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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Dec 21. 2020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보는 나라

아쉬운 소리를 해야 혜택을 받는 미국의 서비스

조용하고 충직한 고객은 호구가 되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자사 인터넷과 TV 서비스에 가입하면 이런저런 혜택을 준다는 여러 전단지를 받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한 각종 전단지가 우편함에 쌓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미국에 살면서 장기 고객을 위한 혜택이나 할인에 대한 연락이나 우편물은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미국 업체들은 장기 가입 고객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새로운 고객 유치에만 열을 올리는 것 같다.

그들에게 오래된 고정 고객은 신규 고객보다 더 비싼 요금의 낮은 혜택을 누림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호구 고객으로 보이는 걸까?

때문에 어떤 미국인들은 새 가입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 일정기간에 한 번씩 인터넷이나 전화, 보험 서비스 업체를 교체한다.

번거로운 업체 교체를 하지 않으면서도 호구 고객이 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서비스 센터에 대고 보채기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런 보채기와 아쉬운 소리는 갑질이 아니라 그들이 숨겨놓고 있는 고객으로서의 내 권리를 찾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의리를 지켜왔건만 새로운 가입자보다 비싼 돈을 내고 적은 혜택을 누리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은 고객이 알아서 혜택을 찾아다녀야 하는 나라이고 그 혜택이라는 것이 신기하게도 찾으면 또 찾아진다.

반면에 한국은 우수 고객에게 해택 찾아오는 나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 사용한 업체에서 장기 고객이라며 비용 할인이나 특별 행사에 대한 정보를 보내주곤 했던 경험이 있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 와서 처음 가입한 업체의 인터넷 상품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일 년에 한 번씩 슬그머니 가격을 올린다는 통지를 이메일로 보낸다.
처음 몇 해는 그런 이메일을 받고 매월 10불 정도씩 더 인터넷 사용료를 내면서, 한국에서는 장기 고객들에게 특별 할인도 해주는데 좀 억울하다는 생각에 인터넷 회사를 바꿀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어도 어려운데 왜 올리냐 따질 엄두도 안 나고 인터넷 회사바꾸기도 번거로워서 미국은 그러가보다 받아들였다.
그러던 중 깐깐한 소비를 하는 지인에게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호구가 되는 일은 멈추라는 충고를 듣고 용기를 내어 더 이상 을이 아닌 갑인 고객으로 살아보자 마음을 먹고 인터넷 업체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몇 년째 너희 인터넷 상품을 쓰는데 사용료를 올리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더듬더듬 설명하는 사이 처음의 갑질 한 번 해보려던 다짐과 달리 나는 상담원에게 사정을 하고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어설픈 영어의 하소연을 가만히 듣던 상담원은 내 말이 끝나자

"그러네. 너희는 Royal Customer(우수 고객) 구나. Royal Customer Promotion(특별 할인)이 있으니 할인해줄게."

하며 바로 다음 달부터 일 년간 할인된 비용이 청구될 거라고 했다.
너무도 시원스러운 상담원의 대답에 얼떨떨하게 고맙다고 하면서 '아니, 우수 고객 할인 상품이 있었으면 진작에 메일을 보내주었면 좀 좋았을까' 생각했다.
상담원은 자기 이름과 우수 고객 서비스 전담 번호를 알려주며 다시 사용료가 올라가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정확히 1년 후 사용료 인상 이메일이 다시 왔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 상담원은 다시 우수 고객 할인을 적용해주었다.
그러나 다음 해 전화를 걸었을 때는 회사 방침이 바뀌었는지 그 상담원과 직접 연결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전화받는 상담원에게 당당하게 우수 고객 할인 이벤트를 알아봐 달라고 했고, 이미 우수 고객을 위해 준비했으나 고객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특별한 할인 혜택을 다시금 적용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와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로 가정에서의 인터넷 사용이 늘자 그럭저럭 쓸만했던 인터넷이 자꾸 끊기기 시작할 무렵 약정된 인터넷 사용량에 육박했는데 초과될 경우 추가 비용이 붙는다는 이메일이 왔다.
나는 다시 아쉬운 소리 모드를 장착하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한참 신세 한탄을 했다.
상담원은 업그레이드를 하면 추가 비용이 붙지만 속도 빨라지고 어쩌고 하면서 새로운 약정을 소개했다.
그럴싸해서 약정을 바꾼 뒤 곰곰이 생각을 하니 비용이 너무 부담이 되었다.
다음 날 연결이 된 상담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더 나은 장기 고객 할인 혜택이 있다며 매월 10불을 더 할인해주는 약정으로 바꿔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약간 추가된  비용으로 끊김 없이 더 빨라진 인터넷을 넉넉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왜 그들은 우수 고객들에게 주려는 혜택을 숨겨두는 것인지, 내가 받을 수 있는 당연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번거롭게 애를 써야 하는지  궁금하다.




아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오래된 탓에 순간적인 배터리 방전으로 문제가 된 지 꽤 되었다.
생일을 맞은 아들에게 새 휴대전화를 개통해주기로 큰 맘을 먹고 전자 상점에 가니 개통비가 40불이나 붙었다.
상점 직원은 우리가 그 통신사만 줄곧 사용한 우수고객이고 번호를 바꾸지 않고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이니 통신사에 연락하면 개통비를 탕감해주거나 적어도 할인은 해줄 거라고 했다.
새 휴대전화에 신이 난 아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니 직원 말대로 개통비를 반 값 할인해주겠며 청구서가 나오면 다시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청구서를 받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니 상담원이 개통비 할인을 못 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지난번 상담원이 이러쿵저러쿵했다며 사설을 늘어놓자 잠깐 살펴보겠다며 기다려 달라더니 개통비 20불을 할인받을 수 있는 게 맞다며 청구서를 다시 보내겠다고 했다.
20불을 할인받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안 주려는 상담사의 태도에 뒤끝이 개운치 않았다.



미국 기업의 상술에 대해 알려준 알뜰한 지인 덕분에 나는 마냥 호구가 아닌 깐깐한 고객이 되고 있다.

어디서든 아쉬운 소리 하기를 몹시 망설이던 성격이었는데 미국에서의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혜택을 받기 위해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는 조언까지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곳에 와서 참 많이 발전했다.
가끔은 내 영어가 더 완벽했다면 조금 더 혜택을 찾아내었을 텐데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강박증이 생기기도 한다.
고객을 위한 할인 행사나 좋은 혜택을 널리 알리면 혜택을 받은 고객은 더 충직한 장기 고객이 될 것이다.

그것이 특별 할인과 이벤트를 해가며 새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열을 올리는 일보다 쉬울 텐데 참 이상하다.

이미 우수 고객 혜택을 마련해놓고도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따질 때까지 고객을 위한 정책을 숨겨두는 미국의 고객 대우 정책은 자꾸 나를 떼쓰고 조르는 갑질 하는 고객으로 만든다.




사실, 나에게 영어로 하는 전화 통화는 여전히 큰 도전이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는  영어가 어색해도 다른 비언어적 도구들을 통해 충분히 의도가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전화는 오로지 말로만 내 의사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전화통화를 앞두면 긴장이 된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보는 나라 미국에서 기업의 충직한 호구 고객이 아닌 주어진 혜택을 누리는 고객이 되기 위해 전화를 걸어야 할 때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생각한다.

'자, 고객 센터의 상담원과 함께 전화 영화 회화 수업을 해보자.'

가끔 운이 좋으면 정말 친절한 상담원 선생님을 만나서 혜택도 받고 영어 회화 연습도 한다.

하지만 가끔 까칠한 상담원을 만날 때면 치사해서 혜택을 안 받고 말지 싶은 생각이 드는 때도 있다.



* 사진 출처 : Pixabay / TheDigitalAr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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