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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Nov 04. 2020

딸이 떠난 빈자리에서

집 떠난 딸을 나는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딸이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난 지 두 달이 넘었다.

나는 딸이 없는 집의 허전함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딸은 집을 떠나 미국 대륙을 가로질러 있는 먼 대학으로 진학했고 그곳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 먼 곳에 딸을 두고 오면서, 집에 돌아와서 집 안 구석구석에서 딸의 빈자리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에 물기 가득한 바람이 휘돌았고 주책맞은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딸을 기숙사에 두고 함께 갔던 길을 홀로 돌아오면서 나오는 눈물을 꾹 누르며 의연하게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오니 수시로 눈가가 젖었다.
집에 돌아와서 못 챙겨주고 온 것들이 자꾸 기억이 나서 자책이 되고 마음 쓰였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기숙사 방이 춥다는 이야기에 걱정이 되고 샤워실이 불편하다는 말에 맘이 불편했다.

딸을 기숙사에 남겨두고 홀로 돌아와서 나갔다 금방 들어올 것처럼 흔적을 남기고 간 딸의 휑한 방을 정리하는데, 딸이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 엄마, 내 방에서 뭐해?"하고 불쑥 들어설 것만 같았다.

널린 빨래를 무심코 바라보다 딸이 좋아하던 티셔츠를 보고 갑자기 울음이 북받쳐 올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티셔츠를 보고 울었다고 하니 겨울 방학에 볼 건데  왜 우냐며 웃는 딸 전화 목소리에서도 물기가 느껴졌다.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다가도 "엄마 오늘 저녁이 뭐야?" 묻는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집에도 없는 딸의 이름을 부르며 밥 먹으라고 소리를 칠 뻔도 했다.

캠프나 수련회 등으로 집을 며칠 씩 비울 때와는 다르게 딸이 멀어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딸이 떠나고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사이 수시로 물기에 젖는 듯하던 그리움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지만 여전히 불쑥불쑥 딸이 보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바쁜 일상에도  문득문득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딸이 그리워지곤 하지만 그 그리움도 일상에 묻으며 살고 있다.
딸이 홀로 살아남기를 배우는 두 달 동안 나는 딸이 없는 집에 적응하는 법과 딸과의 장거리 통화로 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법을 배웠다.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딸의 빈자리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을 보면 이렇게 사람들은 빈자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가 보다.


딸은 코로나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고 많은 제약들에 외롭다, 허전하다 말하면서도 수업과 과제 그리고 새 친구들 이야기에 집을 떠난 서운함은 까마득히 잊은 듯하다.

새롭게 만나고 탐색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딸의 전화 수다는 분주하고 변화무쌍하다.

물론 기숙사 방에 홀로 있다 보면 문득 가족과 집 생각이 나겠지만 딸은 금방 친구들과의 전화와 문자 수다에 빠져들곤 할 것이다.


대학으로 떠나보내고도 이렇게 허전한데 나중에 자기 좋다는 남자 따라 훌쩍 떠나면 얼마나 더 마음이 허전할까 쓸데없는 선걸음 같은 생각에 더럭 겁이 난다.
대학 진학이나 결혼과 같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집을 떠나는 서운함 쯤은 훌훌 털고 잘도 집을 떠났던 나의 몹시도 어리고 젊었던 시절이 자꾸만 생각난다.
뒤도 안 돌아보고 훌쩍 집을 나서던 내 가벼운 발걸음에 기쁘면서도 묵직한 섭섭함을 오래도록 느꼈을 부모님의 마음을 당시 부모님 나이가 되어야 알게 되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딸이 방학이면 나와 함께 처음 갔던 길을 혼자서도 척척 오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도 딸이 없는 빈자리에 더 익숙해질 것이다. 

그만큼 딸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는 근육도 생겨날 것이다.



내가, 자란 집을 떠나 한 사람과 둘이 시작한 가족이 셋이 되고, 셋에서 넷이 되던 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험이 시작된 것이다.
딸이 떠나고 셋이 되었는데 한 사람이 아니라 열 사람쯤 빈 느낌이다.
몇 년 후, 아들도 우리를 떠나 삼십 년 전 처음 가족을 이루던 때처럼 둘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텅 빈 기분 이리라.

떠나는 사람은 모른다.
남는 사람만 보이는 떠난 사람의 빈자리의 그 깊이와 크기를.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오래도록 우리네 삶과 함께해왔던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내가 떠날 때는 몰랐던 그 말의 의미를 딸이 떠난 빈자리를 보며 날마다 되새김질한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태평양 건너까지 훌쩍 떠난 딸의 빈자리를 얼마나 오래, 그리고 깊이 되새김질하실지 이제야 조금씩은 가늠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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