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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04. 2020

미국인들이 피해 가는 한국인이 되고 있다

미국인들이 나를 피해 다니게 만든 코로나 19 바이러스 이야기  

Alexas_Fotos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공연히 더 먼 길로 돌아갈 때가 있다.

길을 가다 꺼림칙한 것이 보이면 피하게 된다.

요즘은 어쩌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스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스크는 아픈 사람이나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쓰는 것이라는 미국인들의 인식 때문인지 내가 캘리포니아 남부 지방에는 아직까지는 간혹 마주치는 중국인들을 제외하고는 마스크 착용자들이 거의 없다.  


며칠 전, 동네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는데 중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았고 그들의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어쩐지 그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 주춤거리는데 왠지 장을 보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뿐 아니라 내 주변을 피해 빙 돌아서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와 달리 내가 카드를 밀고 가면 주변의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서며 공간이 생기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괜한 피해의식인가 싶기도 했지만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나를 피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다음 날, 지인에게서 동네 마켓에 갔는데 물건 진열대에 들어서니 주변의 미국인들이 옆으로 비켜서거나 자신을 피해 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스트코에서 내가 경험한 것도 있기에 그것은 그저 느낌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피했던 것이 사실일 것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지난 12월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바이러스 사태가 불거질 때만 해도 이곳의 한국인들은 중국 사람들을 가급적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고, 마켓에서 중국어로 떠드는 이들을 향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한국의 경보 수준이 올라가면서 이제는 중국인들보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기피대상이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처음 중국발 바이러스에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하고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도 중국인과 마주치는 것을 회피했듯이, 미국인들도 비슷한 두려움에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는 나라 사람을 피하고 싶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아시아인은 대부분 비슷하게 보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니, 요즘은 중국인과 한국인이 동일하게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제는 이곳의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한국인들과 같은 경계 부류로 취급되는 것이 언짢아지게 될 것 같은 상황인 듯하다. 


코로나 19를 우한 폐렴,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던 때에 유럽에 있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중국인으로 오해한 유럽인들에게 바이러스라고 불리거나 멸시가 담긴 인종차별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에게 닥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미국에도 오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수상 소식과 영화에 대한 찬사가 흘러나오던 미국 라디오에서 지금은 수시로 "Korea"라는 말과 "Corona VIrus"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고 있다.

한국의 환자 수와 함께 꼬부라진 발음으로 “신천지”라는 단체의 이름까지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운전을 하다가도 귀가 쫑긋 해지면서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뉴스에 코로나와 한국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이곳에서 한국인인 것이 불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의 나라에 살다 보면 내 나라에 살 때와 다른, 뭐라고 말하기 애매하지만 은근히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 코러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것이 미국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나오기 시작한 이후, 마켓 장을 보러 가거나 동네를 돌아다닐 때면 괜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요즘 미국의 확진자와 사망자들이 늘어나는 소식에 한국인임이 염려스러운 상황이 오지 않을까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불안한 마음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걱정에 휩싸이게 하며 억울한 마음이 들게 한다.

사람들은 그 불안감이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비난과 적대감을 쏟아내고 싶어 한다.

오래전  LA 폭동 때처럼,  불안해진 사람들의 두려움과 적대감이 한국인들의 상권이나 경제에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인권과 안전의 문제로까지도 이어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말들이 주변에서 오가기도 한다. 

미국뿐 아니라 남의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내가 한국인임을 아는 미국 학교 동료들이 간혹 지나가다가 걱정 어린 얼굴로 묻고 한다. 

"한국에 있는 네 가족들은 괜찮니?"

"너의 나라 괜찮은 거니?"

그들의 우정 어린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기껍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것도 그 두려움과 같은 맥락이리라. 




내 조국의 어려운 상황이 속히 해결되고 코러나 바이러스가 잦아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국인이라 특별히 더 바이러스를 옮기는 게 아닌가 도끼눈으로 바라보는 남의 나라 사람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한국의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지금 주변의 은근한 압박과 적대감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이 상황을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jAlexas_F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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