아이들 쪽으로 공을 차도록 했다. 


상황이 진정된 듯하여 모래놀이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운동장 울타리 쪽에  Ms. S반에서 제일 키가 큰 금발 머리여자 아이와 유난히 코가 뾰족한 남자아이, 둘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서 두 아이를 바라보며 걸어가는데… 

허걱! 남자아이 얼굴이 점점 여자 아이 쪽으로 다가가더니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무심코 바라보고 있는 내 눈에 두 아이 주변이 핑크빛으로 변하는 것처럼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라… 저게 뭐지? 깜짝 놀라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나는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을 지켜보는 학교 운동장 감독관(Supervisor)에게 가서 꼭 붙어있는 두 아이들을 좀 보라고 알려주었다. 


그때, 잠시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던 두 아이 중 이번에는 여자 아이가 남자아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다시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저기 좀 보라고 한 나도, 내 말에 아이들 쪽을 바라보던 Supervisor와 3번 방 다른 보조교사들 모두 눈이 동그레 져서 입을 떡 벌린 채 멍하게 서 있었다.


"너의 첫키스는 몇 살 때? 아마도 스무살? 열 여섯 살? 열살?"  "아니, 여섯 살."


잠시 후 정신이 든 우리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고 Supervisor가 아이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눈 후 두 아이를 떼어놓았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안타까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내 눈에는 진짜 그렇게 보였다.) 다른 방향으로 뛰어갔다.  몇 분 후, 두 아이들이 각각 다른 친구들과 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냥 아이들스러운 귀여운 뽀뽀 같았으면 간단한 주의를 주고 끝났겠지만 여섯 살짜리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심히 진지하고 묘한 키스 모습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담임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나왔을 때, 나와 Supervisor는 Ms. S에게 6살 꼬마 아이들의 진지한 키스 사건을 보고했다.


후일담을 듣자 하니 Ms. S는 아이들은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과는 키스하면 안 되는 거라면서 학교 내에서 친구들과 키스 금지에 대해 강력하게 교육을 했다고 한다. 


여섯 살짜리 아이들의 키스 사건은 그 후에도 보조교사들과 Supervisor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종종 수다거리가 되곤 했다. 그리고 그 두 아이는 빼어난 미모와 잘난 외모 때문만이 아니라 너무도 진지하고 로맨틱했던 6살 키스 사건 주인공들로 학교 직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유명인사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 참 빠르다고도 하고 주변에서 초등학교 때 첫 키스를 해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으로 직접 여섯 살짜리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진지하게 키스를 나누는 모습에 우습기도 했지만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그 아이들의 조숙함에 많이 놀랐다.


두 아이의 키스에 깊은 의미가 있었다기 보다 미국에서는 워낙 가볍고 자유롭게 키스를 나누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에 한 번 해본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런 모습이 수시로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 또는 유튜브 같은 대중매체에서 본 키스가 무엇인지 궁금했을 지도 모른다.


요즘 그 날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여섯 살답게 다른 아이들과 그네를 타거나 공을 차며 노는 두 아이를 운동장에서 마주치면 주변을 다 핑크빛으로 물들일 듯 진지하게 입을 맞추던 그 날의 두 아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곤 한다.


여섯 살 꼬마들보다 몇 배는 더 살고서야 첫 키스를 했던 나에게 그 꼬마들의 용기와 로맨스가 매우 신기하고 놀라웠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그 나잇적 나는 소꿉놀이나 인형놀이에 빠져 남자아이와 뽀뽀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한 것이 마흔 넘어 생각하니 주책맞게도 괜히 억울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두 아이는 여섯 살의 몇 배의 시간을 더 산 어느 날, 누군가 첫 키스에 대해 물어보면 6살 유치원 생이던 2019년 어느 봄, 유치원 운동장 잔디밭 위에서 나눈 자신들의 첫 키스를 떠올리겠지?  


아니 어쩌면 내가 본 그 날이 첫 키스가 아니었을 수도…??

뜬금없이 엉뚱하게 불순한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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