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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Dec 12. 2019

3번 방의 말 못 하는 청개구리의 하루

언어 장애를 가진 말썽쟁이 카랍의 청개구리 짓 이야기  

3번 방 아이 중 특별히 남다른 꼬마가 있다.

이 꼬마는 아주 총명하고 상황 판단을 잘하며 눈치도 빠르다.

그런데 그 똘똘한 다섯 살 카랍에게는 몇 가지 단어만 어눌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장애가 있다.




담임 Ms. K가 반짝이와 스티커를 꺼내며 아이들에게 오늘의 만들기 작품을 소개했다.

귀여운 스티커가 담긴 접시와 여러 가지 색의 반짝이가 담긴 병에 수선스런 3번 방 꼬마들도 초집중을 했다.

Ms. K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고 보조 교사들이 준비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여러 번 사고를 친 카랍의 말썽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나 잠깐 방심한 사이 카랍이 번개같이 스티거가 담긴 접시를 엎어 버렸다.

내가 "카랍"하며 다른 접시도 엎으려는 손을 붙잡는데 카랍은 좋다고 킥킥거렸다.

결국 경고를 받고 준비물을 빼앗긴 카랍은 슬쩍 의기소침해진 척하더니 다른 친구들이 종이에 반짝이를 뿌리는 순간 갑자기 반짝이 병을 엎어버렸다.  

Ms. K가 카랍은 만들기를 못한다고 하자 두 손의 검지 손가락을 눈에서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하며 우는 얼굴을 흉내를 냈다.

보조 교사 Ms.B가 억지로 붙들어 겨우 겨우 타임 아웃을 가진 카랍이 다시 만들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만들기가 끝난 히나의 작품을 교사들이 칭찬하자 카랍은 히나의 손에 들린 작품을 빼앗아 찢어버렸다.

결국 카랍은 쉬는 시간에 10분 동안 벤치에 앉아있는 타임아웃을 벌로 받았다.




한국인 부모를 가진 카랍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언어 장애가 있다기에 수화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줄 알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곧 부모의 영어가 유창하고 카랍의 청각에는 문제가 없어 영어를 다 알아듣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랍이 유일하게 하는 몇 단어 중 한 가지가 '아빠'이다.

처음 '아빠'라는 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웃는 입모양을 그렸을 때, 내가 "Make 아빠 happy."라며 카랍의 말을 알아듣자 카랍의 얼굴은 햇살처럼 환해졌다.

그 후로 카랍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에게 와서 수화와 자신만의 몸짓을 섞어 의사표현을 하곤 했다.

수화를 전혀 못하는 나지만 카랍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상황으로 카랍의 생각을 곧잘 읽을 수 있었다.

카랍의 "Make 아빠 happy." 그리고 카랍의 ㅠㅠ


다른 자전거에 막히면 우왕좌왕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카랍은 다른 자전거들의 위치와 장애물을 고려해 앞뒤로 자전거를 운전하며 기가 막히게 빠져나오는 공간감각과 운동신경이 뛰어난 아이이다.

교사들이 조용하게 주고받는 말을 어떻게나 잘 알아듣는지 놀거나 다른 것을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알아듣고 뛰어나오거나 교사들의 말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소리와 몸짓으로 참견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일부러 말썽을 부리거나 반대로 행동하여 다른 교사들의 지적을 받거나 스스로 타임아웃을 받게 만드는 묘한 청개구리 심보를 가지고 있다.

잘못해서 혼을 내거나 말썽에 교사가 화를 내면 자기는 말을 못 해서 괜찮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못 들은 척하거나 더 어긋난 행동을 하며 딴청을 피운다.

상황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해력이 부족하면 교사들도 눈을 감아줄 텐데, 모든 것을 빤히 알고 돌아가는 상황을 다 꿰고 있으면서 일부러 엇나가니 교사들도 가끔은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답답할까 아니면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답답할까?

카랍을 보면 종종 그런 의문에 빠지곤 한다.

말을 할 수 없지만 말 대신 말썽과 심술로 의사표현을 하는, 답답한 게 없어 보이는 카랍 덕분에 3번 방 보조교사들은 답답하기만 한 날들이 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가방을 메고 줄을 서는데 카랍이 앞에 선,  자신을 강아지라고 믿는 이디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사나운 이디가 갑작스러운 카랍의 주먹질에 너무 놀라서 꼼짝도 못 하는 사이 카랍이 발로 차기까지 하려는 것을 본 나는 부리나케 둘 사이를 막아서며 카랍의 두 팔을 잡았다.

내게 두 팔이 잡힌 카랍이 미안하다는 인사를 거부하며 실실 웃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게다가 맞은 이디는 펄쩍펄쩍 뛰면서 강아지가 짖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만들기 시간에 부린 말썽 때문에 아침에 골라놓은 비눗방울 상품을 못 받아서 심통이 난 것은 알지만 이런 어긋한 행동은 언어 장애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주기는 힘들 때가 있다.


  

상으로 교사들의 손을 잡게 해 주면 신이 나서 손을 잡으면서 기뻐하는 카랍은 결국 '교사들  잡기' 상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이 교사들의 손을 잡고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 동안 카랍은 혼자 걸어가야 했다.

손가락으로 눈물 내려오는 시늉을 하며 어깨를 늘어뜨리고 가는 카랍을 보니 아까 치밀었던 화는 사그라지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코너를 도는 사이 카랍이 가방을 벗어버리더니 혼자 달려가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카랍을 쫓아가 붙들어 가방을 다시 어깨에 메어주는데 좀 전의 짠한 마음은 꿀밤 한 대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종일 어긋난 말썽을 부린 말 못 하는 청개구리 카랍을 노란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고 교실로 가면서 다른 교사들과 한숨 섞인 미소를 주고받았다.




아마도 말을 못 하기 때문에 제대로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카랍에게는 청개구리 심보가 생겼고, 심보가 뒤틀릴 때면  "개굴개굴"하면서 카랍의 주먹이나 발길질, 또는 말썽이 튀어나오는 것일 것이다.

카랍은 다 알아듣고 다 이해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데다가 자기의 생각을 우리가 읽어줄 때까지는 기다릴 수도 없어서 청개구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음과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카랍만의 답답한 세상에 갇혀 살면서 그곳에서 뛰쳐나오고 싶어 펄쩍펄쩍 뛰다가 청개구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청개구리가 너무 똘똘하고 재빨라서 항상 교사들의 숨이 턱까지 차도록 만드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가 카랍의 눈빛과 몸짓을 조금 더 빨리 읽어주면 카랍이 조금은 얌전한 개구리가 되어줄 수 있을지, 카랍을 싣고 떠나는 노란 스쿨버스를 보며 답답한 마음으로 카랍의 답답함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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