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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29. 2020

남다른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 풍경

아이 수업인지 엄마 수업인지 헷갈리는 3번 방 아이들의 원격수업

자폐와 행동 장애 그리고 다운 증후군을 가진 3번 방의 다섯 살짜리 꼬마들도 코로나 19 시대의 대세가 된 온라인 수업 중이다.




내가 근무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초등학교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휴교를 한지 한 달이 넘었다.

그사이 갑작스러운 휴교와 함께 부랴부랴 시작되어 혼란스러웠던 온라인 수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각 반에서는 구글 클래스룸(Google Classroom)을 이용해 온라인 교실을 만들어 매일 수행할 수업 과제를 올리고, 정해진 시간에 담임교사와 구글 행아웃(Google Hangouts)을 통해 만나는 방식이다.


3번 방 담임 Ms.K도 매일 일일 수업활동과 수업자료를 구글 클래스룸에 올리고 구글 행아웃을 이용해 남다른 아이들을 만난다.

다섯 살 꼬마들이 컴퓨터 화면 속에서 가르치는 교사의 말에 집중하며 온라인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학계에서 말하기를 아이들이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3~5분 정도 집중력이 는다니, 보통 5살 아이들은 15~25분 정도의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다섯 살 아이들의 반도 안 되는 집중력을 보이는 3번 방 꼬마들이 평균적으로 학습에 집중하는 시간은 두세 살 먹은 아이들 정도도 안 될 것 같다.

아무리 재미있는 것을 보여줘도 가위질을 한 번 하거나 동그라미 몇 개 그린 뒤, 자리를 뛰쳐나가 버리는 것쯤은 3번 방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니 말이다.


두세 살 아이들의 집중 시간을 가진 3번 방 꼬마들이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아홉 명 밖에 안 되는 숫자임에도 각기 다른 장애와 수준을 가지고 있어서 교실 수업에서도 한 가지 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어려서 부모들이 함께 참여해야 하니, 온라인 단체 수업으로 인해 아이들의 상태에 대한 정보가 다른 학부모들에게 누출될 우려도 있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3번 방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전체 모임을, 일주일에 두 번씩 1:1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언어나 행동 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교육구의 방침에 따라 언어치료사나 문제 행동 상담사도 만나야 했다.

언어와 행동 치료를 학년초에 세운 교육계획에 따라 진행하려고는 하나 치료과정에 좀처럼 협조하지 않는 아이들을 화면 앞에 앉혀 놓으며 온라인 치료나 상담을 해야 하는 치료 교사나 상담사도 참 어렵겠다.


3번 방의 전체 모임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가지고 15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이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시간이다.

첫 전체 모임에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Ms. K를 만난 강아지 소녀 이디는 흥분과 긴장 때문인지 원피스를 들어 올려 얼굴을 가리면서 맨살을 모니터에 공개하는 사고를 쳤다.

아이들과 함께 참여한 부모들은 다섯 살 꼬마의 복부 공개에 당황하고 3번 꼬마들은 '그러면 안 된다.' '너 배꼽 보인다.' 소리를 지르고 난리였다.

전체 모임은 집에 갇혀있는 3번 방 꼬마들이 유일하게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수다를 떨기 좋아하는 나나와 에빗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좀처럼 말을 안 하려고 한다.

재미있는 화제로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게 하려고 Ms. K가 여러 모로 애를 써도 입을 안 떼는 꼬마도 있다.

일주일에 두 번 15분 정도 Ms. K와 1:1로 만나는 시간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관심받는 것에 유난히 집착하는 에빗은 옆에 있는 엄마가 민망할 정도록 활기차고 자기 자랑에 15분이 금방 간다고 한다.

반면 전학생 스코는 15 분 동안 딴 곳만 쳐다보고 옆에서 엄마가 안달하며 대답을 하라고 재촉을 해야 한 두 마디 대꾸할까 말까라고 한다.

학교에 출근해서 우연히 보게 된 코인은 1:1 수업에서 마지막 5분을 못 참고 그만 하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수업 후에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엄마 말에 금방 울음을 그쳤다.

일리는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하지만 학습지만 보면 열심히 끄적이던 3번 방의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구글 클래스룸에 올라온 학습지를 하라고 하면 엄마에게 "Stop"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딴청을 피운다고 한다.

교실 안에서 만날 때와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모니터로 만나는 3번 방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담임이나 치료사, 아이들을 모니터 앞에 붙잡아 놓는 부모들에게는 난감하고 다루기 어려운 모습이겠지만,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이래로 아이들과 직접 만나지 않고 제삼자로서 바라보는 내 눈에는 그것도 색다르고 재미있다.

역시 아이들은 조금 떨어져서 봐야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법인 모양이다.




혼자서 학습이 가능한 큰 아이들도 온라인 수업을 하는 동안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하고 다른 화면을 보거나 딴짓을 하기 일쑤라고 한다.

그러니 교실에서 5분도 앉아있기 힘들어 들썩이던 다섯 살 꼬마들이 모니터 안에서 말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옆에서 선생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고 아이들을 얼르고 달래는 엄마들에게도 그 15분은 무척 더디 가는 시간일 것이다.

매일 구글 클래스룸에 올라온 학습활동을 확인하고 학습지를 인쇄하는 것도, 아이들이 학습지에 뭐라도 끄적이게 하려고 꼬시고 달래는 것도, 일주일에 세 번 모니터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도 3번 방 온라인 수업에서는 오롯이 엄마나 아빠의 몫인 듯하다.


우리 집에 사는 고등학생 둘이 아침에 숙제 조금 하는 둥 하다가 종일 모니터 앞에서 게임과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빈둥대는 것을 엄마로서 지켜보다 보면 불쑥불쑥 고구마 서너 개는 먹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 5분도 못 참는 아이들과 학습지 서너 장을 끝내고 나면 진이 빠진 상태로 매일 3번 방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는 부모 속은 얼마나 답답할까?

학교에서 담임이나 보조교사들의 이야기도 들어줄까 말까 하던 꼬마들이 종일 집에 갇혀 부모의 속을 얼마나 태울지 보지 않아도 가늠이 간다.


3번 방 꼬마들이 가을이 되어 3번 방으로 돌아올 때면 아마도 몇 배는 더 강한 고집불통이 되어 교사들의 진을 뺄 거라는 Ms. K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 말에 크게 동의했다.

남들보다 고집은 서너 배 세고 집중력은 서너 배 부족한 꼬마들이 봄과 여름 내내 엄마 속을 태우며 지내다 학교로 다시 돌아오면 3번 방의 교사들은 유난히 험난한 새 학년을 맞이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되고 무사히 새 학년이 시작되어 다시 남다른 꼬마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지금 같아서는 3번 방 꼬마들이 교실을 뛰쳐나가도 즐거운 마음으로 쫓아가고 소리를 질러도 웃으며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여름이 지나면 더 독해진 바이러스가 찾아올 수도 있을 거란 뉴스가 들려온다.

이를 어쩌나......

아이들의 어떤 말썽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는 이 겸허한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할 텐데......




오늘도 학교 안 가서 마구 신난 3번 방 꼬마들의 온라인 수업은 부모들의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아이들 수업이 부모들 일이 되는 온라인 수업은 비단 3번 방의 이야기 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은 스스로 온라인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 때문에 모니터 앞에서 벌을 서고 아이 숙제를 위해 전투적인 하루를 보냈을 모든 부모들, 그리고 종일 수업을 듣는 건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디바이스에 붙어사는 아이들 모습에 나처럼 고구마 먹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하는 모든 부모들을 위해서 속히 교실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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