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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06. 2021

미국에서 교통 딱지를 끊으면 벌어지는 일

한국의 교통 딱지는 대단한 딱지도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실수,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사소한 사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벌인 돌이키고 싶은 잘못.

완벽한 사람이지 못해서 만들어내는 어처구니없는 판단의 오류.

그로 인해 계획과 소망이 어그러지면 나에 대한 실망감이 몰려옵니다.

고요하던 마음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나 자신이 싫다 못해 미워지기도 하는 순간들.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대로 땅 속으로 꺼지고 싶다.

삼 년 전 이맘때였다. 교통 딱지를 끊고 이대로 땅속으로 꺼져서 사라져 버리거나 세상에 종말이 오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여러 날을 보내야 했던 것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고 봄햇살을 맞으며 기분 좋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으나 남의 일이려니 생각했다. 주변 차들의 속도에 맞춰 잘 달리고 있었고 신호도 위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 오토바이가 내 차 뒤 범퍼에 코를 박을 듯 쫓아오며 나를 향해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갓길에 차를 세우자 검은색 선글라스 넘어서도 느껴지는 날카로운 눈빛의 경찰이 근엄한 목소리로 속도위반을 했다며 면허증을 요구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혼이 나간 얼굴로 옆 차들과 속도를 맞춰 달렸으며 끼어들기도 안 했다고 어눌한 영어로 주절대는 나를 일절 무시한 채 경찰은 단호하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경찰이 떠난 뒤에도 어벙해진 채 있다가 불법 정차로 또 딱지를 끊을까 봐 시동을 걸었지만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내 머릿속은 집에서 딱지를 끊기까지의 운전 상황만 반복 재생된 비디오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친구들과는 웃으며 서로의 딱지 일화에 깔깔거렸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남편에게 딱지 끊은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리고도 그 후 며칠 동안 순간순간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얼마 뒤 나온 속도위반 범칙금은 예상대로 400불가량이나 되었다. 한화로 대략 45만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하소연이라도 해보려고 법원까지 갔다가 잘못하면 괘씸죄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는 통역사의 충고에 마음을 접고 집에 돌아와서 범칙금을 낸 후에도, 그 해 여름이 지날 때까지 교통 딱지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감정적 손실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그 후 한 동안을 운전대를 잡기가 싫어서 가능하면 운전을 안 하기도 했으나 대중교통이 불편한 이 곳에서 운전은 피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운전대를 잡곤 했다.


교통 딱지(交通딱지) :  교통순경이 교통 법규를 어긴 사람에게 주는 벌금형의 처벌 서류.
                                                                                                                <네이버 국어사전>


사실 3년 전 교통 딱지가 처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교통 범칙금을 한 번도 안 내고 살았건만, 남의 나라 미국에 와서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비싼 교통 범칙금을 이미 두 번이나 냈다. 근래 한국의 교통 범칙금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미국의 교통 범칙금은 어마어마하다. 걸리기만 하면 30, 40만 원이 기본인 미국에서 교통 딱지를 끊고 나면 당장 운전을 그만두고 싶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이들 학교 주차장에서 잠깐 반대편 차선으로 들어섰다가 숨어있던 경찰에게 걸려 200불가량되는 벌금을 내기도 했고, 딸이 고등학교 입학하고 이틀 째 되던 날 아이들 픽업하려고 늘어선 차들 사이로 꼼수를 부리며 불법 유턴하는 차를 보고 따라 하다가 300불 가까이 되는 벌금을 내기도 했다. 두 번째 딱지를 뗄 때, '앞에 불법 유턴하는 차를 보고 따라한 건데 왜 나만 잡았냐'라고 하소연을 하자 시커먼 헬멧을 쓴 거대한 몸집의 교통경찰은 "어부가 바다의 모든 고기를 잡는 것은 아니다"라며 냉정하게 딱지를 던져놓고 떠나버렸다. 아마도 그 경찰은 내 앞서 불법 유턴한 차를 잡으려고 오다가 뒤따라 불법 유턴하는 나를 잡았을 게 분명하고 먼저 불법을 저지른 그 운전자는 내 덕분에 교통딱지도 떼지 않은 채 유유히 아이를 픽업하고 떠났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속이 상하고 분한 마음이 들어 며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이력이 있었음에도 세 번째 교통 딱지를 끊은 뒤 나의 가슴앓이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전 두 번의 한심했던 잘못까지 다시 되새김질되었다. 잘못을 하고 교통딱지를 끊은 것을 억울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범칙금이 워낙 비싸서 가정 경제에도 타격이 컸기에 어이없이 몇십만 원이 되는 돈을 허공에 날려버린 나의 순간적인 판단 오류와 실수에 마음이 정말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윤동주 시인 '서시'의 한 구절이 마치 내 마음을 노래한 것인 양 떠오르더니 그 시구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늘을 우러러, 가족들을 향해, 특히 남편에게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해서 지나는 바람에도 순간순간 마음이 괴로웠다.

어찌 보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누구에게 떼였다고 생각하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나에게 없던 돈으로 여기고 덮을 수도 있을 텐데, 이상하게 교통 딱지 범칙금으로 낸 돈에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이 속이 쓰렸다. 아무리 내가 낸 범칙금이 미국이란 나라에 낸 기부금이라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당장 운전을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불편한 대중교통시설을 가진, 어마어마한 벌금만 먹이는 미국이 몹시 싫어졌을 뿐이다.   


교통 딱지를 떼는 교통경찰에게는 숨어 있는 뿔이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약이라고 딱지를 떼인 도로를 지날 때면 누가 아물어가는 딱지를 떼어내는 것처럼 소름이 돋을 만큼 마음이 따갑고 가슴에 바위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던 것도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흐려졌다. 땅속으로 가라앉고 싶던 기분도, 당장 운전을 끊고 싶던 기분도 일상의 틈새 사이로 점차 사라졌다. 세 번의 교통 딱지를 떼고 어마어마한 교통 범칙금을 지불한 후, 나는 더 자동차 계기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신호등의 신호를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전을 하고 지나다가 교통경찰에게 잡혀있는 운전자를 보게 되면 짠한 마음으로 그 운전자의 행운을 빌어주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딱지를 끊은 그 모든 상황에 위법을 저지른 이는 나 하나만이 아닐 것이고 내가 그날 여럿 중에 교통경찰의 낚시에 걸린 재수가 몹시도 없는 물고기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저지른 어떤 실수 중에 나는 운이 좋게 빠져나갔지만 어떤 불쌍한 이들은 교통경찰의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 신세가 되었을 수도 있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지금 생각하면 나라의 아픔과 인생의 고뇌를 노래한 윤동주 시인에게 미안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도 나지만, 교통 딱지를 끊고 수시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서시'였다. 형언할 수 없는 아픔과 삶의 괴로움을 노래한 위대한 시인에게 부끄럽지만 교통 딱지를 끊고 그의 시를 떠올릴 만큼 오래도록 괴로웠고 나와 같이 딱지를 끊고 땅속으로 꺼지고 싶은 심정의 이들을 긍휼히 여기게 되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그런 모양이다.

누구에게나 윤동주의 '서시'를 읊게 되는 인생의 고비가 서너 번씩은 있을 것이고 각자에게 주어진 괴로움의 무게와 모양은 다르겠지만, 그 괴로움을 위로받고 희망을 꿈꾸게 하는 특별한 것.

미국에서 딱지를 끊고 땅 속으로 꺼지고 싶은 한국 아줌마에게 이십 년도 훨씬 전에 배운 시를 불현듯 떠올리게 만드는 신기한 것.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도 품어주며 그럼에도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걸어가려 했던 시인의 노래를 내 삶의 노래로 삼아보리라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아름다운, 그런 것 말이다.


오늘도 크고 작은 바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삼 년 전, 교통 딱지가 주는 괴로움으로 문득 이 시를 떠올린 이후, 종종 중얼거리곤 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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