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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13. 2020

아이패드 소란에서 본 미국 교육 행정의 허술함

준비와 계획 없는 행정이 만든 교육적 손실의 단면 이야기 


해외에 사는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것처럼 나도 미국에 살면서 체계적이지 못하고 느린 미국식 행정절차에 답답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

학교나 교육구의 행정처리에도 미국 특유의 허술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곤 하는데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맞은 휴교 후 온라인 수업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 교육구의 미국식 행정에 한숨이 나왔다.




휴교가 장기화될 상황에서 교육과정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구에서는 온라인 수업(Distant Learning)으로 학기를 마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온라인 수업의 방향이 정해지자 집에 온라인 수업을 위한 디바이스가 마땅치 않은 가정에 학교와 교육구에서 사용하던 아이패드를 대여해주기로 했다.


아이패드 수령 학교로 지정된 우리 학교에서는 급히 보조교사들을 소집했고 나를 비롯한 보조교사들은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아침 일찍 학교에 출근하여 대기했다.

그러나 아이패드와 충전기 몇 백개가 든 박스를 승합차에 가득 싣고 온 교육구 직원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 직원은 아이패드 등록번호와 학생 번호를 일일이 컴퓨터에 입력해야 함에도 미리 아이패드 번호를 등록해 오지 않았고 현장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하였다.

급히 불려 온 보조교사들은 끝이 보이지 않게 줄을 선 차 안에서 기다리는 학부모들에게 학생들의 번호를 받아 적고 아이패트 등록번호를 적어가며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번호를 적어 넣을 서류도 준비되지 않아 복사 용지에 주먹구구식으로 적어야 했다. 

미리 사전 교육도 없고 서류도 준비가 되지 않은 탓에 엉뚱한 번호를 적거나 학생인지 학부모 이름인지 제대로 확인을 못하고 아이패드를 빌려주는 등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매우 혼란스러웠다.

결국 우리가 적어오는 번호를 혼자서 입력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교육구 직원은 번호 적은 종이만 모아달라고 했고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아이패드를 나눠주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커다란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교통경찰 여러 명이 교내에 들어섰고 우리 학교로 들어오려고 줄을 선 차들 때문에 학교 밖 큰 도로까지 마비되었다며 우리가 하는 일에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줄을 선 차는 줄지 않고 마음은 급해진 학부모들이 불법주차까지 하고 아이패드를 받기 위해 학교 언덕길을 내려오는 위험한 상황까지 목격하자 경찰들은 아무리 교육구에서 하는 일이라도 Social Distance(사회적 거리두기)도 지켜지지 않고 교통안전에 문제가 된다면서 해산 명령을 내렸다. 

경찰과의 실랑이 후 매우 화가 난 교장은 모든 아이패드를 교내로 옮기도록 했고 직원들을 교내로 들여보낸 후 아이패드 나눠주는 것은 추후에 다시 공지한다는 안내문을 학교 현관에 붙이고 문을 잠가버렸다.

지정된 시간에 오라고 해서 온 학부모들에게 아이패드를 못 준다며 그냥 가라고 종이만 붙여놓고 나 몰라라 하는 교육구 직원과 교장의 모습에 내가 헛걸음을 한 것도 아님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성급한 행정에 닫힌 학교 문을 두드리거나 학교 주차장을 서성이며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학교까지 와서 안내문을 보고 돌아섰거나 한 시간이 넘도록 차 안에서 기다리고도 허탕을 친 학부모들에게 미안했는지 그 날 오후 교육구는 사과와 함께 모두 필요한 아이패드를 받게 될 것이니 걱정 말라는 이메일을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모두가 처음 겪는 갑작스러운 휴교의 상황이지만 당장 Distant Learning을 실시해야 한다는 행정적인 성과만을 고려한 교육구의 준비 없는 일처리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과 학부모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학교 현장이나 학부모에 대한 배려 없이 결정된 행정은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누구나 알만한 상황을 준비 없이 성과를 위해 밀어붙이는 교육구의 모습은 선진국의 교육행정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며칠 늦게 주더라도 이름이나 사는 지역에 따라 날짜와 시간대를 달리하거나 서류 절차를 제대로 준비를 한 뒤 배분했더라면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간과 인력 낭비는 없었을 것이다.

며칠 뒤, 필요한 가정에 아이패드를 대여하는 일은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그 사이 온라인 수업도 시작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되고 휴교가 끝난 후 아이패드를 수거해야 될 때는 더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사전 교육 없이 줄을 선 학부모들에게 아이패드를 나눠주는 상황에서 아이패드 등록번호나 학생 번호를 제대로 적지 못한 혼란한 상황이 우리 학교에서만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아마도 제대로 수거되지 못하거나 지금 어디에 가있는지 모르는 기기가 상당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학교에서 일하면서 미국인들은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민주적인 척하지만 의외로 허술하고 주먹구구식이며 강압적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형편이 안 좋은 가정을 고려하여 아이패드를 나눠준다고 보기 좋게 시작했으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탓에 모여든 수백 명의 학부모들을 해산하면서 아무 말없이 안내문 종이 한 장 문에 붙이고 문을 잡가 버리는 것이 미국이다.

아이패드의 대여와 반납 과정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실수로 벌어진 손실은 또 어떻게든 메꿔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준비 없는 교육행정으로 생길 교육 재정의 손실이 미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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