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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ug 08. 2019

한국 사람 앞에서 영어가 더 어렵다

엉터리 영어로 떠들다가 한국 사람 앞에 서면 작아지는 나의 영어 이야기



늘 유창한 영어를 동경했지만 나에게 영어는 늘 어려웠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영어가 어렵다.  

특히 미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 앞에서 영어를 하는 것이 참 어렵다.

그리고 두렵다.





어릴 때는 미국인처럼 영어를 잘하는 나와 같은 한국사람을 보면 별나라에서 온 사람을 보는 듯 신기했다. 성인이 된 후, 그 신기한 사람들을 동경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꿈꾸듯 나도 영어가 능숙한 사람이 되어 언제 어디서든 자신 있게 영어를 구사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끔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거나 도미한 부모 덕분에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교육을 받아, 물론 그 과정은 힘들고 고생스러웠겠지만, 자연스럽게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몹시 부럽기도 했다.


내가 자라던 시절과 달리 요즘은 영어권 나라에 가지 않고도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한국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아이들 못지않은 영어 구사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훨씬 수준 높은 어휘력을 가진 학생들도 많다는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영어로 술술 말하는 학생들이 드물었고 간혹 만나는 그런 이들의 유창한 영어 실력은 그저 부럽기만 했다.


그래서 남편의 파견근무로 미국에 오게 되었을 때, 내심 굴러가듯 유창한 영어를 하는 사람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낮 아지랑이 같은 꿈이었다. 아무리 영어수업을 다녀도 사십 년을 한국어에 길들여진 내 뻣뻣한 혀는 여전히 R 발음과 L 음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두 아이의 엄마로 나이를 먹어간 탓인지 방금 배운 단어나 문장인데 돌아서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미국에서 사는 시간이 8년이 되어가면서 내가 꿈꾸었던 굴러가는 완벽한 영어는 여전히 꿈만 같은 일이지만, 필요한 것은 대충 스스로 해결할 정도의 영어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설프고 뒤죽박죽인 영어일 망정 한국어를 못하는 미국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내 허접한 영어가 어떻게든 통하는 경험을 통해 나름 막무가내 생존 영어의 기술을 갖게 되었고, 그런 수준의 영어로 미국 학교에 취업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어떻게든 튀어나오는 영어가 한국사람들 앞에 서면 입 안에서 뱅뱅 돌면서 밖으로 나오지를 못한다. 한국 사람들 앞에 서면 이상하게 내 혀가 더 뻣뻣해지는 기분이 든다. 미국 사람 앞에서 술술 나오던 영어 단어를 한국 사람 앞에서 하려면 혀를 굴리는 것이 부끄러워서 웅얼거리듯 어색하게 말하게 된다. 평소에 하던 간단한 영어문장을 내뱉는 것도 어쩐지 내 발음이나 문장이 민망해서 머뭇거리게 된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 사람, 특히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서 원어민 비슷한 영어실력을 가진 한국 사람 앞에서 영어를 하려면, 내가 하는 영어 단어 하나하나가 몹시 부끄럽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이 대신할 때까지 기다리곤 한다.


얼마 전, 지인들과 브런치를 먹으러 식당에 간 적이 있다. 한 사람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왔고 다른 한 사람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주문할 음식을 정하고 있는데 백인 종업원 아가씨가 테이블로 와서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주문하면서 사용하는 문장들은 늘 비슷한 문장이니 나도 할 수 있을 테지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지인들을 쳐다보았고, 어려서 미국에 온 지인이 자연스럽게 우리들을 대신해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 날 가게를 나올 때까지 종업원과의 대화는 그 지인이 도맡아서 하였다.


사실 돌아보면 발음이 다소 어색하고 사소한 문법적 실수가 있는 문장으로 내가 주문했어도 그 종업원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는, 늘 식당에서 사용되는 대화들이었다. 게다가 지인들도 당연히 내 영어는 자신들과 같은 수준일 수 없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그 두 지인 앞에 나서서 버벅거리는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이 어쩐지 꺼려졌다. 아마도 나 혼자 종업원에게 영어로 주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알아서 잘 해결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미국인들은 수많은 이주민들의 다양한 억양과 어설픈 영어 문장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영어를 못해도 무시하기보다 귀 기울여 들어주는 편이다. 나는 어쩌면 그 때문에 무의식 속에 미국인들은 나의 영어가 조금 어색해도 뜻이 통하면 용납할 것이라는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이주민을 보기 드문 도시에 가면 나의 서툰 영어를 들어주기 위해 애쓰는 마음 넓은 미국인들보다 어색한 영어로 뭔가를 요구하는 동양인 아줌마를 귀찮아하거나 살짝 무시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보이는 미국인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무례한 태도와 그 상황이 기분은 나쁘고 내가 영어를 제대로 못해서 불편은 하지만, 어색한 나의 발음과 부족한 나의 영어실력이 부끄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곳의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넓은 아량으로 내 영어를 알아들어주는 것을 경험한 데다가, 내가 마흔이 다 되어 미국에 온 것을 아는 미국인들은 내 영어의 부족함을 이해해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실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엉터리 영어라도 편하게 구사며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런 내 착각에 가까운 용기 덕분에 미국 학교에 취업했고 지금까지 생존 영어로 학교 생활에 제법 잘 적응해 왔다.


그렇게 막무가내스러운 마음으로 영어를 하며 살고 있지만, 이상하게 같은 한국 사람 앞에 서면 내 발음이 어색하고, 웅얼거리는 내 영어가 부끄러워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한국인들 앞에서는 어쩐지 내가 하는 영어 단어 하나하나를, 문장에 사용된 문법 구석구석을 평가받는 것 같이 느껴진다. 마치 고등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지적을 받을까 봐 긴장하며 교과서의 문장들을 읽거나 외웠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다.  그래서 가능하면 영어를 쓰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숨긴 채 살고 있다. 말하지 않으면 내 엉터리 발음과 뒤죽박죽인 영어 문장들을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대가 자신보다 영어가 능숙하든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든, 한국인 앞에서 영어가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비단 나 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서로의 영어 실수담에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런 부족한 영어 수준과 영어 울렁증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미국이란 나라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며 서로를 격려한다.  




처음에는 이런 소망에 사로잡혀있었다. 1년이면 영어에 자신감이 붙겠지. 2년 후면 영어 발음이 좋아지겠지. 5년 후면 반미국인은 되어있겠지. 그런데 8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 소망들은 다 나의 착각이었다. 물론 그것이 착각으로 머물게 된 것은 나의 노력과 재능의 부족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나의 지지부진한 영어가 더 서글프다.


처음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떤 분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이제는 미국에서 10년 살았다는 말을 못 하겠어. 10년 살았는데 영어가 왜 아직도 그 모양이냐고 할까 봐.”

그때는 10년 정도 살면 자연스럽게 영어가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분이 말한 십 년이 얼마 안 남은 지금, 그분의 말이 깊이 이해가 된다. 아마도 나는 누가 물어보면 머뭇거리다가 “좀 살았어요.”라며 실실 웃기만 할 것 같다.




아~ 평생 동경해온 술술 나오는 영어실력의 꿈은 오래전에도 꿈이었고, 여전히 나의 꿈이며 앞으로도 그저 꿈으로 남을 것 같다.


엄마는 여전히 능숙한 영어 구사의 꿈을 꾸고 있건만, 처음에는 엄마의 영어에 의존했던 두 아이가 이제는 엄마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가끔 엄마의 실수를 고쳐주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언젠가 저 아이들은 어려서 미국에 오게 된 덕분에 자연스럽게 미국인 같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 자신들이 엄마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부러워했던 이들임을 알게 되려나?




외국인들 앞에서는 엉터리 영어로 용기 있게 떠들다가, 한국인들 앞에 서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영어를 망설이는 나는, 가끔 한국 친구들하고도 유창한 영어로 떠드는 내 아이들이 부럽다.  


나는 한국 사람 앞에서 하는 영어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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