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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23. 2020

코로나로 텅 빈 진열대, 무서운 욕심으로 채워지고 있다

미국을 덮은 것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위험성이 아닌 사람들의 욕심이다

마스크가 세상 귀한 물건이 되었다.

마트의 진열대가 텅 빈 사진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나도 뭔가를 사서 쟁여놓고 준비해야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몰려온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기본적 개인위생인 '손 씻기'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기본에 충실한 것이 건강의 기본임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손 씻기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 뒤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강박증이 찾아왔다.   

그 강박증은 똑같이 일상을 뒤덮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연히 다른 태도로 대처하는 각국의 국민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내가 자란 한국의 국민들과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국민들의 태도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기감을 느낀 한국 국민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의 건강을 위해 마스트 쓰기를 실천했고, 마스크를 쓰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실내보다 실외에 있는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수가 늘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마스크 수급 문제로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한국의 마켓에는 진열대가 비는 극심한 사재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바이러스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는 뚱딴지같은 두루마리 화장지 대란은 전혀 없었다.

한국 국민들은 물건을 사서 쟁여놓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시달리는 대신, 서로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확보하고 생활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이나 대부분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국 국민들과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코로나 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증가하며 정부의 경고에 위기감을 느낀 이들은 사재기를 시작하였고, 그 모습은 미국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들썩거리기 시작할 무렵 인터넷에서 사재기로 텅 빈 다른 나라 마켓의 진열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화장지를 사재기한다는 어떤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에 어이가 없어 웃기도 했다.

친구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모르는 근거 없는 이야기와 사진들을 SNS에 퍼 나르고, 그것을 본 딸아이가 불안한 마음에 쪼르르 달려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누구든 솔깃할 법한 불안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만 해도 나는 너무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라며 아이를 다독였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인근에서 코로나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쏟아져 나오고, 이 주 전만 해도 코로나에 코웃음을 치던 트럼프가 자못 진지하게 국가적 위기를 선포하면서 미국의 분위기는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250명 이상의 대규모 모임을 자제하라는 기관의 안내문을 받은 지 이틀 만에 모든 모임을 금지하라더니 며칠 전부터는 외출을 자제하라는 강력한 권고가 내려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급변하는 코로나 물결에 휩쓸리는 삶을 경험하는 기분이다.

엊그제는 공원에서 다른 사람과 6 Feet 보다 가깝게 있었다고, 외출금지령이 내렸는데 출근한다고 벌금 티켓을 받은 윗동네 사람의 이야기까지 들려올 만큼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다른 주에서 주민들의 이동을 강력하게 제한하기 시작했다.


요즘 미국 마켓에 가면 볼 수 있는 공통적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정 수의 사람만을 들여보내는 마켓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사회적 거리두기(Socaial Distance) 방침에 따라 띄엄띄엄 줄을 선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제품이 사라진 채 가격표만 붙어있는 텅 빈 진열대다.


열흘 전 동네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을 때, 물과 화장지 진열대가 비어 가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사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들의 결사적인 모습에 놀란 나도 군중심리에 휩쓸려 얼른 물과 화장지를 카트에 담았다.

다음 날, 옆 동네의 한국 마켓에 쌀이 동이 났다는 말에 겁이 덜컥 나서 부리나케 한국 마켓에 가서 쌀과 라면을 사 오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뉴스에서 보던 사재기가 미국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마켓에는 카트가 넘치도록 물건을 채운 사람들이 줄을 섰고, 파스타와 달걀, 특정 약품이 사라진 텅 빈 진열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두루마리 화장지와 페이퍼 타월의 진열대가 제일 먼저 텅 비는, 어이없어 웃던 일이 미국에서도 벌어졌다.

일 년에 두세 번만 사면 되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사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인 배설의 욕구를 깨끗하게 해소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집에 들여놓으면 크게 자리를 차지하여 불안함이 채워지는 그 중간 어디쯤에 숨겨진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켓의 물건은 언제나 채워질 것이라며 예의 트럼프 특유의 강한 어조로 부르짖을수록 미국 국민들의 사재기 욕망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자신과 다른 이들의 건강을 위해 접촉을 막을 수 있는 마스크를 사는 대신 미국인들은 Garage라고 부르는 주차 공간에 먹을 것과 생활용품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사재기는 나의 심리를 자극하고 급기야 사람들의 물건에 대한 극심한 허기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물량을 부족한 마켓에서는 가정당 계란 2판, 우유 2개 그리고 화장지 1팩으로 제한하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우리 동네 마켓의 달걀 코너에는 열흘 째 달걀을 볼 수 없고 화장지 코너의 화장지는 볼 새도 없이 사라진다.


무엇이라도 막 쟁여놓고 싶다.

남들보다 더 많이 쌓아놓고 싶다.

마켓의 진열대가 비어져가는 만큼 내 창고에는 더 채워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이 느껴진다.

심지어 화장지가 금방 떨어져 버릴 것 같고 다시는 화장지를 살 수 없을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런 두려움은 마스크 생산에 주력하느라 원료가 없어져 화장지 생산이 안 될 거라는 허튼소리를 믿게 만든다.

일 년에 두어 번 밖에 안 사는 두루마리 화장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화장지 대란은 코로나 시대에 드러나는 인간의 욕심이 보여주는 기이한 민낯이다.

마켓의 진열대가 비는 만큼 내 것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을 무엇인가로 채우고 싶은 욕심은 커지는 모양이다.





미국에서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Socaial Distance를 지키기 위해 마켓에 들어가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기까지 함에도 집 밖으로 나오면 누군가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켓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카트를 밀고 다니면서도 마스크를 착용한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의 확진자 순위가 올라갈수록 마스크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 미국인들에게 마스크는 어색하고 불편한 것인 모양이다.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 사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자신뿐 아이라 상대방을 위해서도 마스크를 착용하는 편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손을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부지불식 간에 서로에게 튀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의학적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가 얼마든 마스크 착용은 나로 인해 바이러스가 퍼질 확률과 누군가가 퍼트린 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을 줄여줄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코로나 시대가 지나갈 때까지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처럼 먹을 것과 생필품을 쌓아놓는 미국인들의 모습은 결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많던 코스트코의 세탁 세제도 동이 난 것을 보면 아마도 미국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질 때까지 쌓아놓은 것을 먹고 쓰며 집 안에서 빨래를 열심히 할 생각인가 보다.


마스크를 쓰고 용기를 내어 찾아간 마켓에서 사재기로 인해 여전히 텅 빈 진열대를 볼 때면, 귀가 몹시도 얇고 남들 못지않은 욕심을 가진 나는 주변의 사재기에 합류하여 우리 집 냉장고와 Garage에 쌓아둔 물건들에 안도감을 느낀다.

어제는 Socaial Distance 하느라 15분을 줄 서있다가 마켓에 들어갔는데 며칠 째 안 보이던 닭고기 팩이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내일 오면 없어질지 모를 닭고기 팩을 얼른 카트에 담았다.

같이 고기 진열대를 둘러보던 미국인이 나를 보고 그 옆에 있는 닭고기 두 팩을 재빨리 자기 카트에 담았다.


물건은 사재기하지만 마스크는 쓰지 않는 용감한 미국인들 옆에 살면서 소심하게 마스크를 쓰고 마켓에 가는 나는, 여전히 미국인들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다음 주에 먹을 닭고기를 사재기하며 미국에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욕심을 더 키우기 전에, 미국인들이 욕심껏 사재기한 것을 다 쓰기 전에 코로나 시대가 끝났으면 좋겠다.

어이없는 사재기의 옛이야기에 호탕하게 웃으며 내년까지도 다 쓰지도 못할 두루마리 화장지를 환불받으러 가는 날이 속히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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