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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ug 31. 2020

집 떠나는 딸

대학 신입생으로 독립을 시작한 딸의 기숙사 입성  동행기


딸이 집을 떠났다
12년의 공교육을 마친 딸이 3시간의 시차와 직항을 타야 5시간 반쯤 후 닿을 수 있는 도시의 대학에 진학했다.
그나마 작은 도시에 있는 탓에 직항이 없어 어디든 경유를 해야 가능한 곳이다.
이로써 딸의 몸과 마음은 부모인 나와 남편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었다.
 



대학이 정해진 후 가장 자유롭고 부담 없는 시간을 코로나 여파로 인해 집에서 보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딸은 스스로 몹시 불쌍히 여겼다.
미국의 코로나 환자 급증으로 많은 대학들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딸은 코로나 때문에 대학교 신입생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게 될까 봐 가슴을 졸였다.
여러 가지 고심과 숙고의 시간을 거쳐 온 캠퍼스 과정을 선택했고 시든 이삭처럼 풀이 죽었던 딸은 가뭄에 시원한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생기를 되찾았다.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미국을 가로질러 동부 끝에 있는 대학으로의 자신의 첫 독립을 준비하며 딸은 매우 분주해졌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대학들이 온 캠퍼스 학생들에게 기숙사 1인실을 제공하는 덕분에 꿈도 못 꾸던 1인실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딸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첫 공간과 꿈꾸던 대학 생활 그리고 새로운 만남에 약간의 두려움이 깔린 설렘과 기대에 가득 차 들떠있었다.
새 침대보와 이불, 베개를 사러 다니면서 딸의 얼굴에는 웃음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로망이었다는 기숙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커다란 트렁크에 담는 손끝에서는 생기 가득한 즐거움이 묻어났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딸은 겨울이 몹시도 추운 미국 동부에서 살아남기 위해 겨울 옷으로 가방 두 개를 채웠고, 코로나에 대비해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비롯해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들도 살뜰하게 챙겼다.

희미란 불안과 활기찬 희망이 교차하는 딸을 보며 대학 진학의 부푼 꿈을 안고 집을 떠나던 삼십 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처음 해보는 대학 기숙사 생활에 들떠 짐을 싸던 나는 내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 밖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딸의 희망에 부푼 가슴과 새로운 시작에 맘껏 축복을 하면서도 깊숙이 밀려드는 아쉽고 섭섭함을 느끼면서 오래전 들뜬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과 마음이 젖어있던 이유를 삼십 년이나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짐을 싸는 딸을 보면서, 짐이 빠지는 딸의 방을 지나면서 나는 공연히 마음이 싸해졌고 딸을 그 먼 대학 기숙사에 두고 혼자 돌아올 생각을 하면, 그것도 2주간 방에서 격리생활을 해야 할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해지곤 했다.
그런 나에게 딸은 "엄마, 집에 가는 길에 울면 안 돼. 눈물 닦다가 코로나 걸리면 어떻게 해. 눈물 날 거 같으면 집에 가서 울어." 위로인지 놀리는 건지 모를 말을 건넸다.

드디어 예정된 날이 다가왔고 첫 이사의 많은 짐과 비행기를 2번이나 갈아타며 대학으로 떠나는 딸의 여정에 엄마인 내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2시간의 제한된 이사 시간과 가족 중 한 사람만 이사를 도울 수 있다는 전제를 달았고, 이사를 마친 학생들은 학교 자체의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일제히 2 주간의 격리에 들어가도록 했다.
둘이 낑낑거리며 짐을 들고 딸에게 배정된 방에 들어서니 2주 동안 먹을 물과 아침 식사 거리가 준비되어있었다.
온라인으로 미리 고른  점심과 저녁 식사는 기숙사 문 앞으로 배달되며 화장실 사용과 잠깐의 개인 운동 외에는 외출이 금지된다.
그리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학교의 계획대로 두 주간의 온라인 수업 후, 딸은 꿈꾸던 대학 강의실에서 대학 수업을 듣게 될 것이다.
2시간의 제한된 시간 안에 정신없이 짐을 정리하고 청소를 마친 딸과 나는 먹먹한 마음으로 두서도 없는 이별의 인사를 나눴고 웃으며 기념 촬영도 했다.  

그리고 어서 가라는 딸의 재촉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딸이 홀로서기를 시작할 기숙사 건물을 나섰다.
내 뒷모습에 딸은 잠시 슬픔에 젖었겠지만 이내 자신의 새로운 공간에서 맞이할 새 삶에 대한 기대로 마음과 생각이 분주해졌을 것이다.


함께 갔던 길을 그대로 혼자 되짚어 오는 길, 눈가는 뜨거워지고 가슴에는 서늘한 바람이 휘돌곤 했다.


딸과 함께 집을 나섰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길, 허전함을 털어내기 위해 애쓰는데 아침부터 부슬거리던 빗방울이 굵어졌다.
게다가 함께 왔다 혼자 떠나기 위해 찾은 공항에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승객이 손에 꼽힐 정도여서 작은 공항은 안내 방송만 간간이 들려올 뿐 매우 적막했다.
휑한 공항에 혼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첫 독립의 기대로 커다란 가방에 가득 채운 짐을 들고 엄마와 함께 대학 기숙사에 들어서던 삼십 년 전 봄이 생각났다.
기숙사에 짐을 넣어주고 돌아가는 엄마를 보며 코끝이 시큰했지만 곧 내 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그 서운함은 금세 사라졌다.
그러나 엄마는 고속버스를 타고 혼자 집으로 가면서, 한동안 집안 구석구석에서 내 빈자리를 발견할 때마다 눈물을 훔쳤으리라.
집에 갈 때까지 울지 않겠다고 딸하고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기분이었다.
바이러스가 무서운데도 자꾸 코가 시큰거리고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그래도 의연한 엄마가 되기 위해 눈물을 꿀꺽 삼켰다.
혼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딸에게 일러두지 못한 것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도통 깊이 잠들지 못했다.
경유하는 공항에서 전화를 하니 딸은 내가 혼자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잘 해결하고 있었다.
딸은 어느새 제 인생의 일들을 책임지고 해결할 준비가 되어있었나 보다.

자식이 독립을 시작하면 자식만 독립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자식으로부터 독립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인 것을 배운다.
미국 대륙을 가로지른 먼 대학에서 딸은 여러 지식뿐 아니라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법을 배워 나갈 것이다.
그렇게 홀로 서가는 딸을 보면서 나와 남편도 딸에게서 독립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딸과 함께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동안 이미 나는 딸과 멀어지는 거리만큼 딸에게서 독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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