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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Dec 18. 2019

매년 찾아오는 '독감 유행'이 고마울 때도 있다

3번 방에 잠깐의 평화를 선사해준 독한 감기에 대한 이야기

해마다 찬 공기와 함께 찾아오는 Flu season은 교실에 빈자리를 만들곤 한다.

그리고 독감으로 결석한 그 빈자리는 3번 방에 작은 평화를 선물하기도 한다.




부모의 차를 타고 등교하는 헤든과 히나 그리고 나나를 데리고 3번 방으로 향했다.

코너를 돌아 3번 방에 다다르면 교실 밖의 가방걸이가 먼저 눈에 띤다.

재빠르게 스쿨버스 타고 등교한 아이들의 가방을 세어보는데 이디의 가방이 안 보였다.

아이들을 교실로 들이면서 담임 Ms. K에게 물어보니 이디가 Flu에 걸려 학교에 못 온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도 겨울이 오면 기온이 떨어지면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다.

그리고 Flu Season이라 불리는 독감철이 시작된다.

일교차의 폭이 커질수록 독감은 더 극성스럽게 아이들을 찾아오고 아이들 뿐 아니라 교사들까지 돌아가며 독감으로 고생을 하곤 한다.


올해도 차가운 아침 공기와 연이은 비와 함께 여지없이 Flu season이 시작되었다.

가끔씩 감기 때문에 하루 이틀 결석을 하는 일이 생기더니 본격적으로 독감이 돌고 있는지 지지난 주부터 나나와 헤든 그리고 코인과 일리가 번갈아가며 결석을 했다.


아이들이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면 입을 가리도록 잔소리를 하고 수시로 손을 닦게 한다.

하교하면 특별히 신경 써서 교실 책상을 닦고 장난감 청결에도 신경을 쓴다.

그렇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독감 바이러스를 그런 것으로 막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번 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에빗이 열 때문에 학교에 못 오고 어제는 카랍이 학교에 못 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 다고 누군가 결석하면 그 허전한 곳에 약간의 여유가 깃든다.

3번 방의 강력한 꼬마 에빗과 카랍의 결석 덕분에 며칠 동안 3번 방에 허전한 느낌의 특별한 평화가 잠시 다녀갔다.

벌거벗는 임금님과 말 못 하는 청개구리가 돌아가며 결석을 해주니 교사들의 일손이 남아도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모두들 돌아가며 독감으로 이틀이나 사흘씩 결석을 하는데도 꿋꿋하게 매일 등교하던 강아지 소녀 이디에게 드디어 그 독감 바이러스가  찾아온 모양이다.

강아지 소녀의 빈자리는 더욱 남다르게 컸던 모양인지, 한 명이 결석했을 뿐이데 3번 방 아이들이 반은 줄어든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이상하게 몸이 편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툭하면 자리에서 도망가는 것을 쫓아다니고 다른 애들에게 해코지하려는 걸 붙잡아두느라 보조교사들이 돌아가며 혼이 빠지곤 했던 일이 사라져 버린 탓이다.


열과 기침으로 찾아온 독감 때문에 3번 방의 남다른 꼬마들은 학교에도 못 오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부모들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3번 방에는 누군가 못 온 덕분에 크기와 정도는 다르지만 은근히 즐거운 여유로움이 머물렀다.

독감의 유행이 강력할수록 3번 방에서 평화의 크기는 커지는 모양이다.


물론 아이들이 독감으로 결석을 많이 할수록 교사들이 독감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 함정!

교사들에게도 독감은 예외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결석해주는 독감 시즌의 평화를 누릴 때면 교사들도 알아서 몸을 사리며 독감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특히 화가 나면 침을 뱉거나 슬그머니 장난감을 빨아대거나 면전에 대고 재채기와 기침을 하면서도 미안해하지 않는 3번 방 꼬마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알아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체계와 온 교실에 득실대는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면역체계를 갖춰야 한다.




요 몇 주, 독감 때문에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결석을 하며 찾아든 작은 여유와 잠깐의 평화가 좋았던 모양이다.

아픈 아이에게는 미안한데 결석한 아이의 걱정은 하면서 속으로 씨익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어쩌면 나는 말만 번드르르하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부족한 못된 교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독감 바이러스를 뿌린 것도 아니고, 이 특별한 독감철이 주는 잠깐의 여유와 평화를 누리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거라고 찔리는 내 마음을 토닥여본다.


잠깐의 반성 후 오늘의 다짐!

아이들이 독감에 걸려도 금방 이겨내기를 응원하며 나도 독감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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