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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Dec 04. 2020

다 나아서야 병원에 갑니다. 미국에서는.

아픈 순간에 병원에 가기가 참 어려운 나라

미국에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가 몸이 아플 때다.




한국에 살 때는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몰랐다.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이, 그리고 아픈 증상에 맞게 전문의를 내 마음대로 찾아갈 수 있는 것이.

그리고 무엇보다 병원비가 부담스러워서 아픈 걸 참을 필요가 없는 것이.

한국 의료보험 시스템이 환자와 국민들에게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 것인지를 한국에 살 때는 알지 못했다.




코로나가 미국에 어두움을 드리우던 봄, 손가락에 사마귀 같은 것이 생긴 적이 있다.

진료비도 아까운 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며 참고 지냈는데 자꾸 통증이 있어서 진료시간 예약을 하려니 내가 퇴근한 늦은 오후에는 의사의 스케줄에 빈 시간이 일주일 후에나 있었다.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마침 코로나 사태로 예약한 병원 사무실을 폐쇄한다면서 의사와 전화 진료를 하던지 다른 동네에 있는 병원으로 다시 예약을 하겠냐는 전화가 왔다.

그 병원은 우리 가족이 가진 보험으로 갈 수 있는 우리 동네의 유일한 병원이었다.

옆 도시까지 가고 싶지 않아서 다음에 다시 예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넘실대는 코로나의 파도에, 손가락의 사마귀 같은 것이 주는 통증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이 여름이 찾아왔고, 코로나의 물결이 조금 잦아들면서 우리 동네 병원이 다시 진료를 시작했을 즈음, 신경을 거스르던 그것이 슬며시 떨어져 나갔다.

몇 달간 지속적이고 불편한 통증 주던 것이 저절로 떨어졌으니 진료비가 굳었다며 자가 치료가 된 것이 기특해 혼자 실실 웃었다.

아마도 한국에 있었으면 바로 병원에 가서 약간의 진료비를 내고 적절한 치료를 받은 뒤 훌훌 털어버렸을 테지만, 여기는 미국이었다.




몇 주 뒤, 며칠간 자꾸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피곤한 탓이라 넘겼던 한쪽 눈 안에 뭔가가 생긴 것이 느껴졌다.

보험회사에서 운영하는 예약센터로 전화를 하니 역시나 일주일 뒤로 약속이 잡혔다.

눈이 불편하니 바로 안과 전문의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안내원으로부터 Primary Doctor를 만나  소견서를 받아야 안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지정된 Primary Doctor와 내 퇴근 후 내원 가능 시간이 안 맞아서 같은 병원의 다른 의사를 만났고, 그 의사가 Reference를 써 준 덕분에 다시 예약 센터에 전화를 걸어 옆동네 안과의와의 진료를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눈의 불편함을 느낀 지 이주 만에 안과의를 만나러 갈 때는 이미 증상이 많이 덜해진 뒤였지만 눈에 생긴 것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싶어 병원으로 향했다.

안과의는 대수롭지 않게 눈이 너무 건조하고 강한 햇빛 때문에 생긴 거라며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햇빛을 조심하라고 했다.

한국 진료비의 서너 배나 되는 진료비를 두 번이나 내고 다행히 별 것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을 나오면서, 한국이었다면 훨씬 적은 진료비를, 그것도 한 번만 내고 바로 안과에 가서 진료받고 끝났을 것이라며 속으로 투덜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는 미국이니까.




사실,  비싼 보험료를 지불함에도 불편한 증상이 있거나 아픈 순간에 치료받기 어려운 미국의 신기하고 어이없는 의료체계를 처음 체험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미국에 온 지 석 달 즘 되었을 때, 친구 생일 파티에서 넘어진 딸은 걷지를 못하고 울기만 했다.

다행히 다른 친구 아빠가 의사여서 좀 살펴보더니 발등의 뼈에 금이 간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병원이 문을 닫은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라 주변의 도움을 받아 보험 혜택이 가능한 응급 진료센터를 찾아갔더니 뼈에 금이 간 것이 맞다며 임시로 다리를 고정해주었는데도 딸은 계속 아프다며 울었고 열도 났다.

딸은 진통제를 먹고 조금 나아지면 잠이 들었다가 약효가 떨어지면 아프다고 우는 것을 반복하며 토요일 밤과 일요일을 버텼다.

월요일 아침 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전화를 해서 뼈가 부러진 것 같으니 정형외과를 가야겠다고 하니 일단 Primary Doctor를 만나야 하는데 예약이 꽉 차서 다음 날에나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꼬박 이틀을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애를 보니 화가 나서 병원에서 기다리더라도 Walk-in으로 진료를 받자 싶어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아이가 하도 아파하는 것이 안 됐는지 고맙게도 한 시간 만에 진료실에 들여보내 줬다.

거기서 의사가 해준 일은 의사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진통제를 처방해 준 것과 정형외과의를 만나야 한다는 Reference를 써 준 것 밖에 없었고, 조르고 졸라서 잡은 정형외과 전문의와의 약속은 3일 뒤였다.

펄펄 뛰는 나를 보고 뼈가 부러진 것은 일주일 내에만 치료받으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서류를 넘기던 간호사의 말은 그 뒤에도 오랫동안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겨우겨우 사흘을 보내고 만난 정형외과 전문의는 진료 후 지정해준 장소에 가서 X-ray촬영을 하고 다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진통제를 먹고도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던 딸은 정형외과의가 깁스를 해 주자 마자 바로 통증이 없어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을 받은 후, 지인들로부터 미국에서는 아파도 보험이 없어서 병원을 못 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어느 정도 과장이 된 것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국가 기관이 아닌, 사설기관 즉 기업이 운영하는 민영의료보험의 천국인 미국의 보험료는 진짜로 비싼 데다, 보험이 있어도 아플 때 의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은 아픈 이들에게는 지옥이라는 농담이 있을 만큼 보험이 없는 이들 병원비가 비싸서 아파도 진료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어느 정도 안정된 기업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고용주들이 비싼 보험료의 일정 금액을 납부해주기 때문에 고용인들은 개인 부담금만 감당하면 된다. 

그러나 보험을 제공받지 못하는 고용인들은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개인적으로 보험에 가입할 엄두를 못 내는 경우 많다.

게다가 비싼 보험료를 냈음에도 진료를 받을 때마다 내야하는 2~3만 원 정도의 진찰료도 일반 서민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일반 보험뿐 아니라 치과나 안과 보험 같은 것은 따로 보험을 들어야 되니 기업이나 개인 모두에게 미국의 의료 보험료는 매우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 탓에 보험을 가지고 있지 못한 가정이 많다 보니 공립학교에서는 학교와 연결된 기관에서 학생들을 위한 보험을 운영한다.

내 주변에도 자녀들은 학교를 통한 보험에 가입시킨 채 부모들은 보험 없이 사는 지인들이 있다.

내가 일하는 학교의 한 동료 보조교사는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남편의 보험만 제공하여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학교 보험에 가입시키고 본인은 보험 없이 위태롭게 지내고 있다.

교육구에서 교직원들을 위해 제공하는 의료보험의 가장 저렴한 보험 상품의 개인 부담금 조차 우리 같은 보조교사 월급의 1/3 이상을 자치할 정도로 비싼 탓이다.

한 지인은 갑자기 몸에 이상이 찾아왔는데 보험이 없어서 통증을 참으며 인터넷을 통해 증상을 찾아 알아서 해결해 보려다가 결국 응급실에 실려가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미국의 보험은 비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말 불편하고 어렵다.

보험마다 지정된 병원이나 갈 수 있는 병원의 범위가 다르다.

아무 병원이나 내가 편리한 곳에 갈 수 있는 보험과 지정된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보험은 당연히 보험료가 다르기 때문에 회사나 직장에서 어떤 보험 기관의 보험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고용인들의 보험혜택도 달라진다.

또는 회사에서 여러 가지 선택을 제안하더라 보험에 따라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고용인들은 조금 불편해도 내가 지불하는 보험료가 적은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회사에서는 병원의 범위가 넓은 보험혜택을 제공했는데, 매년 보험료가 오르다 보니 회사에서 지불하는 금액을 줄이고 직원들의 불평은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보험 중 선택하도록 제도를 바꾸었다.

그러니 우리도 진료받기 조금 불편해도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저렴한 보험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험에 가입된 이들보다 보험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더 많은 미국에서 보험혜택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한국에서라면 바로 병원에 갔을 것도 가끔은 진찰료가 부담스러워 일반 의약품으로 자가 치료하거나 버티기로 적당히 견디기도 하면서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게 보이던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어찌어찌 적응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에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없고, 진짜 필요한 치료를 받기 위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Primary Doctor를 만나며 적지 않은 진료비를 두세 번씩 내야 하는 순간에는 여전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정형외과에 가서 깁스만 하면 사라질 통증 때문에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꼬박 닷새를 고생하는 딸을 보며, 미국의 의료체계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환자의 비용과 에너지 낭비를 야기하는지, 과장된 줄 알았던 지인들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아니 그들의 이야기보다 더 비상식적인 미국의 의료보험체계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정형외과에 X-ray기기가 없어서 뼈가 부러진 환자를 X-ray촬영소에 다녀오라는 미국의 의료 분업도 의사와 병원 그리고 보험회사가 우선이고 환자의 아픔과 치료는 뒷자리인 미국 보험제도의 실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국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혹사당한다, 한국인들이 과다진료를 받고 약을 과다하게 복용한다와 같은 기사나 뉴스를 보곤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의료보험의 사각지대가 있고 미국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보험료와 진료비가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합리적인 금액으로 보험 혜택을 누리는 국민이 대다수다.

지금은 그 의료보험 혜택이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 것이었는지 알기에 가끔 동료들에게 한국의 국가 의료보험에 대해 자랑을 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고 부강하다는 나라에서 아픈데 병원에 못 가고 의사를 만나기 위해 며칠씩 기다려야 할 때면 생각한다.

아프면 비용 걱정 없이 바로 병원에 가고 내가 아픈 곳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를 누군가의 허락 없이 만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가 아닐까 하고.

국민들이 보험이 없어서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불안해하며 높은 진료비 때문에 견딜 수 없는 통증에도 참아야 하는 나라는 과연 국가의 힘과 부를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플까 봐 겁이 나는 미국에 살면서 아프면 언제든 동네 병원에 가서 과잉 진료도 받고,  눈이 아프면 안과에 가고 피부에 문제가 있으면 피부과에 갔던 한국이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아하, 그러고 보니 국민 스스로 자가 치료 요법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도록하는 의료보험제도를 만든 것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선진 의료정책일지도 모르겠다.  




* Walk-in은 병원이나 미용실, 식당 등 예약이 필요한 곳에 예약 없이 가는 것을 말한다. 내가 가진 보험으로는 병원에 예약을 안 하고 가면 Walk-in으로 접수를 한 뒤 적어도 1시간 반에서 2시간, 심한 경우 3시간은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 미국은 전문의들이 사무실 한 두 개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종합병원 형태가 아닌 경우 전문의 사무실임에도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있는 경우도 있고, 정형외과에서 X-ray촬영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 Primary Doctor는 주치의와 유사한 개념으로 미국 보험은 가입자 개인마다 가정의학과와 같은 진료를 담당하는  Primary Doctor를 지정하게 되어있다.  필요에 따라 Primary Doctor를 바꿀 수도 있고 그 의사가 바쁜 경우 다른 의사를 통해 진료를 받기도 하는데 Primary Doctor를 거쳐야만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  DarkoStojan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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