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어울릴 수 없는 이들이 한국어 때문에 하나가 되기도 한다.
주 5일을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는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세종학당의 한국어 선생님이 된다.
미국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 세종학당 교사로 일하게 된 것이라 여겨질 만큼 세종학당의 수업시간은 나에게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다.
온갖 종류의 집합이라는 의미로 미국은 종종 Mixed Bag이라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큰 Mixed Bag의 캘리포니아 한 구석에 내가 일하는 세종학당이 있다. 세종학당과 우리 반의 모습은 미국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작은 Mixed Bag이다.
우리 반 학생들은 미국인으로 미국에 살고 있는 다 큰 성인이라는 것 외에는 서로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열명 안팎의 학생들의 연령은 이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 다양하다. 가끔 고등학생들 중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한 두 명 들어올 때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가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열 여명의 학생들은 출신도 다르다. 백인이나 흑인, 하와이 인디언들도 있고 중국계, 베트남계, 대만계 또는 헝가리계나 프랑스계 미국인 등 전 세계에 뿌리를 둔 수많은 인종의 미국인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그들 중에는 겉모습은 한국사람인데 한국어를 못하는 한국계 미국인도 있고 아주 오래전 미국에 온 고려인 할머니를 둔 혼혈 학생도 있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친 학생들의 직업을 적어보면 마치 직업 사전을 보는 듯하다.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 유치원이나 각종 학교의 교사나 대학 교수들 뿐 아니라 마취과와 내과, 정신과 등 다양한 분야의 의사들과 병원 안내원이나 호흡기 질환계 매니저를 비롯한 의료업 관계자들도 있다. 부동산 중개인과 군인,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화장품 판매원, 백화점 직원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업종과 각종 업계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
우리 반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도 각기 다르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을 좋아하게 되어 한국에 가서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도 있고, 한류에 빠져서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학생도 있다.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하여 배우자와 배우자 가족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랑꾼이 있는가 하면 부모와 진솔한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한국계 미국인 자녀도 있다. 한국계 기업에서 일하는데 필요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열혈 직장인과 한국인 고객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비즈니스형 한국어 학습자들도 있다.
학생들의 생활환경이나 학습 여건도 다양하다. 우리 반에는 두 아이를 둔 직장맘이나 한국어 수업을 위해 아이의 운동 연습을 아내에게 맡기며 수업에 오는 아빠 학생이 있다. 은퇴 후 한국어의 매력에 주 7일 24시간을 한국어 학습에만 매진하는 것 같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수업 내용을 소화하기에도 바쁜 일상 중에도 한국어 수업 시간을 지키는 학생도 있다. 출장 때문에 수업을 빠지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 보충 수업을 하기 위해 애쓰는 학생도 있고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으면서 수업을 복습하는 학생도 있다.
우리 반 학생들은 사는 곳도 다르다. 세종학당 바로 근처에 사는 학생들도 있지만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수업에 오는 학생들도 있다.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자 두세 시간의 시차가 나는 미국 중부나 동부에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생겼다.
이렇게도 너무도 다른 배경과 여건을 가진 우리 반 학생들에게 미국인이라는 것 외에 다른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어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열정이다. 은퇴한 소수의 할아버지나 할머니 학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바쁜 일상과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 나이나 성별, 인종과 직업, 가정환경이나 생활 반경이 전혀 다른 학생들이 한국어 하나 때문에 한 교실에 모인다. 한국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에서 제일 신기한 Mixed Bag 가운데 내가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 반 Mixed Bag에 들어올 자격이 충분한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우리 반 Mixed Bag에 머물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가진 이질적인 존재이다. 다들 영어를 잘하는데 나만 영어를 못하고, 다들 한국어를 배우러 왔는데 나는 한국어를 가르친다. 그럼에도 그들 속에 함께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처럼 나도 내가 가르치는 한국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판 남이었던 이들이 수업 시간이면 서로의 어설픈 한국어 발음을 잘했다고 칭찬하고 서로의 뒤죽박죽인 한국어 문장을 이해한다. 서로의 작은 성장에 박수를 보내고 서로의 실수에 함박웃음을 터뜨리면서 다음 수업 시간에 만날 것을 기약한다. 어눌하고 서툴렀던 발음과 문장이 한주 한주 매끄럽고 온전한 한국어 표현으로 진화하는 것을 함께 지켜보고 격려하며 함께 한국어를 배우는 다 큰, 심지어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학생들을 보며 한국어 교사로서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이 세상은 서로 다른 외모만큼 다양한 성향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 이들이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Mixed Bag을 형성하는 데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반 학생들과 나도 교실 밖에서 만났다면 한 봉지에 담길 수 없는 매우 이질적인 존재들이었지만, 한국어에 대한 사랑 하나 때문에 우리는 한국어 교실에서 한 봉지가 되었다. 세상은 그런 것인 모양이다. 절대로 섞일 수 없는 A와 Z가, 서로 비슷한 구석이 없는 흰색과 검은색이 서로를 묶어주는 뜻하지 않은 인생의 실에 묶여 어우러지기도 하나 보다.
공통분모 하나 없이 한 가지로 정의가 불가능한 이들이 한국어라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유로 매주 수업 시간에 한 곳에 모이고,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 이외에는 자신들보다 하나도 잘날 것 없는 나에게 진심을 담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어만 잘하는 나를, 자신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다는 이유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세종학당의 한국어 수업시간은 내 일상에서 가장 특별한 시간이 된다. 그 때문에 한국어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다 큰 우리 반 학생들의 한국어 배움의 갈증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수업시간에서 단 1분도 낭비할 수 없다는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의 끝자락이 다가오면서 세종학당의 여름학기도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끝이 아닌 다음 학기 수업을 기약하는 우리 반 학생들은 함께 다음 레벨로 올라가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았던 Mixed Bag 안에 공통분모가 점점 커지는 것을 경험한다. 서로 섞일 수 없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한국어의 힘이 자라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한국인 교사로 살다 보니 미국의 Mixed Bag 안에서의 삶의 의미가 점점 특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