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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Sep 17. 2019

화장실 표지판을 사랑하는 아이

표지판을 보고 또 보는 것이 제일 즐거운 독특한 아이, 샤먼의 이야기

3번 방에는 네 명의 TK가 있다.

다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아이들이지만 그중 남다르게 독특한 아이가 바로 샤먼이다.



 

쉬는 시간, 분명히 눈 앞에 있었던 샤먼이 사라졌다.

한 유치반 선생님이 샤먼이 자기 교실에 있다고 알려줬다.

‘오늘도 역시!’라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다른 보조교사와 함께 얼른 그 교실로 들어갔다.

우리의 예상대로 샤먼은 화장실이 있는 교실의 화장실 문에 붙은 화장실의 표지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온 몸을 흔들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가도록 달래고 얼르며 스티커를 주고 M&M을 주어도 온 몸을 바닥에 붙이고 눈은 화장실 표지판에 고정시킨 채 꼼짝을 안 한다.

결국 함께 샤먼을 일으키려고 애쓰던 보조교사는 운동장의 남다른 꼬마들을 챙기러 나갔다.

혼자 남아서 샤먼에게 교실 밖으로 나가자고 꼬시면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가 반짝했다.

마치 만화에서 전구가 반짝하며 주인공이 해결책을 찾는 장면처럼 말이다.

왜 그런 생각이 스쳤는지 모르겠지만 번뜩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어서 교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껐다.

순간 샤먼은 놀란 듯 두리번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샤먼의 손을 잡고 “It is done. We have to go.”라고 말하자 샤먼은 여전히 화장실 표지판에 눈을 둔 채 미적미적 일어섰다.

샤먼을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오자 밖에서 다른 아이들을 줄 세우던 다른 보조교사들이 어떻게 데라고 나왔냐고 신기해하였다.




3초도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없어서 수업에 참여시키기 참으로 어려운 샤먼은 표지판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특히 화장실 표지판을 몹시도 좋아한다.

학습지라도 하거나 책이라도 읽자면 샤먼은 금세 안달을 내며 어쩌지를 못하다가 교사들이 도망을 못 가게 하면 자기 팔뚝을 깨문다.

샤먼도 3번 방에 적응하기 힘들었겠지만 3번 방 교사들도 샤먼을 안전하게 돌보는 것이 참 어려웠다.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지만 샤먼은 3번 방에는 화장실이 없지만 다른 유치반 교실에는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등교 첫날 간파하였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면 눈 깜짝할 새에 그 교실 중 한 곳으로 뛰어들어가 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샤먼이 순식간에 화장실이 있는 교실로 뛰어들어갈 때마다 우리는 샤먼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애를 먹었다.

타이머도 사용하고 다른 심리치료사나 상담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며 여러 가지 것들로 샤먼의 마음을 움직이려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교실 불을 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에 스쳤고, 아마도 샤먼이 불을 끄면 끝난 것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지 ‘교실 불 끄기’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화장실 표지판을 향해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건네는 샤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의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내 어눌한 영어로 그 아이들을 움직일 수 없지만 뭔가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움직일 수 있을 때가 있다.

물론 나에게 아이들을 다루는 대단한 스킬이나  교육적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그 생각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끔 번뜩 지나가는 생각이 문제를 해결하게 해 줄 때가 있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도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까’ 싶게 말이다.

이후로 ‘교실 불 끄기’는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샤먼이 다른 교실로 뛰어들어가 꼼짝하지 않을 때,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어주었다.




지금 샤먼은 3번 방 담임 Ms. K가 인터넷에서 주문한 화장실 표지판과 코팅한 여러 가지 표지판 그림들 덕분에 어느 정도 우리의 통제 아래 머물게 되었다.

물론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예전과 같고 계속 수업에 참여하게 하면 자기 자신을 물거나 도망가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다른 교실의 화장실을 향해 도망가는 횟수도 줄었고 집에 갈 시간이면 부모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교문 앞에 다른 친구들과 앉아서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샤먼이 주어진 과제들을 스스로 하기까지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 쉽지 않겠지만 샤먼이 천천히 좋아지고 있고 학교에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침에 교문 앞에서 친구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려서 함께 교실로 가는 그 10분을 못 참아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다녀서 결국 아빠나 엄마가 교실에 갈 때까지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빠가 샤먼을 차에서 내려놓으면 도망가지 않고 다른 친구들 옆에 앉아서, 사실 거의 누워서, 가만히 기다린다.


처음에는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이 있는 교실로 뛰어들어가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처럼 그 교실 안으로 마구 뛰어들어가지 않고 기웃거리며 밖을 빙빙 돌기만 하거나  다른 아이들처럼 모래 놀이터에서 놀기도 한다.


교실에서 어떤 활동도 하지 않고 발버둥 치던 샤먼이 지금은 아주 짧게라도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사하고 다행인 것은 집에 가야 할 시간에, 내 손에 잡힌 채이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얌전히 걸어서 교문까지 간다는 것이다.


집에 가자고 해도 난리를 피워서 부모가 교실에 와서 데려갔던 샤먼이 이제 다른 친구들과 같이 교문까지 걸어가서 데리러 온 아빠나 엄마의 손에 인수인계될 때까지 얌전하게 있는 모습은 다소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오늘도 친구들과 앉아서 기다리던 샤먼의 손을 잡고 일으켜 샤먼 아빠의 손에 넘겨주는데,  그 쉬운 것이 무척이나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샤먼의 손을 잡는 샤먼 아빠의 “Thank you.”라는 인사에 마음이 찌릿했고 그 말속에 나와 같은 마음이 묻어있음이 느껴졌다.

이런 작은 기쁨 때문에 끝나지 않는 답답함과 수시로 찾아오는 좌절감에 한숨이 나오는 그곳, 남다른 꼬마들이 있는 3번 방을 향해 나는 내일 아침도 다시 출근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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