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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Oct 04. 2019

3번 방의 벌거벗는 임금님

화가 나면 옷을 벗어버리는 에빗 이야기

3번 방에는 독특하다면 너무 독특하고, 괴상하다면 정말 괴상한 두 아이가 있다.

그중의 한 아이가 자신이 세상의 왕인 줄 아는 벌거벗는 임금님, 에빗이다.




3번 방 에빗의 세상에는 공공질서 준수나 사람에 대한 예의, 친구들에 대한 양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한 표현 같지만 에빗에게 학교의 규칙이나 교사들의 말은 길에 굴러다니는 개똥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 정도로 에빗은 안하무인 독불장군이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요 교실과 교사가 자기 위주로 돌아가야 직성에 풀리는 폭군이다.


왜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줄을 서라든지, 읽던 책을 치우라든지 또는 화장실 갈 시간이라든지 같은 일상적인 학교생활에 필요한 말에 갑자기 화가 나서는 교실 구석으로 달려가 두 팔을 엇갈려 끼운 채 서있거나 심할 때는 교사의 의자에 올라앉아버린다.

그러다가 이제 운동장으로 나가야 한다거나, 알파벳 공부를 해야 한다며 교사가 한마디를 더 하면 갑자기 의자나 손에 잡히는 교실의 장난감을 던지거나 교실에 장식된 것들을 뜯어버린다.

3번 방의 교사들이 붙들고 달래거나 사탕을 먹이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봐도 소용이 없다.

맥락도 없이, 예고도 없이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그것이 뜻대로 안 되면 폭력적이 된다.


특히 에빗은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규칙을 안 지켜서 장난감 상을 못 받으면 화를 내며 도망을 가는 통에 에빗을 집에 보내는 일이 3번 방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되었다. 

다른 남다른 아이들이 모두 보고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상을 받을 수 없을 만큼 말썽을 피운 에빗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장난감을 줄 수도 없고, 앞으로의 학교생활을 위해서 규칙을 지키는 법을 배우도록 말썽을 부리면 장난감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가르쳐야 하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어느 날,  달력 공부 시간에 자리에 와서 앉으라고 해도 교실을 돌아다니던 에빗은 바르게 앉아있는 한 친구가 날짜 세기를 맡자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더니 급기야 티셔츠를 벗어 버렸다.

Ms. K가 자리에 와서 앉으면 날짜 스티커를 붙이게 해 준다는 말에 웃통을 벗은 채 교실을 활보하던 에빗은 더 화를 내며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놀란 3번 방 다른 아이들을 다독이며 보조교사들이 운동장으로 피난을 나갔고  에빗과 담임교사 Ms. K만 교실에 남았다.

잠시 후, 상담교사가 교실에 들어가서 설득하는 와중에 에빗은 급기야 아랫도리까지 벗어버렸다.

결국 교장이 와서 수습이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에빗의 막무가내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난주에도 알파벳 학습지를 하다가 갑자기 에빗이 교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하기에 자리에 앉으라며 에빗의 이름표를 옮기자 에빗은 폭풍 분노를 시작했다.

더 안 좋은 모습을 보지 않도록 보조교사들이 다른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대피시키도록 한 후, 에빗이 또 옷을 벗을 것을 대비해 Ms. K는 나에게 교실에 같이 남아달라고 했다.

내가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가는 것을 도운 뒤 교실로 들어오니 역시 발가벗은 임금님은 웃통을 벗고 교실을 누비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보자 에빗은 아랫도리도 홀랑 벗어버리고 온몸을 흔들면서 다가왔다.

Ms.  K와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창문을 통해 놀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척하며 에빗을 주시하고 있었다.

반응이 없자 시들해진 에빗은 슬그머니 팬티와 바지를 주워 입더니 자기도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 싶은지 우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멀쩡한 얼굴로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에빗과 그 옆에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Ms. K를 바라보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나는 에빗의 그런 엽기적인 행각에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2년 차 교사인 젊은 아가씨 Ms. K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에빗, 인간적으로 옷은 좀 벗지 말자!


그리고 그 날, 에빗은 하루 종일 교사들과 상담교사의 진을 다 빼놓고 결국 스쿨버스를 타지 않았다.

스쿨버스를 놓친 것이 아니라 말썽으로 인해 장난감을 못 받자 화를 내며 온 학교를 뛰어다녀서 다른 학교의 학생을 태워야 하는 스쿨버스 기사가  어쩔 수 없이 떠난 것이다. 

결국 에빗의 부모에게 연락하였고 부모가 와서 에빗을 데려갔다. 




특수학급의 아이들만 전담하여 돕는 상담 교사도 어쩌지 못하게 애를 먹이는 에빗과의 하루는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다.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알랑방귀를 뀌어야 하는 상황이 서글프고 에빗 때문에 피해를 보는 남다른 아이들이 불쌍해서 화가 난다.

남다른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내가 당하는 입장이 아닌데도 억울한 것이, 심각한 문제행동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몇 배의 인력과 에너지의 손실을 입히는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조용하게 소외되는 아이들의 상황이다.

물론 다들 문제를 가지고 3번 방에 온 아이들이지만, 그런 현실에 불공평하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문제가 심각한 아이들에게 힘과 시간이 더 투입될 수밖에 없는 것에 마음이 답답해지곤 한다.


모두 그런 상황의 문제점에 동의하지만 매일 마주하는 시급한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에빗 또한 그 나름대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문제를 가졌다는 것도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교실을 정리하면서 한 달처럼 길었고 일 년처럼 다사다난했던 하루에 한숨이 나왔다.

아, 내일은 부디 에빗이 별문제 없이 무사히 스쿨버스 타고 갈 수 있는 좋은 날이 되기를.

3번 방 폭군으로 인해 다른 남다른 아이들의 평화로운 하루가 깨지지 않기를.

에빗이 더 이상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를 하지 않기를 빌었다.

부디~ 


흠...... 그런데 말이지,

요즘 감기가 유행인데 

에빗이 아파서 내일 하루쯤 결석해주면 어떨까?

아이들 책상을 닦는데 못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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