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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un 11. 2020

비행기를 타고 오는 엄마의 김치

엄마의 손맛과 엄마의 사랑이 버무려진 김치는 비행기를 타고 온다.

일 년에 서너 번은 출장을 가는 남편은 직항이 없는 경우 한국을 경유해서 돌아오곤 했다.

출장길에서 돌아오는 남편의 손에는 보자기에 꽁꽁 싸인 사과 상자나 배 상자가 들려있다.

그 상자 안에는 상자 크기에 꼭 맞는 하얀 김장 김치용 김치 통이 들어있다.

혹시나 국물이 샐까 봐 테이프로 빈틈없이 봉해진 김치통을 열면 시큼하고 짭짤하면서 매콤한, 친숙한 김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 안에는 엄마의 김치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김장 김치 한 통과 각종 김치와 반찬이 가득하다.

과일 상자 만한 하얀 김치 통은 엄마의 맛으로 가득 찬 냉장고를 옮겨 놓은 듯하다.




일평생 바지런했던 엄마는 사람을 불러 먹이는 것에 두려움이 없으셨다.

기회만 되면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언제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재료를 냉장고 구석구석에서 찾아내어 한상을 뚝딱 차려내곤 하셨다.

화보 속 초대상처럼 예쁘고 근사하지는 않았지만 해물탕 한 냄비나 된장찌개와 각종 김치로 차려진 엄마의 식탁은 풍성했고 손님들은 엄마의 평범한 밥상에서 푸짐한 식사를 하곤 했다.

가끔은 굳이 일을 벌여 사람을 부르고 음식 준비한다고 한 나절, 손님이 간 후 치운다고 한나절을 보내는 엄마를 거드는 시늉을 하면서 귀찮기도 하고 그 고된 것을 즐겨하는 엄마가 극성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음식을 만들고 어지른 것을 치우는 과정에 개의치 않을 만큼 당신의 음식 앞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즐겨하셨고, 손님들이 맛있게 먹은 김치를 돌아가는 손님들 손에 한 봉지씩 들려 보내곤 하셨다.


주변 사람 먹이는 것을 좋아하던 엄마는 당신의 딸이 엄마가 되어 나이를 마흔 가까이 먹도록 딸네 식구를 거둬 먹이셨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딸과 바쁜 아내와 엄마를 둔 탓에 제대로 못 먹고사는 사위와 손주들의 기호에 맞게 김치와 반찬을 만들어 주곤 하는 엄마 덕분에 나는 마흔 살이 가깝도록 김치를 담아보지 않은 호강을 누렸다.

아내와 엄마는 김치를 담글 줄도 모르는데, 바지런하고 사람들 먹이기 좋아하는 장모님과 외할머니 덕분에 남편과 우리 아이들은 철마다 새로 담근 김치를 먹으며 살았다.

엄마의 파김치는 마력의 감칠맛이 있어서 남편은 엄마의 파김치를 참 좋아했다. 엄마의 시큼하게 익은 파김치는 돼지고기 요리에 넣으면 서툰 내 음식의 맛도 장인의 손맛이 느껴지게 해주는 마술을 부리기도 하였다.

싱싱한 부추를 발견하고 후다닥 담은 엄마의 부추김치는 삼겹살에 얹어 먹으면 환상적인 맛을 선사하였다.

시장에서 좋은 오이를 만난 날이면 엄마는 오이 한 박스를 사서 부추를 듬뿍 넣은 오이김치를 담기도 하셨다. 엄마의 오이김치는 익어도 아삭하고 맛이 있어서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더운 여름 지친 몸으로 퇴근하고 돌아와서 삶은 국수를 엄마의 열무김치에 말아 상을 차리면, 개운한 김치 국물과 아삭한 열무김치의 맛에 가족들은 뒷말 없이 국수 한 그릇을 비우며 더위를 털어내곤 했다. 찬밥에 남은 반찬으로 한 끼를 때워야 할 때 열무김치를 듬뿍 넣고 달걀 프라이 하나만 얹으면 비빔밥 전문 식당의 비빔밥이 부럽지 않았다.

여름이면 엄마는 나박김치도 담곤 하셨는데 더위에 입맛이 없는 날 심심하면서 개운한 국물에 얼음 띄워 후루룩 마시면 저절로 식욕이 돋곤 했다.

찬바람이 불어 달달한 무가 나오는 철에 엄마가 담근 총각무 김치가 집으로 오는 날이면 한 손에 총각무 김치를, 한 손에 밥 숟가락을 들고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설탕을 안 넣어도 달달한 엄마의 깍두기는 즙이 많고 아삭해서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렸다. 아들은 라면을 먹을 때면 깍두기를 한 그릇씩 먹곤 했다.

엄마가 동치미를 담가오면 딸은 다른 반찬은 안 먹고 동치미 국물에 밥을 한 그릇씩 말아먹었다. 찬바람이 불면 갓 삶은 고구마와 엄마의 동치미 한 그릇이 먼저 생각난다.

무엇보다 엄마의 비장의 무기는 김장김치였다. 이모와 고모들까지 불러 함께 담근 푸짐한 김치는 여러 사람들의 식탁을 책임지곤 했다. 김치 냉장고 안에서 맛이 잘 든 김장 김치는 두고두고 김치찌개와 부침개, 가끔은 김치 찜으로 식탁에 올라 여러 가족들의 한 끼를 책임지는 고마운 존재였다.

엄마의 김치에 풍족하던 시절에는 몰랐다. 철 따라 좋은 재료 만날 때마다 김치를 담가 함께 먹고 나눠주는 일이 고되고 어려운 일이었음을.

엄마는 그 힘든 과정까지 즐거움으로 여기실 만큼 넉넉하고 바지런하신 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미국 발령으로 태평양을 건너오고 나니 제일 아쉬운 것이 엄마의 김치였다.

마흔이 되어 처음 해보는 김치 담기는 어려웠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먹어줄래도 정말 맛이 없었다.

끼니때마다 허전한 식탁에 철마다 집으로 보내오던 엄마의 김치가 없는 탓인지 타국 생활은 참 외로웠다.

맛있다고 해서 사다 먹은 김치는 두세 번 먹으면 처음 맛 같지 않아서 엄마의 김치가 풍족하던 시절의 고마움을 몰랐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애써서 차린 내 식탁 앞에 앉으면 엄마의 손길로 버무려진 그리운 엄마의 김치와 된장찌개로 마음까지 배불렀던 엄마의 풍성한 식탁이 그리웠다.

김치 담기에 실패한 딸이 엄마가 그립다는 말 대신 엄마의 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며 울먹이는 소리에 "너도 이제 김치도 담글 줄 알아야지. 음식은 자꾸 하면 느는 거야."라며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의 김치가 없는 허전한 식탁과 낯선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갈 무렵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남편이 출장길에 한국을 경유하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누구한테 듣고 궁리를 했는지 남편이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 두 비행기의 시간차가 생기는 사이에 김치를 보낼 테니 미국으로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짐을 부치거나 미국 입국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엄마는 걱정 말라며 비행기에 실어 보낼 김치 상자를 장만다.

마침내 남편이 돌아오는 날이 되었고, 지방에 사는 엄마는 남편의 비행기 시간에 맞춰 리무진 버스에 김치와 반찬이 담긴 과일 상자를 실어 보냈다.

남편은 내키지 않아 했지만 장모님의 성화에 리무진 정류장에서 김치 상자를 받아 추가로 짐을 붙이는 번거로움을 감당했다.

남편이 미국에 입국할 때 상자를 열어보라고 하지 않을까 긴장했지만 김치 상자는 무사히 통과되었다.

남편이 처음 보자기에 싸인 김치가 든 과일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보다 남편 손에 들린 상자가 더 궁금하고 반가웠다.

상자를 열고 테이프를 뜯어 김치통 뚜껑을 여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다.

김치 냉장고에 있던 김장 김치 한 통 보냈다던 엄마의 김치 상자에는 김장 김치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열무김치와 사위가 좋아하는 파김치, 손주들이 좋아하는 깍두기가 들어있었다.

김치 봉지 사이사이 사위가 좋아하는 고등어조림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징어채 볶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동그랑 땡까지, 엄마의 김치 상자는 엄마의 냉장고를 옮겨 놓은 듯했다.

국물이 샐까 봐 마음 졸이면서 꼼꼼하게 쌌을 봉지를 하나하나 뜯으면서 김치의 매운 냄새 탓인지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미국에 와서 처음 먹는 엄마의 김치와 반찬으로 차려진 그 날의 저녁식사는 무척 맛있었는데 자꾸 목이 메었다.

무사히 김치 상자를 받았고 가족 모두가 너무 잘 먹고 있다며 음식 챙기느라 얼마나 힘들었냐는 내 말에 엄마는 "집에 있는 거 보낸 거야. 잘 먹었다니 됐다."며 별스럽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미국 사는 딸네 집에 보낸다고 열무김치며 파김치, 깍두기를 새로 담고, 딸네 가족 생각하며 반찬 만드느라 애썼을 것이 다 가늠이 되면서도 나는 철없이 알았노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옆에 있었더라면 김치 양념 냄새가 베인 엄마를 꼭 안아주었을 텐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에 나는 짐짓 명랑하게 다음에도 또 보내달라며 어리광도 부렸다.


그 후로 남편이 한국을 경유하여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엄마표 김치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켜하지 않던 남편은 미국에서도 장모님 김치를 맛보는 즐거움에 기꺼이 김치 상자를 받아오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의 김치 상자 포장 실력은 늘었고, 국물이 새지 않고 무사히 비행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김치 상자는 점점 진화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엄마의 김치를 먹으면서 나는 미국 생활 중에도 가끔씩 엄마의 식탁을 누릴 수 있었다.

엄마의 김치 냉장고에서 제일 상태 좋은 김장김치 한 통과 함께 철 따라 칼칼한 파김치나 시원한 열무김치가 오기도 하고 아삭한 총각무 김치나 깍두기가 오기도 했다.

가끔은 싱싱한 오이김치와 맛깔난 부추김치가 들어있기도 했다.

엄마의 김치 상자가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면 한 가지 김치만 오르던 우리 집 식탁이 며칠 동안 엄마 김치로 풍성해졌고 가족들은 김치만으로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나는 엄마가 보내준 김장김치를 냉장고에 고이 모셔두고 김치 한조각도 허투루 버리지 않으며 아껴 먹다가 엄마의 식탁이 그리운 날이면 엄마의 김장김치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이곤 했다.

엄마의 김치로 끓인 찌개건만 엄마의 찌개에는 못 미치는 맛일지라도, 엄마의 손맛이 가득한 김치가 들어있는 김치찌개를 한 그릇 먹고 나면 그리움이 가시는 기분이 들곤 했다.

물론 일흔이 넘은 엄마가 딸 생각하며 김치 냉장고에 잘 숨겨두었다가 국물이 샐세라 꽁꽁 묶어 비행기 태워 보낸 귀한 김치는 아깝고 소중해서 그 귀한 김치로 끓인 김치찌개는 그리움이 찾아온다고 수시로 해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엄마와 한국의 가족들이 보고 싶어 울적한 데다가 타국 생활에 유독 외로워지는 날, 쓸쓸한 마음에 엄마의 손맛이 주는 특별한 위로가 필요한 날에 별러서 해 먹는 귀한 음식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시작되고 남편의 출장이 취소되면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엄마표 김치를 받아먹기가 어려워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내가 일하던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고 외출 금지명령으로 시간은 남는데 점점 줄어드는 엄마의 김치가 아까워지던 어느 날, 나는 다시 김치를 담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일흔이 넘은 엄마가 애를 써서 김치를 담고 어렵게 포장해서 그 무거운 상자를 리무진 버스에 실어 보내야 남편과 함께 비행기 타고 오는 김치를 먹는 것에서도 졸업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아마도 미루고 미뤄두었던 철이 드디어 드는 모양이었다.

마침 한국 마켓에서 제주산 무를 만났고 친절한 요리 유투버 덕분에 깍두기 담기에 성공했다.

깍두기에 성공한 나는 남아도는 시간과 의욕으로 충만해져 총각무 김치와 파김치까지 담갔다.

미국 땅에서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한 덕분에 솜씨가 늘었는지 내가 담근 김치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고 어떤 김치는 제법 맛이 있었다.


마흔이 넘도록 엄마 김치를 먹으며 살다가 이제야 김치 담기에 성공한 딸은 일흔 넘도록 김치를 담가준 엄마에게 김치 담기에 성공했다며 자랑을 했다.

일흔 넘은 엄마는 딸이 마흔 훌쩍 넘어서야 담근 김치를 먹어 보지도 못했지만 잘했다고 칭찬에 칭찬을 해 주었고, 여전히 철이 덜 든 딸은 그 칭찬에 신이 나서 깔깔 웃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칩거하느라 외로운데 캘리포니아스럽지 않은 우중충한 날씨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침에 부슬거리며 내리던 비 때문에 공기도 축축한 기분이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담근 김치를 먹으며 아껴둔 엄마의 김장 김치를 한 포기 꺼내 김치찌개를 끓여봐야겠다.

리무진과 비행기를 타고 온 귀한 김치지만 오늘은 엄마의 김치가 주는 위로가 필요한 날이므로, 엄마의 사랑과 손맛으로 버무려진 김치를 넣은 얼큰하고 뜨끈한 김치찌개 한 그릇에 나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위로받아야겠다.





글 쓴 후 뒷 이야기


지난주에 글을 쓴 뒤 오랜만에 엄마의 김장 김치를 넣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해 먹었다.

아까워서 참고 있다가 해먹은 김치찌개가 어찌나 맛있고 개운하던지, 다음날 마지막 국물까지 밥을 말아먹고 나니 기분도 나아지고 기운도 나는 것 같았다.

글을 쓴 뒤 며칠 지나는 사이, 캘리포니아는 태양이 이글거리고 쨍쨍한 날씨로 돌아왔다.

오늘은 날이 몹시 더운데 아침부터 마음은 추운 기분이었다.

이상하게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가시지를 않았다.

엄마의 김치로도 채워지지 않을 만큼 그리움이 넘쳐있는 모양이다.


이런 때는 김치가 아닌 내가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래서 엄마의 김치가 아닌 엄마를 만나야 하는데.

엄마의 식탁에서 엄마와 함께 엄마의 된장찌개와 김치로 차려진 한 끼를 마음까지 부르게 먹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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