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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Dec 02. 2019

3번 방의 허니문은 남다르다

다른 방에서는 보기 어려운 3번 방의 특별히 설레는 허니문 이야기

허니문 (honeymoon)은 '꿀처럼 달콤한 달'이라는 뜻으로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부부가 함께 가는 여행을 일컫기도 하지만, 결혼 직후의 즐겁고 달콤한 시기를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허니문의 두 번째 의미는 결혼이나 신혼부부와 관련하여 사용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나 어떤 집단이나 기관에 적응하여 적당히 편해진 뒤 본성을 보이기 전까지, 서로 조심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특별한 기간을 일컫는데도 종종 사용된다.




교사들이라면 교실에는 학년초 일정기간  허니문이 존재함을 공감할 것이다.

새 학년 새 학기의 시작은 허니문처럼 설레는 시간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한 주 혹은 운이 좋은 경우 두 주 정도 서로를 탐색하는 동안 학생들은 적당히 온순하고 교사들이 적당히 다정하다.

그리고 서로의 숨겨진 발톱과 이빨을 슬쩍슬쩍 드러내다가 드디어 서로의 본성을 드러내고 그렇게 새 학년의 허니문은 끝이 난다.

이와 동시에 교실 안에는 얼마간 힘겨루기의 과정인 학생들의 반란과 교사의 제압이 엎치락뒤치락 반복되는 적응기가 찾아온다.

그러다가 서로를 어느 정도 용납하고 적당히 포기하는 과정을 거쳐 일상적인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안정기에 접어든다.




3번 방에는 다른 일반 학급과 다른, 특별히 매우 짧은 허니문이 존재한다.

5분 허니문 꼬마의 파괴력

첫 등교 날 바로 자신의 남다른 성향과 특별한 점을 마구 드러내는 5분 허니문과 이틀 째 되는 날부터 본성을 드러내는 하루 허니문의 기록을 가진 남다른 꼬마들이 대부분이다.

만난 지 5분 도 안 되어 옆 짝꿍을 깨물어버리거나 등교 이틀째에 교실을 탈출해버리는 야생 꼬마들.

그들 덕분에 새 학년 새 학기의 설렘은 느낄 시간도 없이 사라졌다.


반면에 남들의 허니문이 다 끝나도록 너무 멀쩡해서 '쟤가 왜 3번 방에 왔을까?'싶은 착하디 착했던 꼬마가 슬슬 돌변하기 시작하며 뜬금없이 본성을 드러내는 세 달 짜리 허니문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이런 경우, '아, 네가 그래서 여기에 왔구나. 어쩐지.'라는 생각과 함께 교사들이 찾아오는 배신감의 맛은 더욱 쓰디쓰다.

그런 꼬마들이 새 학년 새 학기의 설렘을 끝낼 수 없게 만든다.




일반적인 교실에서는 달달한 허니문 후에 물고 뜯는 적응기가 지나면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는 안정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완벽한 평화로움은 아니지만 적당한 타협과 용납이 공존하는, 넘어가줄 만큼의 평화를 유지하며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3번 방에서는 서로 다른 허니문 주기를 가진 남다른 꼬마들 때문에 적응기가 끝나지 않는다.

새 학년 새 학기에 잠깐 맞보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특별한 기간이 일 년 내내 계속되는 것 같다.

이제 대충 적응기가 끝난 것이겠지 싶을 때면, 뜬금없이 본성을 드러내어 3번 방을 다시 적응기로 되돌리며 데자뷔를 보는 듯하게 만드는 꼬마들 덕분이다.


가끔 언제쯤 우리 교실에는 타협과 용납으로 감당할 만한 안정기의 평화가 찾아오는 걸까 싶어서,  험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적응기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심지어 절망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본성을 드러내는 3번 방 꼬마들의 내면에서 무엇이 아이들을 충동질하는지 알아내는 것도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그것이 일상이 되면 더 어렵다.

평생 허니문이거나 평생 서로에게 설렌다면 계나  함께 하는 삶이 피곤하여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꾸역꾸역 흘러서 이제는 아이들을 어느 정도 알았다 싶어질 때면, 아이들이 학급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구나 생각될 무렵이면 어느새 학년말이 코 앞에 다가와 있다.

아주 길고 긴 적응기 후에 적응이 되면 떠나야 하는 학년 말이 오는 것이 남다른 꼬마들이 사는 3번 방의 생활인 듯하다.


3번 방에서의 지난 3개월을 돌아보면, 단맛을 보기도 전에 허니문이 끝났고 적응을 해도 끝내 적응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내일,  추수 감사절 연휴 내내 집에서 실컷 남다른 짓을 하다 다시 돌아온 3번 방의 꼬마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고 3번 방 교사들은 그들의 새로운 무엇인가에 다시 적응해야 할 것이다.




매일매일 서로에게 적응해야 하는 길고 긴 적응기를 지나고 있는 3번 방.   

그곳에서는 새 학년 새 학기의 설렘이 날마다 계속된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설렐 것이다.


나는 날마다 새로운 사건들 속에서 어제는 몰랐던 남다른 꼬마들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절대 설렘을 잃을 수 없는 3번 방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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