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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20. 2020

'이런 글을 왜 썼을까?' 싶은 책을 만난 날

나는 누군가 읽어줄 거라며 쓴 내 글이 부끄러웠다.

어떤 작가가 쓴 정말 재미없는 소설을 읽다 말고, 내가 썼던 글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가끔 미국 도서관에서 한국 소설책을 빌려다 읽곤 한다.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 서적을 빌려볼 수는 것은 고마운 한국인들이 그들의 책을 기증해준 덕분이다.

미국 도서관의 외국어 서적 코너의 한편에 비치된 한국 책 중에서 책을 고르는 것이다 보니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꽤 이름난 책을 발견하거나 내가 책장을 넘기는  것도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재미있고 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책을 읽을 때면 작가의 천재성과 탁월한 영감에 감동과 탄사가 흘러나온다.

그럴 때면 누군가의 나눔 덕분에 아무 노력도 없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에 고맙고 황송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페이지를 몇 장 넘기도 전에 이런 글을 왜 쓴 걸까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을 만날 때도 있다.

물론 글을 쓴 이에게는 고뇌의 시간과 피땀이 담긴 책이겠지만 책장을 더 넘겨볼까 말까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 말이다.

몇 주 전에 빌린 책 중 그런 책이 있었다.

제목이 근사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계속 읽는 것이 옳은가 싶은 고민이 들었다.

빌린 게 아깝기도 하고 혹시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몇 장을 더 읽다가 앞으로 그 책에 들일 시간이 더 아까워서 덮어버렸다.

이런 책을 쓴 작가도 책을 펴낸 출판사도 대단하다며 이 책을 돈 주고 산 사람은 돈 아까웠겠다고 투덜대다가 움찔했다.




브런치 작가랍시고 나름 영감이 떠올른다 느껴지는 순간이면 주저리주저리 글을 적어 내려가고 용감하게 '발행'까지 눌렀던 나의 글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놀라운 경험에 나는 매우 작가스럽게도 생활의 틈새에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열심히 주워 담았고 작가정신을 지키기 위해 틈을 내어 열심히 글을 썼다.

물론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글에 담을 만한 가치 있는 소재들이었고 나름 만족스러운 글을 썼다는 뿌듯함도 느꼈지만 그 가치와  뿌듯함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생각을 글에 담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거나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의의를 두게 되는 경우가 다 반사였다.

시간이 아까워서 읽다 덮어버린 책은 내 브런치에서 늘어가고 있는 부끄러운 글의 숫자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일전에 별생각 없이 일상에서 만난 조금 특별한 상황에 나의 좁은 소견과 조잡한 철학을 담아 브런치에 올린 글이 약간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글을 읽은 사람의 숫자만큼 뭇매를 맞았고 나의 부족한 논리와 글솜씨에 비난도 넘치게 받았다.

지극히 개인적이었을지라도 만족스러워했던 나의 글이 한없이 부족한 것이었다는 생각에 글을 쓰는 일이 한동안 망설여졌다.

약간의 망설임 후에, 시대가 이해할 수 없는 작가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닿는 글을 쓸 수도 있을 거라며 다소 허세스러운 작가 정신으로 나를 추슬렀다.

더디더라도 글이 쌓이는 만큼 논리와 실력도 늘어 언젠가는 읽어줄 만한 글이 써질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안 쓰기 시작하면 다시는 못 쓰게 될 것 같아서 이후로도 꾸역꾸역 글을 써왔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남이 쓴 이야기를 평가하고 그 책을 펴낸 출판사를 흉보고 있었다니.

글 하나로도 이리저리 차이는 내가 출판사에서 책까지 펴낸 누군가의 글을 비웃었다니.

내 마음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내가 뱉은 말이 몹시 창피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까워서 덮어버린 그 소설책을 다시 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시간에 내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는 다른 책을 한 장이라도 더 읽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나는 고심하고 고민하고 나름 고뇌도 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행간에 담았던 이야기와 생각을 읽는 누군가는 이럴 수 있다.

이런 글을 왜 썼지?

이런 걸 글이라고 썼나?

우연히 클릭했다가 혹은 읽은 만한 내용인가 싶어 스크롤을 움직이다가 두어줄 읽고 나가버린 이도 있을 것이다.

읽다 보면 뭔가 괜찮은 내용이 있으려나 참아가며 읽다가 시간이 아깝다고 투덜댔던 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은 그런 이들에게는 몹시도 미안하고 구독자라며 꾸준히 읽어주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다행이다.

누구도 돈을 내고 내 글을 읽는 것이 아니어서.

낸 돈이 아깝다 싶은 글이면 정말로 미안할 테니까.


이 작가는 천재인 건가, 이런 작가를 알아보고 책을 낸 출판사가 큰일 했다며 읽었던 그런 대단한 책을 쓴 작가까지는 꿈도 꾸지 않는다.

그저 어떤 이들에게 끝까지 읽고 싶고 다음 글이 기다려지는 글 정도까지는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런 작가가 되려면 어쨌든 뭔가는 써야 할 텐데......

글을 쓸수록 내 글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내가 아직은 글을 '잘' 쓸 줄 모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며, 쓰다 보면 조금은 더 ''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여전히 놓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글쓰기 수련을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흔들리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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