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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Nov 07. 2019

3번 동물원 우리 안에서 살아남기

말티즈와 핏불 사이에서 태어난 듯 한 3번 방의 강아지 변종 이디 이야기

3번 방을 동물원으로 만들어버린 아이가 있다.

자신을 강아지라 믿는 아주 귀엽게 생긴, 가끔씩만 사랑스러운 아이.

바로 다섯 살 꼬마 소녀 이디의 이야기이다.




3번 방에는 남들과 너무도 다른 독특한 성향을 가졌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꼬마들이 산다.

그중에 특별히 눈에 뜨이는 남다른 아이가 바로 강아지 소녀 이디이다.

이디는 5살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기저귀를 차고 다니며 변기에서 용변을 보는 것을 공포스럽게 싫어한다.

뿐만 아니라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학습활동의 대부분을 거부하며 심지어 손을 붙잡고 이름을 한 번 쓰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들이 흔히 동물 흉내를 내며 놀기도 하지만 이디는 자신을 강아지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어쩌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강아지라 믿고 싶을 만큼 강아지가 되고 싶은 것 같다.

자신을 강아지라 생각하는 이디는 학습활동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면 자기 멋대로 교실을 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책상 밑에 숨거나 책상 위에 올라가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누군가 말리려고 하면 발로 차는 것은 기본이고 할퀴거나 깨물고 주변의 물건을 집어던진다.

3번 방의 교사들 뿐 아니라 언어치료사나 심리 상담사 중에 이디의 손톱이나 이빨 자국을 몸에 새기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물론 다른 3번 방 아이들도 수시로 불쑥 때리고 할퀴는 이디에게 늘 희생제물이 되곤 한다.


학기초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 덕분에 지나던 학교 직원들이 괜히 아는 척하다가 이디의 손톱이나 이빨 맛을 보고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전교에 이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져서 다들 이디를 보면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이디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학기초에, 뭔가 거슬리면 교실을 뛰쳐나가 사라져 버리는 이디 때문에 보조 교사와 학교 직원들이 이디를 찾느라 학교 안을 뛰어다니곤 했다.

수시로 뛰쳐나가는 이디 때문에 애를 먹던 어느 날, 교육국 직원이 와서 3번 방에 덧문을 달아주었다.

가끔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나 아기가 있는 집에 개나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달아 놓는, Pet Gate(강아지 안전문)이라 불리는 작은 동물원 철장같이 생긴 여닫이 덧문이다.

덧문에는 어른들은 손쉽게 열 수 있지만 아이들은 열기 힘작은 잠금장치가 달려있다.

안전문이 달린 뒤, 이디는 더 이상 교실을 뛰쳐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덧문이 부서져라 흔들어대며 뛰어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자신의 힘으로 열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뒤, 뛰어나가는 대신 교실에서 극심한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결국 그럴 때마다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쫓겨나는 형국으로 보조 교사와 함께 교실 밖 테이블로 귀향 가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잠시 뒤, 이디는 교실 밖에서 들어가고 싶어 들여보내 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신세가 되곤 한다.

하지만 한 번 반항의 불이 붙기 시작한 이디는 들여보내도 금방 뒤돌아서서 다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교사들이 이미 파악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끔 현관문을 열고 창살로 된 덧문만 잠근 채 교실 안에 있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작은 동물원 우리 안에서 새끼 동물들을 돌보는 사육사가 된 것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들곤 한다.

온 교실을 뛰어다니며 사납게 "멍멍"거리다가 책상이나 친구들을 핥는 이디를 비롯해 다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장한, 독특한 습성과 남다른 성깔을 지닌 3번 방 꼬마들은 교실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는데, 지나가는 교사나 봉사를 온 학부모들 심지어 다른 반 아이들도 철장 덧문 너머로 3번 방을 기웃거리니 말이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기분이 들면 어떤가?

3번 방을 동물원 우리로 만든 그 철장 덧문으로 인해 아이들이 뛰쳐나갈 걱정이 사라졌으니, 이디 덕분에 설치된 철장 문이 그저 3번 방 교사들에게 정말 고마운 존재인 것을.


이디 덕분에 설치된 동물원 철장 같은 덧문 / 3번 방 꼬마들 도시락 가방을 담는 큰 원통 안에 말썽쟁이 이디 강아지가 숨어있다.





3번 방 이디는 방문객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달려가 냄새를 맡으며 핥거나 펄쩍펄쩍 달려들어서 교실에 있지를 못하게 괴롭히곤 한다.

한 번은 수업 중에 수시로 교실을 순회하는 교장이 3번 방에 들어왔다.

다들 카펫에 앉아 Ms. K가 읽어주는 동화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혼자서 자기 자리에 앉아 얌전히 있게 하려고 준 플레이 도우를 갖고 놀고 있던 이디가 교장을 향해 번개처럼 뛰어갔다.
보조교사가 말리려고 붙들기도 전에 교장에게 달려든 이디는 교장의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더니 팔뚝을 강아지처럼 핥았고 커피잔을 들고 아무 생각 없이 교실을 훑어보던 교장은 깜짝 놀라 뒷걸음을 쳤다.

그 후로 교장은 우리 교실을 방문할 때면 늘 이디를 주시했고 새로운 방문객에 강아지처럼 신이 난 이디가 달려들려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교실을 떠났다.




이디의 냄새 맡기나 핥기는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서 만나는 다른 유치반 아이들에게도 계속되어 쉬는 시간이면 늘 한 명의 보조교사가 이디 주변을 감시한다.

핥는 것도 문제지만 혹시라도 심사가 뒤틀리면 순식간에 같이 잘 놀던 아이들도 때리고 할퀴는 사나운 강아지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간식이나 사탕으로 이디를 어느 정도라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디가 흥분해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규칙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3번 방 교사들은 하루 종일 사탕과 작은 장난감으로 이디를 달래곤 한다.

이디가 배고픈 강아지처럼 늘 간식과 사탕을 먹고 싶어 안달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수시로 말썽을 부리며 수업을 방해하는 이디는 교실에 있는 시간보다 교실에서 쫓겨나 교실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교실 밖에서 사탕이나 간식 하나 테이블에 올려두고 나를 비롯한 다른 보조교사와 울다가 조금 하는 척하다가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다 징징거리며 한 글자 쓰는 식의 억지 공부를 하거나 보조교사와 책을 읽는 시늉을 하는 것이 이디의 학교 일과 중 대부분을 차지한다.

바깥 테이블 일과 중 이디는 운동을 해야 한다면서 틈틈이 두 벤치에 팔과 다리를 걸치고 자신이 개발한 뒤로 팔 굽혀 펴기(Push-up)도 한다.

그런 이디의 엉뚱한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이디의 힘이 더 세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겁도 난다.

 




자신을 강아지라고 믿는 이디의 꿈은 강아지가 되는 것이고 제일 좋아하는 일은 강아지와 노는 것이다.

그러나 이디네 집에는 애완견이 없다.

아이가 강아지를 좋아하는데도 애완견을 키우지 못하는 이디 부모의 마음을 충분히 알듯하다.


아마도 사람들이 강아지를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모습과 강아지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공원을 뛰어다니는 모습에 다섯 살 소녀인 이디는 자신도 강아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고 그 꿈을 실제라 믿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일 좋아하는 동물도 강아지이고 강아지와 노는 것이 제일 좋아는 이디가 자신은 강아지라는 그 망상에 가까운 착각을 벗어버릴 날이 언제일까?

유명한 철학자처럼 자신의 존재를 철학적으로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디는 강아지가 아닌 강아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 어서 오면 좋겠다.

그날이 오면, 3번 방의 강아지 안전문도 치워질 텐데.




강아지 이디가 늘 말썽만 부리는 심술꾸러기인 것은 아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잘못 훈련받은 비글이나 슈나우저처럼 넘치는 에너지로 온 교실을 휘젓고 다니며 온갖 말썽을 부리기는 한다.

그러나 기분이 내키거나 원하는 것을 얻을 때면 주인에게 예쁨 받고 있는, 애교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시츄나 푸들, 말티즈처럼 한없이 귀엽고 깜찍하며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또 그. 러. 나 기분이 상하거나 누군가 심기를 건드리면, 가끔 아니 종종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불쑥 그리고 뜬금없이 살인 기록까지 가지고 있다는 폭력적인 핏불이나 챠우챠우 같은 맹견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리는 것이 이디의 슬픈 현실이다.


세상에 없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에서 한순간에 도사견으로 변해버리는 이디와 함께 하는 3번 동물원의 우리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3번 방 교사들은 이디의 변신 순간을 본능적으로 알아채서 스스로의 몸을 방어하는 기술과 도사견 이디로부터 3번 방 다른 꼬마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수련하고 있다.

교육국에서 이디처럼 사나운 아이들을 돌보는 보조교사들에게는 우주인들이 입는 우주복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엉뚱한 농담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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