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Mar 28. 2020

내 생애 첫 휴교는 외출금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 미국에서 맞이한 휴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내 생에 첫 휴교를 경험하고 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은 학교가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면서 대학교까지 12년을 학생으로 살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기 전까지도 기간제 교사로 일을 했으니 나는 학교에 입학한 이후 학교를 떠나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지금은 동네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으니 내 인생의 중심을 학교가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사십 년 가량을 학교라는 곳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었던 손에 꼽힐 날을 제외하고는 학교에 가야 하는 날에 학교에 안 가본 적이 없는 나름 성실한 학생과 교사로 살았다.


그런데 이주 전, 아픈 것도 아니고 학교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월요일부터 학교에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휴교에 들어간 다른 나라 학교들처럼 미국 학교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휴교를 결정한 것이다.

이미 다른 나라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학교를 휴교하겠다는 교육구의 긴급통보에 가슴이 덜컥했다.




휴교  :
1. 학교가 학생을 가르치는 업무를 한동안 쉼.
2. 학생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일을 한동안 쉼.
                                                                       - 한국어 표준 사전


코로나 시대의 휴교 :
학생이나 교직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염이 되거나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학교는 학생을 가르치는 업무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쉬어야 하고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일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통제될 때까지 쉬어야 함.                                                                                - 날마다 소풍




어릴 적, 눈이 너무 많이 내리거나 비 때문에 다리가 끊어져서 휴교를 했다는 뉴스에서 들을 때면 눈이나 비 때문에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식적으로 학교에 안 가도 되는 것이 "휴교"라는 것이 몹시도 부러웠다.

그런 뉴스를 듣고 학교에 가면서 내가 사는 곳은 눈이나 비가 쏟아져서 학교 가는 길이 막히지 않는 것에 어리석은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생애 처음 맞이한 '휴교'는 내가 뉴스를 보며 부러워했던, 천재지변으로 인해 이삼일쯤 학교에 안 가고 신나게 놀아도 되는 그런 '휴교'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누군가를 몹시 아프게 만들고 심지어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위험한 바이러스로부터 언제쯤이나 벗어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위기상황에서 벌어진 휴교인 것이다.

생에 첫 휴교를 맞았건만 가족들과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친구들과 신나게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닐 수도 없는, 천재지변보다 강력한 바이러스로 인한 '외출금지령'과 함께 찾아온 휴교였다.


철없던 어릴 적 내가 그랬듯이, 눈보라나 토네이도로 휴교를 한다는 미국 중동부의 뉴스에 우리도 휴교를 하고 쉬면 좋겠다던 철부지 우리 아이들은 휴교가 결정된 날 눈이 휘둥그레져서 집에 왔다. 

"엄마, 나 휴교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내 인생에 휴교를 경험하는 날이 올 줄 몰랐어. 그런데 바이러스 때문에 친구들도 만나지 말라는데 무슨 재미야!"

처음에는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았다는 것에 겁을 내던 두 아이는 금세 학교에 안 가는 것을 내심 즐거워하며 컴퓨터와 핸드폰에 하루 종일 붙어 유튜브와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밖에 쏘다니지도 못하는 휴교를 이주 째 보내면서 집안에 갇혀있는 것에 점차 진력을 내더니 학교에 가고 싶어 몸살이 났다.

아마 우리 아이들도 어릴 적 나처럼 천재지변으로 공식적으로 학교에 갈 수 없게 된 우연한 자유를 만끽하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그런 휴교를 기대했을 것이다.


어쩌면 사십 년을 넘게 학교를 다닌 후에야 첫 휴교를 경험한 나는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든 자연현상으로 인해 빚어지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휴교 뒤에는 내가 보지 못한 어려움과 아픔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인간의 오만과 무지가 만든 바이러스라는 재앙으로 인해 내 인생 첫 휴교를 경험하면서 어린 시절 부질없이 부러워했던 마음이 부끄럽다.





가끔 주어지는 공휴일이나 연휴가 되면, 학교에 출근 안 하고 종일 집 안에서 어슬렁거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달콤했었다.

어려서부터 집 안에서 혼자 꼬물거리며 노는 걸 좋아한 탓인지 성인이 된 후에도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고 가끔은 그 시간이 행복하게까지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학교에도 오지 말고 사람도 만나지 말고 실컷 집 안에만 있으라는데 그 달콤함은 어디 가고 밖에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학교에 오지 말라니까 더 가고 싶고 밖에 나오지 말라니까 더 나가고 싶다

누구라도 만나 마구 수다를 떨고 싶어 지기까지 한다.

마스크를 끼고 별러서 마켓에 나가는 것이 이렇게 스릴 넘치게 느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생애 첫 휴교는 어릴 적 내가 꿈꾸던 것처럼 신이 나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평생 부러워했던 휴교인데 얼른 끝나서 별다를 것 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던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다.

생애 처음 경험하는 휴교는 특별한 일 없이 부지런히 쳇바퀴를 돌리던 시간들이 몹시도 소중했던 것임을 알게 해주고 있다. 


함께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소소한 일상과 별것 없이 반복되던 생활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종종 만나곤 한다.

코로나 시대는 눈에 보이는 수많은 것을 만들어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막을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특별한 변화와 남다른 삶을 꿈꾸었던 보통 사람들에게 쳇바퀴와 같은 삶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고 있나 보다.




인생에 휴교는 한 번이면 족한 것 같다.

내 생애 첫 휴교가 마지막 휴교였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로 텅 빈 진열대, 무서운 욕심으로 채워지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