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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Oct 21. 2019

발가벗는 임금님의 결석 날

그의 부재가 반가웠던 3번 방 교사들의 솔직한 마음 이야기


3번 방의 벌거벗는 임금님, 에빗이 결석을 했다.




아침에 등교시간이 늦은 TK 아이들을 데리고 오늘은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었는데 아이들이 모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자기가 개 또는 고양이라 믿는 3번 방의 강아지 이디가 말썽을 피워서  Ms. S와 실랑이를 하고 있는 소란뿐 너무도 평화로웠다.


내 동그래진 눈을 본 Ms. K가 "에빗이 아프대. 열이 난대." 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가 "오늘 안 온대?"다시 확인하니

"열이 화씨 105도라서 못 온대."라며 가벼운 걸음으로 아이들에게 걸어갔다.

물론 에빗이 없다고 3번 방이 천국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항상 자신이 개이거나 고양이라고 믿는 이디를 비롯해 찡찡이와 고집쟁이와 조용한 말썽쟁이들이 있으니까.

3번 방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울고 징징대는 소리와 투닥거리는 크고 문제들이 발생했다.

하지만 교사들의 마음에는 평화가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눈치를 봐야 하는 에빗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수학급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은 결석이 고마운 아이들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반가운 날들이 있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에빗, 미안해. 

너는 아픈데 우리는 좋아해서.

네가 없는 빈자리는 너무도 크고 평화로워서 우리는 다른 말썽과 사고는 거뜬히 해결할 수 있었단다.


내일은 네가 돌아오겠지?

우리는 네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어.

제발 아픈 만큼 쑥 자라고 성숙해져서 조금 덜 폭력적이고 옷은 절대 안 벗은 에빗으로 변신해서 돌아오기를!


교실을 나서면서 교사들은 소곤거렸다.

열이 하루에는 내리기 힘들지?

아마 내일도 못 올지도 몰라.


아... 누가 우리를 이렇게 못된 교사들로 만드는가?


혹시나 하고 기다렸던 날인데 막상 에빗이 결석을 하니 못된 생각 탓인지 가슴이 따끔따끔한 하루였다.




이 글을 쓴 뒤, 다음 날도 에빗은 결석을 했고, 결국 그 주 내내 학교에 오지 못했다.


 "어머, 오늘도 에빗이 안 왔네. 많이 아픈가 봐."라는 걱정 어린 말을 나누면서 3번 방의 보조교사들은 몰래 씩 웃었다.

에빗의 눈치를 보며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는 그 한 주동안 3번 방의 교사들은 반가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발가벗는 임금님의 빈자리를 좋아했다.


그 좋아하는 마음이 찔리면서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던 한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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