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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ug 18. 2020

외식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낯선 이들 속의 식사가 즐겁기에 가끔은 외식을 하고 싶다.

일주일에 하루, 토요일이나 일요일 저녁에 외식을 하는 것은 우리 가족의 오랜 주말 행사였다.

일을 하면서 식사도 준비해야 하는 나에게나, 내가 하는 음식만 먹어야 하는 가족들에게 가끔 남이 해주는 음식을 돈 주고 사 먹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 되어왔다.

가끔 간단한 음식을 마켓이나 햄버거 가게에서 사다가 한 끼 때우기도 하지만, 주말을 맞아 가족이 함께 식당을 찾아 외식을 하는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특별히 식당에 가서 차려주는 거 먹고 몸만 쏙 빠져나오면 되는 주말 외식은 나에게는 마치 가뭄의 단비처럼 달콤하기까지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특별한 외식을 앞두고 한마음으로 한식이나 일식, 양식 등으로 쉽게 방향이 정해지는 경우 식당 선정에 빠르게 의견 일치를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제 주장을 내세울 줄 알게 될수록 넷 밖에 안 되는 가족들이 서로 먹고 싶은 것이 달라서 작은 다툼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한 아이가 양식이 먹고 싶은 날, 다른 아이는 초밥이 먹고 싶어 지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간혹 유난히 아빠가 특정 음식을 고집하는 날, 아빠의 의견대로 하자고 했다가 '엄마는 아빠 편만 든다'며 두 아이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점차 타협을 통해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메뉴와 식당을 고르는 규칙을 정해 잠시 평화를 찾았지만, 규칙을 정했음에도 누나 차례인데 누나가 고른 메뉴가 영 안 당긴다는 아들이나 아들이 먹고 싶은 것이 느끼해서 싫다는 딸의 반응에 외식하러 나가야 할 즐거운 시간이 냉랭한 분위기로 바뀌기도 했다.

그만큼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가족 외식은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행사였고 아이들은 그 특별한 기회에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식욕을 만족시키고 싶어 했다.




다른 나라들의 심각한 상황을 구경만 하던 미국은 갑작스럽게 코로나 바이러스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생계와 직결된 업종을 제외한 모든 가게와 업체의 문을 닫도록 강제하였다.

마켓은 운영시간을 줄였고 주변의 식당과 카페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당연히 우리 가족은 짬짬이 바깥 음식 사다 먹기와 일주일에 한 번하는 특별한 외식 행사를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일주일 내내 외식 한 번 없이 집밥으로 버티는 일상이 시작되자 매끼 반찬을 해댈 수 없으니 특별한 준비가 필요 없는 고기 구워 먹기로 외식을 대체하였다.

인스턴트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더라도 어떻게든 집에서 끓이고 구워서 매 끼니를 해결하며 지냈다.

그렇게 지낸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바깥 음식이나 외식 없이도 별 탈없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에 나 스스로가 놀랐다.

그렇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을 사다 먹거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지 않고,  하루 세끼 주 칠일을 집밥만 먹고도 사람은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좋아질 기미가 없자 마냥 문을 닫고 있을 수 없던 식당들은 손님이 주문한 포장 음식을 받아가는 To-go 또는 Takeout과 우버나 리프트를 활용해 Delivery 시스템을 접목한 음식 배달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제개했다.

집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바깥 음식이 그리워지자 우리도 아주 이따금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 시작했다.


첫 경제 제개가 해제되고 잠시 재기했던 경제 활동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외식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다시 바이러스  확진자 증가로 두 번째 경제제재가 시작되었고,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식당과 상점들은 건물 밖에 천막과 테이블을 설치해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 안에 갇혀 지내던 이들이 답답함과 단절감을 해소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라도 조금씩 다시 바깥공기를 쐬러 나오기 시작했다.

집 근처 몰의 식당들이 단체로 주차장에 천막과 테이블을 설치해 그럴듯한 야외 식당을 만든 것을 보고 우리 가족도 용기를 내어 외식을 감행하기로 했다.

식사 전 테이블을 소독제로 닦으며 매우 조심스럽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첫 주말 외식에 임했다.

우리는 종업원과 접촉할 때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먹을 때만 마스크를 벗었다.

간격을 두고 앉은 테이블들과 서로 접촉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조심스러웠지만 열린 공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식사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게다가 센스 있는 한 식당 주인이 준비한 라이브 무대 덕분에 주차장 위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손님들은 유쾌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근 두 달 반 만에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정말 맛있고 굉장히 맛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활기찬 분위기에 우리 가족의 긴장된 얼굴에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돌았다.  

가족 모두가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마스크를 끼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잠깐이지만 바이러스의 두려움에서 해방된 기분을 맛보았던 그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외식은 그 식당의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어울려 먹는 즐거움까지 먹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외식은 선택임을 알았다.

일상의 하나라고 생각한 외식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나름의 방법으로 집밥을 해 먹으며 아주 무탈하게 잘 지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쉽고 편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만 필요했던 것이 아님도 알게 되었다.

전문가의 손맛이 담긴 맛있는 음식은 입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테이블에서 다른 메뉴를 먹고 있는 누군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먹는 시간은 음식을 더 맛있게 한다.

즐겁게 먹는 사람들 속에서 먹는 음식은 더 맛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요리사의 손맛으로만 음식이 맛있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어울림음식 맛을 더 좋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외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돈을 내고서라도 낯선 이들 속에서 하는 식사를 하고 싶다.

가끔은 음식 맛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먹는 순간을 공유하는 맛을 누리고 싶다.  


낯선 이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거리낌 없이 웃고 떠들며 먹는 그 당연했던 것이 특별한 것이 되고 보니,  당연했지만 특별해진 그것이 음식을 더 맛나게 하는 조미료였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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