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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Nov 19. 2020

한국어를 가르쳐준 부모님, 감사합니다

한국 부모라면 자녀에게 한국어를 꼭 가르치기를...

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 1.5세나 2세 중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들 뒤에는 부모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사명과 의지가 있다.





전근 오기 전 미국 학교에는 나 말고도 한국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우리 학교 카운슬러인 Ms. M은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왔고 스위스 남자와 결혼해서 산다.
처음에는 다른 교사들과 유창하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Ms. M이 한국인이지만 한국말을 못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 너무도 또렷한 발음 한국어로 능숙하게 답을 해서 깜짝 놀랐다.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온전히 떨칠 수 없는 미국 학교의 근무시간에 간간히 Ms. M을 마주칠 때마다 잠깐이지만 한국말로 수다를 떨 수 있어서 학생들 카운슬러에게 내가 카운슬링을 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한국학교와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에 Ms. M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한국학교에 데려다 주니 아무 소리 없이 친구들 만나는 재미에 한국학교를 다녔던 Ms. M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굳이 필요도 없고 어렵고 힘든 한국어를 따로 시간을 내어 배우는 것이 싫어졌다.  

하지만 부모님은 싫다는 딸을 얼르고 달래며 끈질기게 한국학교에 보냈고 Ms. M은 어쩔 수 없이 주말마다 한국학교에 가야 했다.

Ms. M은 당시에는 다른 한국인 부모와 달리 억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부모님의 강요에 억지로 한국학교에 다닌 덕분에 자신이 한국어를 잊지 않을 수 있었음을 알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스위스인 남편과 살기에 한국어를 못 하는 것이 삶에 지장은 없음에도 현재 부모님께 가장 감사하는 것이 한국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해 준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 학교 아이들은 자신처럼 한국학교에 다니는 것을 싫어할 수 있지만 철이 들면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될 것이라며 한국어 교사인 나를 격려해주었다.




지인의 소개로 두 살배기 아이를 둔 젊은 선생님을 만났다.
이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선생님은 미국에서 자랐고 지금은 아이들의 대학입시를 지도하고 있다.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잠깐 갈등하는데 그 선생님이 먼저 유창한 한국어로 술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선생님의 한국 실력에 놀라니 엄마와 말싸움을 하느라 한국어가 늘었다면서 자기의 한국어가 완벽하지는 않다고 겸손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그의 한국어 문장은 대부분 정확했고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라 믿어지지 않게 한국어 발음이 좋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은 영어를 못하는 엄마를 이겨보겠다고 한국어로 대들었겠지만 엄마는 아들이 한국어를 마구 사용하도록 받아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생님은 완벽한 영어로 아이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능숙한 한국어로 학부모들을 상대하며 대학 입시 컨설턴트로 자신의 입지를 확장해가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일부러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문자도 한국어로 보낸다.
특히 곧잘 한국어를 하더니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슬그머니 한국어 사용이 줄어드는 아들에게는 아들이 하는 영어 문장의 의미를 알면서도 그 말이 한국어로 무슨 말인지 물어본다.
그럼 사춘기의 태풍 한가운데 서 있는 아들은 한국어로 뭐라는지 모른다며 자리를 뜬다.
아들 뒤에 대고 "그거 이런 말이지?"라며 한국어로 물으면 저만치 멀어진 아들은 "그런가 봐."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아들의 한국어를 어떻게든 붙잡기 위한 나의 전략인 셈이다.
지금은 제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 같은 엄마의 영어가 한심스러워도 철이 들면 한국어를 잊지 않게 해 준 엄마가 고마울 것이라 믿는다.
설사 고맙다는 소리를 못 들으면 또 어떤가?
한국인인 내 아들이 정확하게 한국어를 하는 어른으로 자란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오늘도 나에게 와서 미제 따발총처럼 제 할 말만 던지고 가는 아들 뒤에 대고 나는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한국어로 물었다.
"그래서 그게 이렇게 하라는 거지?"
미제 따발총을 쏜 아들은 제가 한 말이 한국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 한 귀로라도 들었을 것이다.
한 귀로 들은 내 말이 다른 귀로 빠져나갔을 지라도 한 구절쯤은 머릿속 어디에 남았으리라 믿어본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살면서 가슴 뭉클하고 뿌듯한 순간 중 하나가 어린 시절 미국에 왔거나 미국에서 태어났는데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인을 만났을 때다.

그들의 한국어는 그들의 노력 덕이 아니다.

그들 뒤에 있는 부모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사명과 의지 덕분이다.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 자녀들의 유창한 한국어도 물론 자랑스럽다.

그러나 내 마음을 뭉클하고 뿌듯하게 하는 것은 그 유창한 한국어의 바탕이 된 부모들의 모국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도 자녀들의 한국어를 지켜주기 위해 해왔을 부모들의 기나긴 노력이다.


한국 교사로서 대신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중에도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 부모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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