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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Sep 04. 2020

브런치가 내게 해 준 일

브런치 덕분에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특별해졌다.

브런치인이 된 지 두 해가 흘렀고 두 해 동안 브런치에 올린 글이 200개가 되었다.

200개나 되는 글을 써본 적이 있던가?

브런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글 200'이라는 문구를 본 순간, 브런치에 올릴 201번째 글에는 지난 2년 동안 브런치가 내게 해 준 일을 적어보리라 마음먹었다.




브런치인


브런치의 사람들은 글을 읽지 않는 시대에 글을 읽는 사람들이다.

브런치의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는 시대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브런치에서 글을 읽거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 독특한 이들은 브런치인쯤 되겠다.


브런치인들은 글이라는 비주류의 가느다란 물결로 영상이 주류인 시대의 파도를 거슬러 가는 이들이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는 시대에 글을 쓰는 브런치인들의 글에는 울림과 여운이 있다.

글을 읽지 않는 시대에 글을 읽으므로 그 울림과 여운이 고요히 오래도록 나를 진동시킨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고, 대단한 문학상이라도 수상한 문학계에의 신예가 된 것 마냥 설렜다.

내가 쓴 글이 대단하게 심금을 울리고 세상을 바꿀 것 같은 착각에 정말 열심히 썼다.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리며 로또 당첨쯤 되는 조회수를 기록한 서너 편의 글에서는 성취감도 느꼈고 늘어나는 구독자 수에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열과 성을 다해 쓴 글이 읽어 주는 이 하나 없이 묻히며 실망감을 느끼던 때가 더 많았다.

좌절감에 잠시 브런치와 거리를 두기도 했지만 뭔가를 열심히 쓰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느새 나는 다시 브런치 화면에 글씨를 박아 넣고 있었다.

글을 써 나가면서 지지부진한 숫자에 매달려 널뛰는 내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 혹시 내 작은 울림을 들어줄 이들을 위해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글을 써 왔다.

그러므로 착각 속에 내가 꿈꾸던 인기 브런치 작가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글이라는 것을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브런치가 내게 해 준 것들



브런치 덕분에 모든 순간이 특별해졌다.

이전에는 그저 지나가는 날들 중의 하루 거나 특별할 것 없던 순간이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일상 중 글로 쓰고 싶은 일을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고 몇 가지 생각이 모이면 그것을 글로 옮겼다. 그 순간 특별한 것 없던 일상과 별것 아닐 수 있는 순간이 특별해졌다. 글을 쓰기 위해 대강 메모한 것을 훑어보다 보면 글로 옮기기 민망한 소소한 것들도 있었지만, 그 당시의 상황과 내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즐거움도 맛보곤 했다. 그냥 지나쳐 흔적도 없이 묻혀버렸을 작은 사건과 스치던 생각이 내 글 속에 생생하게 남게 되었다. 별 것 아닌 내 생각과 느낌이 누군가 공감해주므로 특별한 것이 되기도 했다. 혼자만 생각하고 느끼고 말았을 것들이 글로 남아 누군가가 읽고 함께 느껴주어 더 특별해진 시간들이 내 브런치 고스란히 담겨있다.


많이 생각하고 깊이 느끼는 법을 배웠다.

예전에는 순간적으로 지나고 나면 잊었을 생각들과 느낌을 글로 적어나가서 스쳤던 생각을 다시 되새김질하게 되었고 내 감정과 느낌을 되짚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만큼 내 생각과 감정에 더 충실해졌다. 언제 누가 내 글을 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적은 글이 다른 이에게 어떤 생각을 던져주고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 떠올려보는 습관도 갖게 되었다. 그만큼 다른 이의 생각과 감정에도 마음을 쓰게 되었다. 브런치 덕분에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깊이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세계 이곳저곳에 살고 있는 브런치인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알게 되었다는 것은 적당한 표현이 아닐지 모른다. 그저 우연히 검색 중에 들렀다가 “Like”를 눌러주거나 조금 더 정성을 기울여 댓글을 남겨주었던 이들을, 모두 알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브런치에 찾아와 준 것이 고마워 그들의 글을 읽고 감사를 전하면서 관계가 만들어져서 서로 새로 쓴 글을 읽어주고 "Like"나 댓글을 통해 마음을 전하는 브런치 이웃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꾸준히 내 글을 읽어주고 격려해주는 따뜻한 구독자와 댓글로 푸근한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지만 글을 통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글 속에서 그 사람을 마주하며 그 사람을 알아 나간다. 드넓은 미국 이곳저곳에서 뿐 아니라 바다 건너 한국과 수많은 다른 나라 구석구석에서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들과 부지런히 글을 읽는 이들을 알아가고 있다. 브런치는 그렇게 미국 한 구석에 있던 나를 세계의 여러 나라에 있는 브런치인들과 만나게 해 주었다.  브런치인들은 얼굴도 모르지만 글을 통해 서로의 삶과 생각을 가늠해볼 수 있을 만큼 따뜻하고 고마운 브런치 동료이며 글쓰기 동무이자 인생의 격려자가 되어 주었다. 브런치가 아니라면 어떻게 내가 세계 곳곳에서 글을 쓰며 사는 브런치인들을 만나볼 수 있었을까?


브런치는 나를 공부시켰다.

브런치에는 다양한 글이 존재한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글을 통해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 없던 영역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사람의 글을 꾸준히 읽으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웠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다 보면 어쩌면 그렇게 무한하게 박식하고 끝없이 똑똑한 브런치인들이 그리도 많은지 감탄하게 된다. 그들이 열심히 올린 글을 '읽는' 작은 노력만 하는 나는 그들이 피땀 흘려 얻은 학식과 풍부한 지식으로 내 부끄러운 무지함과 좁은 소견을 조금씩 벗겨내고 있다.

 

글을 통해 사람을 배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브런치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그들의 삶을 맛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영어에 “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라는 표현이 있다. 다른 이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상황에 들어가 봐야 한다는 말이다. 브런치에서는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그의 일상을 함께 경험한다. 브런치를 시작한 뒤, 다른 이의 생각을 따라가 그의 인생을 엿보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상황과 여건 같은 외적인 것뿐 아니라 그의 마음속 깊숙이 요동치는 감정과 길고 긴 사고의 과정과 같이 내면적인 것도 함께 읽게 되었다. 다른 이의 감정을 들이마시며 그 사람 마음의 두근거림을 느껴보기도 하고 그들의 슬픔과 아픔에서 씁쓸함을 맛보기도 했다. 다른 이의 신발에 내 발을 넣어보면서 그의 삶을 이해하고 그의 심정에 공감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브런치에서 나는 내 일상과 내 생각에 공감해주는 이를 통해 위로를 받고, 다른 이의 일상과 생각에서 삶의 지혜와 숙고하는 법을 배운다.


매일 평범한 이들의 전기를 읽게 되었다.

브런치에서 누군가의 글을 꾸준히 읽다 보면 단편적인 일상이나 사건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일생을 읽게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일생뿐 아니라 그 사람의 부모의 부모 이야기까지, 어떤 때는 그 사람 자녀들의 일생까지 읽기도 했다. 브런치인들의 전기는 비싼 위인전집보다 더 감동적이고 더 가슴이 뭉클했다. 위인전에 실리지 못했지만 살아내었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브런치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그들 주변 사람들의 일생을 읽으면서 평범한 이들의 위대한 일생을 보았다. 나라면 감히 건너지 못했을 힘든 시간을 지나오고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인물의 이야기보다 나를 감동시키곤 했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고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했지만, 브런치는 나에게 무엇이 되어 무엇을 성취하는 법 대신 낯선 누군가와 소통하고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며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배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지난 200개의 글을 쓰는 동안 내 생각에 충실했던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 200개를 갖게 되었다.

앞으로 200 개의 글을 쓰는 동안에는 어떤 것을 읽고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느끼게 될까?

아마도 브런치는 지금까지 처럼 세상의 숨겨진 지식을, 빛나는 삶의 지혜를 그리고 여러 모양의 인생 그 인생을 걸어가는 여러 색깔의 사람들에 대해 가르쳐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많이 생각하고 깊이 느낀 또 다른 특별한 순간 200개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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