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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05. 2020

김치를 담그는 주부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콕하면서 달라진 것, 김치 담기의 첫 성공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으로 미국에도 시작된 Social Distance(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에 머물기'라는 국가적 캠페인은 나의 삶에 여러 가지 변화를 만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내가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근무하는 캘리포니아의 작은 초등학교도 휴교에 들어갔다.

휴교 중에도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은 교육국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담임교사가 아닌 직원들에게 교육국 프로그램을 통한 자가 연수와 온라인 수업을 하는 담임교사 보조의 임무를 주었다.

나는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원격연수를 듣고 일주일에 한두 번 학교에 출근해 우리 반 담임교사를 돕고 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일별 연수 내용과 온라인 수업 보조 활동을 교장에게 간단하게 이메일로 보고한다.

휴교 후, 매일 일정 시간 해야 할 일이 있지만 그 몇 시간을 제외한 자유 시간이 갑자기 나에게 찾아왔다.

밖에 나다니지 말고 집에 머물라는 강력한 권고에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는, '집에만 보내야 하는' 엄청난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사십 년 넘게 살면서 처음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집에 머물러야 하는 생활은 내 삶의 여러 가지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학생으로 그리고 교사로 살면서 방학이라는 시간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나에게 집에서만 머물라고 하지 않았기에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 방학이어도 분주했고 방학은 늘 금방 끝났다.

그러니 이렇게 내 맘대로, 그러나 집 안에서만 쓸 수 되는 시간을 갖는 일은 매우 생소하고 얼떨떨한 경험이다.


물론 그것도 일상이 되고 보니 생각보다는 여유 있고 자유로운 시간이 마구 넘쳐나는 것은 아니다.

끼니때가 다가오면 오늘 점심은 뭐냐,  저녁에는 뭐 먹냐고 물어대는, 휴교로 학교에 못 가는 두 아이가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집에는 늘 소소하나 하지 않으면 티가 나는 집안일들이 있다.

그리고 주말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부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어 계속 진행되고 개인적 자아실현을 위해 덜컥 시작한 공부도 학기가 진행 중이어서 내 시간의 일부는 여전히 내 맘껏 쓸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매일 학교에 출근한다고 생존을 위한 살림만 하는 주부로 살며 부업과 공부도 틈틈이 하느라 늘 시간이 빠듯하고 항상 마음이 바빴던 이전의 일상과 비교하면 한결 여유로워졌다.

Essential buiness라는 생계형 업계에 종사하는 탓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속에도 여전히 회사에 가는 남편을 출근시킨 후, 귀찮게 하기보다 내 참견이 귀찮은 두 아이와 종일 집에 있으며 늘 하던 집안일에 사용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여기저기 부유하는 여유 시간들을 일상의 틈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어 예전에 비하면 훨씬 느슨해진 생 하고 있다.


시간의 여유가 준 마음의 여유 탓일까?

옆 동네의 한국 마켓에 장을 보러 간 내 눈에 '제주산 무'가 특별히 눈에 띄었고 '무생채나 만들어볼까?'라는 생각과 주저하는 마음으로 잠깐 갈등하던 나는 제일 작은 무 두 개를 집었다.

이십 년 가깝게 주부로 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럽게도 나는 제대로 김치류를 담가본 적이 없다.

한국에 있을 때는 결혼 후에도 출퇴근하는 큰 딸 가족의 반찬거리를 책임져 주셨고 미국에 와서는 가끔씩 남편 출장 편에 각종 김치를 공수해 주시는 솜씨 좋고 바지런한 친정 엄마 덕분이다.

미국에 온 초기에 한국 마켓의 김치가 맛이 없거나 너무 비싸서 배추김치를 한번 담가본 적이 있다.

여러 레시피를 보고 연구를 했지만 서투른 탓인지 시간과 노력은 엄청 투자했으나 정말 맛이 없었다.

그 후 변덕이 나서 깍두기를 한 번 담가봤는데 미끄덩거리는 그 깍두기는 먹어줄 수가 없었다.

두 번의 실패 후, 있는 김치는 아껴먹고, 없으면 사 먹으면서 김치 담그기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밀어두었다.

분주하고 바쁜 일상에 맛있지도 않을 김치에 투자할 시간의 효율과 가치를 따지면서 더 중요한 것에 내 시간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합리화하며 살았다.

그런 내가 갑자기 무생채를 담근답시고 무를 산 것이다.

시간이 남아도는 생활이 주는 마음의 여유로 인해 새삼 주부로의 의무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이제는 김치도 좀 담글 줄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철든 생각을 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무를 샀고, 사람들이 믿고 따라 한다는 백종원 씨의 요리 유튜브를 검색해 무생채를 담았다.

그리고 작은 무 산 것을 후회했다.

생채가 너무 맛있었다. 내가 담은 것이 맞나 싶을 만큼.

제주산 무라서 그런 건지 백 선생의 레시피가 훌륭하기 때문인지 정말 맛있었다.

가족들의 칭찬에 기분과 용기가 급상승한 나는 작은 무로 담근 생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다음 장을 보러 가서는 큰 무 두 개를 샀고, 백 선생 표 맛있는 생채를 질리게 먹었다.


다음 주, 생채의 성공에 자신감이 생긴 내 장바구니에는 커다란 무 두 개가 또 들어있었다.

이번 도전 종목은 깍두기였다.

이번에도 백 선생의 레시피를 따라 깍두기를 담갔는데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

깍두기를 먹을 때마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특하게 느껴졌다.


깍두기에 성공한 나는 어제 한국 마트에서 할인하는 알타리 무라고도 불리는 총각무를 보고 욕심을 내어 두 봉지나 사 왔다.

그런데 믿고 따라 하고 싶은 백 선생 표 총각김치 비디오를 찾을 수 없어서 여기저기 레시피를 기웃거리는데  깍두기 양념이랑 비슷하다고 했던 백 선생 말씀이 기억났다.

그중 간단한 레시피대로 총각 무를 손질하고 깍두기 양념을 만들어 총각김치를 담갔다.

그러나 지난번 성공에 너무 자만한 탓인지 양념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양념이 과한 총각김치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남은 양념이 아까워서 샤부샤부 해 먹고 남은 배추를 후다닥 절여 남은 양념으로 자체 제작 막김치를 담갔다.


지난번 깍두기를 담가 맛을 보고 단번에 맛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통에 담아 놓고 무척 뿌듯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총각 무와 배추를 양념에 버무리면서도 찜찜하더니 통에 담아놓고 보니 더 걱정이 되었다.

김치 담근답시고 벌려놓은 것들을 정리하면서 백 선생의 총각김치 비디오가 없는 건지 내가 못 찾은 건지 그것도 신경에 거슬리고, 생각도 안 해보고 덜컥 총각 무를 두 봉지나 사 온 것도 잘한 일인가 싶었다.

한동안 애꿎은 김치를 쏘아보던 나는 '에이~ 짜면 조금씩 잘라먹고 맛이 영 별로면 김치찌개라도 해 먹자'며 김치 통 뚜껑을 덮었다.

김치는 익어봐야 제 맛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 어쩌면 총각김치가 의외로 맛있을 수도 있다.

아침에 수선을 떨며 김치를 담그고 나니 온 집 안에 김치 양념 냄새가 떠다니는 기분이다.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 끝에서도 젓갈과 고춧가루, 파와 마늘이 섞인 김치 양념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다.


맛있게 먹고 있는 깍두기와 오늘 담근 총각김치와 막김치. 무생채 사진을 못 찍어 놓은 것이 안타깝다.


맛있으면 아삭아삭 맛있게 먹고, 맛없으면 찌개나 찜을 할 수 있는 게 김치라는 생각에 맛과 상관없이 집에 갇혀 지내는 동안 끼니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양식을 준비한 것 같아 마음은 든든하다.

흠, 다음에는 배추를 좀 사다가 배추김치를 담가볼까?

결혼하고 이십 년을 살도록 다른 사람이 담근 김치만 먹던 나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 갇혀 지내다 보니 직접 김치를 담그는 주부가 되었다.

분주한 집 밖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니 집안일에 충실해지는 모양이다.

배추김치까지 담고 나면 딸이 마흔이 넘도록 김치를 담가주신 친청 엄마처럼 내 딸이 집을 떠날 때 든든하게 김치 한 통은 챙겨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막상 해보니, 김치 담그기는 시간과 품은 많이 들지만 재미와 보람이 쪼끔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김치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 생각했는데 그 시간과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닌 듯도 하다.

김치를 담그는 동안, 사실 나는 좀 즐거웠다.

빨갛게 물들어 통에 담긴 생채와 깍두기, 총각무와 배추를 보고 상당히 만족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어쩌면 할 일에 쫓기지 않으니 그다지 하기 싫었던 일도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옆에서 누군가 채근하지 않고 스스로를 닦달하지 않으면, 미뤄두고 피하고 싶었던 일들도 조금은 좋아하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김치 담기가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다 큰 두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 말자.

실컷 놀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공부도 즐겁게 할  있으리라 믿어주자 싶다.


우연히 주어진 남아도는 시간 속에 담근 김치 한 통에 굉장한 철학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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