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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ul 10. 2020

미국에서 제일 부러운 한국인

영어뿐 아이라 한국어도 잘하는 두 마리 토끼를 가진 미국의 한국인


미국에는 세 가지 종류의 한국사람이 있다.

1. 한국어만 유창한 한국사람 2. 영어만 유창한 한국사람 3.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유창한 한국사람.

한국어 교사가 이야기하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



각종 영화에서 수상했던 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 못지않게 수상무대에서 관심을 받은 이가 있었다. 바로 봉 감독의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이다. 전문 통역가가 아님에도 샤론 최의 영어 통역이 너무도 적절하고 매끄러워서 그녀의 활약은 더욱 눈부셨다. 그녀가 한국어를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모두가 놀랄 만큼 수려한 영어 구사는 많은 한국인들을 감탄하게 했다.


한국에서 원어민처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보며 감탄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영어만 잘할 것 같은 한국인 2세나 3세가 유창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때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멋지게 보이는지 모른다.


작년에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2020 인구조사(Census)에 대한 홍보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인지 세미나 내용 중 지역 관계부처에서 Census 업무를 담당한 직원의 짧은 강의가 있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인구조사 참여에 소원한 한국인들에게 인구조사 참여의 필요성을 알리고 참여를 권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한국계 미국인 직원은 참가자들의 다양한 연령과 영어와 한국어 실력의 차이를 고려해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사용해가며 인구조사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필요에 대해 매우 의미 있고 명료하게 강의했다. 그 직원의 논리 있고 조리 있는 강의는 청중들에게 한국계 미국인들이 미국에서 정치적, 제도적 해택을 누리고 힘을 갖기 위해서라도 인구조사 참여가 중요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직원의 강의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당연히 유창한 영어에 뒤따르는 놀랍도록 수려한 한국어 실력이었다.

세미나가 끝난 후 나처럼 의무감으로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참여했던 몇몇 1번 한국인 교사들은 그 직원을 찾아가 직원의 한국어에 칭찬과 감탄을 전했다. 영어를 잘하는 거야 당연한 것이지만 대강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아닌 정확하고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사용한 그녀의 놀랍게 매끄러운 한국어 구사력은 빈자리나 채워주러 온 한국어 교사들을 감동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구조사 강의를 듣는 내내 나는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3번 한국인인 그 직원이 몹시도 부러웠다. 전형적인 1번 한국인인 나는 결코 닿을 수 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내 아이들은 그 직원과 같은 3번 한국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번 한국인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려서 미국에 왔으나 미국인과 다름없는 영어를 구사할 뿐만 아니라 나무랄 데 없는 한국어를 구사한다. 어찌 보면 3번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보다 더 대단하다.

영어 유치원을 거쳐 학교에서 뿐 아니라 학원에서도 따로 시간 내어 영어를 배우고, 대학 입학이나 취업을 위해서 영어 공부에 매진하는 그야말로 '영어를 원어민처럼 해보는 것'이 꿈인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좀 잘하는 것은 어쩌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에 살면서 일부 고등학교의 언어 선택과목에나 있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따로 시간과 수고를 쏟아 한국어 실력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가정에서 부모가 한국어를 쓰는데 한국어를 하는 것이 뭐 어려울까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 한국어가 유창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리고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해지고 결국은 익숙한 영어에 치여 한국어 구사력은 잃어가는 상황이 다반다.

그래서 흔치는 않지만 간혹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두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한국어에 대한 부모의 남다른 관심과 자녀들의 노력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가늠된다.

 



3번 한국인들의 특징


1. 영어와 한국어 존중

영어권 국가에서 한국어를 지속적으로 잘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부모의 관심도 필요하지만 본인 스스로 두 언어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과 한국어에 쏟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어려서 한국어를 제법 잘 종알거리던 대부분의 한국계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영어에 익숙해지면서 한국어를 잊어버린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어의 능숙함이 영어의 서투름을 유발하는 것 같이 느껴지고 다른 반 친구들보다 어수룩한 영어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어가 서툰 것이 싫은 아이들일수록 영어를 더 빨리 흡수하고 그 속도만큼 한국어 사용 빈도를 줄이게 된다. 그리고 한동안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문장을 구사하다가 결국 미국인 같이 발음하는 한국어를 사용하게 되거나 알아듣기는 하지만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어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런 와중에 영어가 늘어도 한국어를 여전히 잘 구사하는 아이들은 두 언어를 균형 있게 사용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여 상황과 필요에 따라 각각의 언어를 유창하는 구사하는 실력을 갖추며 성장하게 된다. 그런 이들에게는 영어만 잘하거나 한국어만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 없이 어느 쪽도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과 두 언어를 지켜오며 성장하기까지 가져온 소신이 있다. 미국인으로 살지라도 자신의 뿌리가 한국에 있다는 분명한 인식과 두 언어에 대한 존중이 영어와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실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이 된다.


2.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

한국어를 곧잘 하던 아이가 금세 영어에 집중하는 되는 경우 그 아이들은 미국에 사는 자신은 '그냥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다양한 인종들이 있지만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미국인들의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다 보면 당연히 아이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지는 시기를 맞게 된다. 영어가 서툰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기도 하고 자신의 위치가 한국과 미국 어디쯤인지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정체성을 세워가는 십 대에 접어든 어떤 한국인 자녀들은 자신을 미국인으로 규정짓고 자신을 그들과 다르게 보이게 하는 한국의 뿌리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래서 완전히 원어민과 같은 영어를 구사하고 싶어 한국어를 사용하는 상황을 피한다.

반면에 어떤 자녀들은 정체성의 혼란 시기를 빨리 극복하거나 자신이 한국에 뿌리를 둔 미국인임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인식하려 노력한다. 이들은 자신을 그저 미국인이라 여기지 않고 한국계 미국인(Korean- American)이라고 분명하게 인식한다. 물론 미국에서 성장한 만큼 매우 미국인스러운 성향과 사고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자신이 한국에 속한 미국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이들은 자신을 소수민족(minority)이라는 스스로 만든 열등감에 가두지 않고 당당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사회의 일원이 된다.


3. 한국어와 한국에 대한 관심

과거의 이민자 부모들은 자녀들이 한국어의 굴레에서 벗어나 미국인 같은 영어를 구사하기 바랐다. 우리 반 한국계 미국인 학생은 부모가 집에서 한국어를 쓰면 밥을 안 주기도 했을 정도로 혹독하게 영어에 매진하도록 했다고 한다. 부모의 미국 영어 교육열은 결국 마흔이 넘은 아들이 뒤늦게 한국어를 배우러 다니게 만들었다. 물론 들은 가락과 살아온 바탕이 있어서 같은 반에 있는 미국인들보다 훨씬 빨리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퇴근 후 따로 시간을 내어 한국어를 배우는 그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미국에 살지라도, 영어가 완벽할지라도 한국어를 한국어처럼 구사하는 한국계 미국인을 더 바람직하게 본다. 지혜롭고 현명한 부모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자녀들의 한국어에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 한국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고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자녀들은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설사 흔들리는 시기를 지나더라도 3번 한국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일하는 한국어 센터에는 간혹 철이 들어 뒤늦게라도 스스로 자신의 뿌리와 부모나 조부모의 고향인 한국에 대한 애틋함을 가지고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 연예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한국계 미국인들도 있다.

한류 물결과 BTS (방탄소년단)의 역할 덕분에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계 미국인 아이들의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도 높아져간다. 그 때문에 한국어를 소원하게 여기던 한국계 아이들이 다시 한국어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 실력이 회복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한국문화의 열풍이 한국계 미국인들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으로 이어지는 현장을 미국의 한국어 교육현장에서 마주할 때면 한국어 교사로서 뿌듯한 마음이 들곤 한다.




일전에 BTS에 빠진 미국 친구가 한국어에 서툰 자기 아이에게 노래 가사에 대해 물었는데 잘 모르자 "너는 왜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못해?"라고 했다며 아이가 창피해했다는 이야기를 지인을 통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지인에게 늦지 않았으니 아이를 한국학교나 한국어 센터에 보내라고 권했다.


10살에 미국에 온 우리 딸은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했으므로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닌데 한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한국 드라마와 한국 문화에 빠져 산다. 주로 어울리는 친구들은 한국 친구들이고 다들 한국 연예인과 한국 패션에 관심이 많다. 반면에 7살에 미국에 와서 한참 십 대를 지나고 있는 아들은 한국어를 계속 배우라는 내 말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들의 한국계 친구들은 영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미국에서 영어만 잘하면 된다며 한국어 교사인 엄마의 마음을 긁곤 한다. 함께 한국 예능을 보면 같이 웃음을 터뜨릴 줄 알지만 한국 뉴스를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자리를 뜨는 아들을 볼 때면 2번 한국인이 되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일기도 한다.


내가 생각지도 않게 한국에서 뚝 떨어진 미국에 살고 있는 것처럼 내 아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게 될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앞으로 미국이나 다른 어디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살지라고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어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한국어는 한국어답게 말할 수 있는 3번 한국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나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아이들에게 일부러 한국 소식을 전하고 열심히 한국어로 대화한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한국어밖에 없으므로.




내 아이들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계 아이들이 모두 3번 한국인으로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국적이야 어떠하든 자신의 뿌리가 한국에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한국어를 한국어답게 말하는 한국의 자녀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살더라도 한국인들은 한국어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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