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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27. 2020

교실에 둥지를 트는 미국인 교사들

한 교실에 자리를 잡으면 떠날 필요가 없는 미국의 학교 시스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새로운 교구와 담임교사의 경력만큼 오래된 교구들이 공존하는 미국의 교실을 둘러보다 보면 미국 학교 시스템의 비밀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 특수 학급 아이들은 아이들의 상태나 수준에 따라 가끔 일반 학급으로 통합 수업을 가는 경우가 있다.

이제 교사 생활 2년 차이어서인지 교실에 대한 애착이 따끈따끈한 우리 반 담임 MS. K는 교실 꾸미기를 취미로 삼은 듯 철마다 새로운 것을 사다가 나르며 교실 장식을 즐긴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이 가는 일반 학급 중에는 10년 이상 되었을 것 같은, 심지어 색이 바래거나 흘러간 시간이 물씬 느껴지는 숫자판이나 알파벳판이 벽을 차지하고 있는 교실도 있다.


미국에 와서 두 아이를 동네 공립초등학교에 보내면서 매우 흥미로운 것을 경험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후에도 계속 우리 동네에서 살아온 옆 반 엄마가 자기 아들이 이십 년 전 자기 담임 반에 배정이 되어 담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이후로도 엄마나 아빠가 다녔던 공립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자녀들이 부모를 가르친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는 사례를 종종 듣곤 했다.

한국에서는 사립학교나 오래전 시골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미국은 공립학교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미국 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매년 학년 말이면 학교에서는 새 학년 담임 배정을 하는, 교사들에게는 기대 반 실망 반으로 이어지고 교장과 교감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시간을 지나곤 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선호하는 학년을 가끔은 경륜에 대한 배려로, 가끔은 교사 개인적 사정을 고려하여 배정하기는 하여도 새 학년이 시작되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다른 학년과 다른 교실에서 새 학년을 시작하곤 했다.

간혹 원로교사나 학교의 중책을 맡는 부장 교사들에게는 원하는 학년을 내리 맡기면서 같은 교실을 이어서 사용하게 해주는 특혜가 주어지기도 하였지만 길어야 2~3년이었고 대부분 배정 학년과 교실이 순환되는 구조였다.

게다가 공립학교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일정 근무 연한이 정해져 있어서 근무연수가 차면 더 있고 싶어도 전근을 가야 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그 안에 여러 가지 불공정한 상황을 만나기도 했지만, 모두가 지켜야 하는 정해진 근무연한과 학년 배정에는 나름 공정한 규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첫 근무를 시작한 학교에서 한 번 맡은 학년을 타의나 자의에 의해 바꿔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퇴직할 때까지 계속 맡을 수 있다.

임용고시를 보고 성적에 따라 순서대로 교사가 필요한 학교로 발령을 내는 제도가 아닌, 일정한 자격과 요건만 갖추면 지인과 인맥의 혜택을 이용해 공립학교에 취직이 가능하고, 학교의 사정이나 학급이 줄거나 증가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이 처음 맡은 학년을 계속 맡을 수 있는 것이 미국 학교 시스템이다.

학교나 교육구에서 담임 배정을 바꾸지 않으니 자신이 원하는 학년과 학교의 여건이 맞으면 한 학교의 어느 학급에 자리를 잡아 그 교실을 떠날 필요가 없다.

으레 나는 학년 초가 되면 새로 이사한 교실의 환경미화를 하느라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는데, 교사들의 교실 이동이 필요 없으니 미국 학교 교사들은 굳이 학년초에 교실 미화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어 교실 환경을 보수를 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이름이나 작품만 바꾸는 수준으로 매년 비슷한 교실 환경을 유지하면서 교육과정이나 정책에 따라 바뀐 것만 몇 가지 더하는 식으로 교실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교실을 돌아다니다 보면 10년도 더 된 것 같은 문구나 장식들을 종종 볼 수 있고, 간혹 정리가 잘 안 되는 교사의 교실에 가면 매년 쌓인 다양한 교육 기자재들과 환경 미화 용품들이 교실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있다. 

뿐 만니라 집을 이사할 때처럼 교실도 이사를 해야 버려지고 정리될 그런 물건들이 교실 이사가 없는 미국 학교에서는 동학년 교사들과 함께 사용하는 교사 창고 같은 곳에 계속 쌓여만 간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우리 학교 교사들도 대부분 근무 초에 맡은 학년을 내리 담당하고 있다.

1학년만 10년 이상 가르치거나 옆 반에서 매해 같이 3학년을 맡는 사이좋은 동료 교사들도 있다.

간혹 학생수의 감소나 증가로 변동이 있는 경우도 한 학년 위나 아래로 옮기거나 합반을 맡는 형태로 유지된다.

교실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전근을 간 교사의 교실이 좋아서 옮기거나 학교 사정으로 교실을 이동하는 경우를 빼고는 교사들의 교실 이동도 거의 없다.

같은 학년의 학생들을 지금 교실에서 매년 가르쳐왔고 지금도 그 교실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경력만큼 의욕과 열정이 식은 교사들의 교실에는 어느 시대의 교구인가 싶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교구들과 교육구의 방향에 따라 지시한 교육과정이나 학습활동이 담긴 새로운 교구들이 혼재하고 있다.

교실 이사를 하지 않으니 새 교육 기자재들과 버리지 못하는 묵은 기자재들이 교실 구석구석에 섞여있곤 한다.  

우리 반 담임은 2년 차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볼 때면 부지런히 사다가 교실을 꾸미지만 건너편에 3, 4학년 특수반을 맡은 20년 경력의 교사는 집을 이사해서 우리 학교로 전근 온 후로 10년을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구들을 붙여놓고 있다.

 





모든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기 집 안방처럼 자리 잡고 앉은 교실에서 떠나고 싶을 때까지 있을 수 있으며 옆 반 교사와 마음만 맞으면 십년지기 옆반 동료고 지낼 수 있는 미국의 학교 시스템은 어찌 보면 매우 효율적이지만 교사들이 현재에 안주하기 안성맞춤인 환경이다. 


나야 정규 교사도 아니고 특수학급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눈과 귀로 주워듣을 뿐이지만, 나이와 경륜에 따라 점점 나태해지고 변화의 긴장감 없이 안주하고 있는 미국 교사들을 보면 가끔은 편하고 효율적인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랜 교실 벽의 색지처럼 한 교실에 자리 잡은 안정감은 매년 찾아오는 아이들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과 의욕의 색도 바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한 학교에서 그 학년을 오랫동안 가르쳐 온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신의 교육 역사가 숨 쉬는 교실에 대해 미국인스러운 자부심을 가진다.

한 교실에 자리를 잡으면 떠날 필요가 없는 미국의 학교 시스템과 미국 교사들 특유의 자부심이 그들로 하여금 처음 둥지를 튼 교실에 뼈를 묻는 기분으로 머물게 만드는 것 같다.

가끔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세월과 동떨어진 것들로 가득한 그들의 둥지를 방문하는 내 눈에는 그들의 자부심이 교실에 둥지를 틀고 그 안에 안주한 탓에 약해진 날개 근육과 날아가는 것도 귀찮아서 스스로 만든 색 바랜 자부심이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둥지를 틀고 편하게 안주할 수 있는 미국의 학교 시스템 안에서도 날마다 둥지를 떠나는 새처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변화에 맞춰 교실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교사들은 여전히 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엄마로서, 그런 교사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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