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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ul 22. 2020

바나나를 넣은 김치, 국물 맛이 끝내줘요!

김치 담그기 초보가 알려주는 국물 맛 끝내주는 김치 만들기 비법

"열무김치 담글 때 바나나를 갈아 넣었더니 국물 맛이 슴슴하면서 개운하더라. 다들 맛있다고 난리야."

김치거리를 사 왔다는 내 말에 엄마는 바나나를 갈아 넣어보라고 하셨다.

지인의 말을 듣고 칠십 평생 처음 바나나를 넣은 김치를 만들어본 엄마는 새로운 김치 담기 비법을 나에게 전수해 주고 싶어 하셨다.  

바나나를 김치에? 김치에 바나나를?




나는 미국에 와서까지 태평양 넘어 친정 엄마가 보내주는 김치에 기대어 살다가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김치 담기 초보자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집콕으로 잉여 시간을 가지게 된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김치를 담기 시작했는데, 한 세 번쯤 담가보니 맘 잡고 한나절 고생하면 한 달쯤 먹을 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김치 고수들의 정보를 짜깁기한 결과 적당한 비율로 김치 양념을 만들면 어느 김치에나 대부분 적용할 수 있다는 요령도 터득했다.

물론 고수들이 하는 대로 김치 별로 다른 양념을 만들면 더 맛있겠지만 빠르고 효율적인 살림을 지향하는 나는 양념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김치에 두루 사용하는 편법을 애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검색한 어떤 블로거나 유투버, 심지어 집밥의 대가 백 선생에게서도 김치 양념에 바나를 갈아 넣어보라는 비법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자신 있게 추천했지만 바나나 향과 맛 때문에 김치 맛이 이상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살림 고수에 김치 도사인 엄마의 말씀은 언제나 부엌의 진리였다.

그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바나나를 넣은 김치를 담가보기로 했다.


김치 초보의 이번 김치 프로젝트는 깍두기와 배추 맛김치였다.

포기김치와 달리 배추를 썰어서 절이는 손쉽게 담는 배추김치를 막김치 또는 맛김치라고 부른다.

풀을 쑤면서 깍둑 썰기한 무와 적당한 크기로 썬 배추에 굵은소금을 뿌렸다.

풀물을 식히고 김치 재료가 잘 절여지도록 틈틈이 섞어주면서 김치 양념을 만들었다.

바나나를 넣으면 단맛이 충분할 것 같아서 김치 양념에 설탕은 넣지 않았다.

드디어 바나나 김치를 만들기 위해 믹서기에 양파 한 개와 껍질을 벗긴 바나나 두 개를 넣어 같이 갈았다.

양파의 알싸한 냄새와 바나나의 달큼한 냄새가 뒤섞인 양파 바나나 셰이크를 김치 양념에 넣으려는데 아무리 엄마의 말씀이라도 항상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에이, 모르겠다.'

잠시 망설이다가 믹서기에 든 양파 바나나 셰이크를 김치 양념에 들썩 부어버렸다.

처음에는 김치 양념에서 바나나 향이 나는 것 같아 슬그머니 걱정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마음으로 절인 배추와 무에 양념을 버무리는 동안 바바나 향은 사라지고 아주 보통의 김치 냄새가 났다.

다소 안심이 된 마음으로 바나나를 갈아 넣은 양념으로 버무린 깍두기와 맛김치를 통에 담았다.

부엌을 드나들 때마다 통 속의 김치 맛이 어떨까 궁금해서 슬쩍 열어서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하루 정도 익힌 후 냉장고에 넣어 둔 김치를 꺼내 다음 날 저녁 상을 차렸다.

맛김치와 깍두기는 아주 멀쩡한 김치 맛이 났다. 아니 사실 아주 맛있었다.

아들이 깍두기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식당 김치 같은데...... 덜 달아."

정확한 표현이었다.

식당에서 먹는 김치처럼 맛깔난데 식당의 김치처럼 달지 않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딸도 익으면 더 맛있겠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양념에 양파 바바나 셰이크를 넣으며 우려했던 것 달리 김치에서는 전혀 바나나 향이나 맛이 나지 않았다.

대신 김치 국물에서 설탕을 넣은 처럼 달지는 않은데 오묘하게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전혀 달지 않은데 달지 않은 게 아닌 그런 감칠맛이 도는 건강한 김치 맛이다.

워낙 입맛이 소탈해 뭐든 잘 먹는 남편이지만 이번에 바나나를 갈아 넣은 김치는 그릇에 남은 김치 국물까지 남김없이 떠먹을 정도로 맛있게 먹고 있다.


마흔이 훌쩍 넘어 김치 담기를 시작한 김치 초보인 나는 바나나를 갈아 넣어 네 번째 김치를 담근 후 엄마에게 보고 전화를 했다.

일흔이 넘어 처음 바나나 넣은 김치를 담근 엄마와 엄마 말대로 바나나를 넣은 김 담기에 성공한 마흔 넘은 딸은 태평양을 건너 전화통화로 바나나 김치 예찬을 하며 깔깔 웃었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 원숭이가 연상되는 노란 바나나는 부유한 사람들이나 먹는 고급 과일이었다.

지금이야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TV 드라마에서 부잣집 사람들이 병문안을 갈 때 들고 가는 과일이었다.

바나나는 칼륨과 카로틴, 비타민 C를 함유한 건강에 유익한 과일이다.

씻을 필요 없이 손으로 껍질만 까면 되니 먹기도 편하다.

빈속에 먹으면 좋지 않다는 설도 있지만 배고플 때나 허전할 때 먹으면 한참 든든하다.


이렇게 영양 만점인 바나나를 갈아서 넣은 김치라니, 이전에 들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는데 내가 직접 만들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바나나를 넣은 김치는 설탕을 넣을 필요도 없고 맛도 좋지만 영양도 더 풍부할 것이다.

바나나는 점도가 있기 때문에 바나나를 넣으면 풀을 쑤지 않고 양념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바나나도 과일이기 때문에 오래 두고 먹을 김장김치에는 넣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치 초보의 후다닥 김치 담 (종이컵과 밥숟가락 기준)


1. 풀 쑤기

- 종이컵 2개 분량의 물 : 밀가루나 찹쌀가루 3숟가락 비율로 풀 쑤기

- 처음부터 찬물 밀가루나 쌀가루를 넣어 끓이기 시작하면 눌어붙지 않도록 수시로 저어 주어야 한다.

- 조금 쉽게 하려면 따로 찬물에 밀가루나 쌀가루를 진하게 풀어놓은 뒤 분량의 물을 끓이다가 물이 끓을 때 진하게 풀어놓은 풀물을 넣고 몇 번 저어주면 금세 끓는다.

- 묽은 미음처럼 걸쭉해지면 불을 끄고 식힌다.

- 고수님들 말씀에 따르면 풀은 꼭 식혀서 사용해야지 안 그러면 고춧가루가 익어서 낭패를 본다고 한다.


2. 김치 재료를 씻어 손질하고 소금에 절이기

- 깍두기 담을 무는 큰 거 2개나 작은 거 3개에 소금 반 컵 + 설탕 반 컵

- 맛김치 또는 막김치 용 배추 한 포기에 소금 반 컵    

- 맛김치 또는 막김치 : 배추 뿌리 부분을 칼로 잘라내고 배춧잎을 뜯어내어 깨끗이 씻은 뒤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굵은소금을 뿌려 30분 정도 절인 후 맑은 물에 헹군 후 체에 밭쳐 물을 뺀다.

- 깍두기 : 무를 깨끗이 씻은 후 적당한 크기로 깍둑썰기를 한 뒤 동일하게 굵은소금에 30분 정도 절인 후 체에 밭쳐 물을 뺀다.

- 평생을 김치를 먹고살았기 때문에 초보일지라도 적당한 크기는 대강 짐작할 만하다.

- 약간 짭짤하게 느껴지게 절여지는 게 좋은데 혹시 절인 김치 재료가 너무 짜다면 물에 몇 번 헹군 뒤 소쿠리나 체에 바쳐서 물을 빼내면 짠기가 덜해진다.

- 헹구면 무의 단맛이 빠진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생각보다 짜서 걱정이 된다면 헹구어낸 후 물을 충분히 빼면 짠맛을 줄일 수 있다.


3. 김치 양념 만들기

-  깍두기 무 큰 거 2개나 3개 또는 배추 한 포기 : 고춧가루 3컵 + 다진 마늘 1컵 + 다진 생강 1숟가락 + 액젓 1/3컵 + 새우젓 3숟가락 + 꽃소금 2숟가락

- 위 양념에 설탕은 기호에 따라 넣으면 된다. 내 개인적 취향으로 설탕은 종이컵 1/2 정도가 적당했다.

-  어떤 김치든 이런 비율로 만들면 대충 맛이 난다.

-  절인 재료가 짠 경우에는 양념을 만들 때 액젓이나 새우젓, 소금 양을 줄이면 되고 반대로 싱겁게 절여진 경우에는 조금 더 늘리면 된다.

- 위 양념의 분량은 깍두기 무 2~3개나 배추 한 통으로 담는 김치 분량이니 양에 따라 적당히 조절한다.

- 고춧가루를 굵은 것과 고운 것을 반반 섞어 쓰면 좋다는데 난 그때 그때  집에 있는 것을 사용한다.

- 양파 한 개를 갈아서 김치 양념에 넣으면 양념이 더 맛있다.

- 김치 양념에 식은 풀을 넣어 잘 섞어둔다.

- 김치 양념은 시간이 지나면 더 맛이 드는 것 같아서 남으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음에 사용하기도 한다.


4. 오늘 김치의 핵심! 바나나 갈아넣기

- 양파와 함께 껍질 벗긴 바나나 두 개를 믹서기에 넣고 같이 넣어 간다.

- 양파와 바나나 간 것을 양념에 넣어 섞어준다.


5. 버무리기

- 절여서 물을 뺀 배추나 깍둑 썰기한 무에 양념을 투척한 후 열심히 버무려 준다.

- 양념은 한 번에 다 넣지 말고 버무려가면서 양을 조절하여 첨가하는 것이 좋다.

- 기호에 따라 파와 양파, 부추, 홍고추나 청고추 등을 썰어 넣으면 색도 예쁘고 맛도 있다.

- 이번에 나는 깍두기에는 파를 배추 막김치에는 양파와 부추를 썰어 넣었다.

- 잘 버무린 김치를 통에 담아 공기가 통하지 않고 맛이 잘 들도록 꼭꼭 눌러준 후 깨끗한 비닐로 덮는다.

- 뚜껑을 닫은 뒤  실온에 하루 두었다가 냉장고에 넣는다.


김치를 몇 번 담가보니 깍두기든 배추 맛김치든 또는 알타리 김치든 오이김치든 김치 양념은 비슷하다.

다만 파김치를 담글 때는 마늘과 생강이 들어가는 경우 파의 매운맛 때문에 파김치에서 쓴 맛이 날 수 있으니 마늘과 생강을 빼고 양념을 만드는 게 좋다.




배추와 무를 소금에 절인 후 바나나를 갈아넣은 김치 양념으로 버무렸다. 바나나를 넣은 김치 국물이 끝내주게 맛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김치 담기에 대해 글을 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마흔을 훌쩍 넘어 김치 담기의 세계에 들어선 김치 초보가 김치 레시피를 공유할 날이 오다니!

맛있는 김치 담는 비법을 전수해주는 친절한 블로거나 유투버들이 많은 세상에 내 경험이 도움이 될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웃지 않을까 슬쩍 겁이 났지만 김치에 바나나 갈아 넣기 비법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김치 양념에 바나나를 갈아 넣어 보세요.

오묘하게 입맛을 끌어당기는 국물 맛이 정말 끝내줘요.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나는 김치를 먹어보고 싶다면 바나나를 넣어보세요.

단, 사람마다 입맛과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정말 맛있게 먹고 있지만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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