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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Oct 06. 2020

군인은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

군인이 대우받는 나라 미국에서 대우받는 미국 군인들을 보며...

미국인들의 제대 군인( Veteran )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대우는 정말 남다르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돌고래 쇼로 유명한 놀이 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동물 보호 차원에서 돌고래쇼가 사라졌지만 당시 그 돌고래쇼는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메우는 매우 인기 있는 쇼였다.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열린 문을 지나 무대가 될 커다란 수영장으로 돌고래들이 날쌔게 들어오자 관객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돌고래쇼의 기대감에 부푼 우리 가족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햇빛에 반짝이는 돌고래의 물에 젖은 날씬한 맵시에 탄성을 보냈다.
그때 음악소리가 줄어들더니 사회자가 Veterans(병역의 의무를 감당한 제대 군인)는 일어나 달라고 했다.
돌고래쇼에 뜬금없는 제대 군인의 기립 요청은 뭔가 싶어서 두리번거리는데 관중석을 메운 관객들 사이 여기저기에서 일어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백인 할아버지와 흑인 할머니 내 나이 또래의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 등, 십여 명이 일어났고 관객들은 크게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한 사화자의 감사 인사말이 끝나고서야 돌고래쇼가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제대 군인들은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놀이공원이나 국립공원뿐 아니라 통신사와 인터넷 사용료에도 Veterans Discount가 있다.

몇 년 전 가족들과 뉴욕 구경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탄 일이 있다. 
늘 경제적인 여행을 하는 우리 가족이 1등석(First Class)과 2등석(Business Class)에 앉은 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힐끗거리며 지나는데 2등석에 앉아있던 한 백인 신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리가 어디냐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내가 아니라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군복 입은 군인에게 묻는 것이었다.
군인의 비행기표를 확인한 신사는 군인에게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말하며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는 존경을 담은 깍듯한 인사를 덧붙였고 주변 사람들은 그 신사와 군인을 향해 가벼운 박수와 미소를 보냈다.

군인의 자리인 일반석으로 온 신사는 서슴없이 군인의 원래 자리였던 번호를 찾아 앉았다. 

뉴욕까지 가려면 다섯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편안하고 여유로운 2등석을 군인에게 주저한 없이 양보하는 신사의 모습에 전혀 상관없는 나 조차도 감동이 되었다.

처음 보는 그런 광경과 그 신사의 양보와 배려가 신기해서 비행기를 내릴 때까지 나도 모르게 신사를 힐끗거리곤 했던 것 같다.


최근에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곳으로 진학한 딸이 대학교 기숙사 입주하는 것을 돕기 위해 함께 비행기를 탄 일이 있었다. 

환승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는데 군복을 입은 3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탑승구 근처에 띄엄띄엄 앉아있었다.
Boarding(탑승)이 시작되자 늘 그렇듯 1등석 표를 가진 사람들이 성큼 탑승구에 줄을 섰다.
그때 승무원이 1등석(First Class) 승객들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손신호를 하더니 Veterans 먼저 타라면서 안내 방송을 했다.
군복을 입은 사내 네 명이 탑승수속을 하는 동안 1등석 승객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비행기에 타고 보니 제대 군인 중 한 명만 2등석(Business Class) 승객이었고 나머지는 일반석(Economy Class) 승객이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몇몇 가족들이 이름이 쓰인 피켓을 들고 박수를 치며 군인들을 반겼고 군인들은 자기 가족들과 포옹을 하며 군 제대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지나는 다른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Thank You"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항공사에서 1등석 손님보다 대우받는 것이 제대 군인인 것이다.



사실 주변의 동기들이나 친척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군대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가끔 아버지나 주변인들에게 "나 때는 군대에서 말이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다는 군대 무용담이 시작되는구나' 생각하곤 했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그들의 희생 덕분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누리는 것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함을 갖기도 전에 그것은 우리나라 남자라면 당연히 감당할 의무라고만 생각했다.

미국에 와서야 군복을 입은 미국 군인들이 일반인들에게 특별하게 대우를 받는 것을 종종 보면서 우리나라 군인들의 처우와 사회적 시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여건 상 군 복무가 징병제로 운영되고 있다.
복무 기간이 예전보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을 나라를 지키는 군인에 헌신한다.
미국은 오래전에는 징병제였지만 베트남 전쟁 후 닉슨 대통령이 모병제로 전환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군 복무는 오롯이 자신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군 복무를 마친 사람들에 대한 혜택이 다양하고 제대 후 취업 우대나 신분 보장 등 이유로 군에 지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겠지만 군인을 대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보건대, 군인들을 향한 시민들의 존경과 감사가 미국인들이 의무복무가 아님에도 군대에 지원하는 한 가지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우리나라 군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고나 그릇된 군 문화에 대한 한국 뉴스를 접할 때면 정말 안타깝다.
원하지도 않은데 징병제로 인해 군대에 가야 하고 그곳에서 생명을 잃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 이들을 볼 때면 과연 우리는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한 부분을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한 이들에 대해 고마움을 갖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군대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두 배도 더 비싼 비행기 좌석을 양보받기도 하며 군인들에게는 항공사의 우대 고객인 1등석 승객조차 밀리는 것이 미국에서 군인들의 위상이다.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우리나라의 수많은 젊은 군인과 군 복무에 자신의 인생의 일부를 바친 모든 이들이 미국의 군인들처럼 존경과 감사를 마땅히 누릴 수 있는 날이 대한민국에도 오기를 바란다.

그들의 꽃 같은 청춘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국민의 의무라는 이유로 오롯이 감당한 군인들은 국가와 국민의 감사와 존중을 누림이 마땅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나라를 위해 인생의 일부를 군복무에 희생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 sk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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