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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Feb 03. 2022

네 얼굴 보기가 귀한 시대

마스크를 벗으니 예쁘다는 아이 덕분에 기분 좋은 날이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노메이크업의 맨얼굴로 외출한 기분이 들 정도로 마스크에 익숙해졌다. 갑자기 노 마스크의 얼굴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들킨 날,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가 창궐하던 2020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특수학급의 보조교사 수를 줄이는 교육구에 의해 새 학교로 반강제 전근을 당했다. 새 학년 첫날, 마스크로 무장한 채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반 아이들을 만났다.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열심히 웃으며 어눌한 영어로 인사를 하는데 내 웃는 얼굴을 마크스가 가린 탓인지 아이들은 마스크 밖으로 나온 두 눈을 껌뻑이며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처음에는 제법 긴장하며 마스크를 열심히 쓰던 아이들은 곧 본성을 드러내며 마스크를 씹거나 빨기도 하고 물 먹는다고 벗었다 숨쉬기 시간을 갖는다고 벗었다 썼다를 반복했다. 그런 아이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정말 열심히 마스크를 썼고 아이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처음에는 답답하던 것이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화장을 하지 않은 채 집 밖에 나선 기분이 들만큼 마스크가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유난히 별난 우리 반의 남다른 아이들도 제법 마스크의 불편함에 익숙해질 정도로 마스크와 함께 한 시간이 길어져 간다. 여전히 마스크와 일상을 공유하지만 바이러스와 살아온 시간의 익숙함 탓에 공포 체험 같았던 초반의 두려움은 옅어진 모양이다. 그리고 두려움이 옅어진 사이로 답답한 마스크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나 충동이 드러나는 것 같다. 조심하고 있지만 처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교실 밖에서는 잠깐씩 마스크를 뺏다가 잊기도 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챈 것이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아이들이 야외 점심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감독 겸 감시하는 중에 나무 늘보라는 별명을 가진 에디가 소리쳤다.

"Ms. P, your face is pretty!"

에디는 공부만 하려고 하면 급작스럽게 피곤하거나 용변이 마려운 아이다. 반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아이가 문어처럼 책상에 늘어져 있는 것을 채근하여 글씨를 쓰게 하거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점점 뼈가 사라져 흐물거리는 것 같은 몸을 질질 끄는 것을 재촉하여 교실로 데리고 돌아오다 보면 진이 빠진다. 그럴 때 에디의 게으른 모습은 종일 나무에 매달려 잠을 자며 슬로비디오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나무늘보 같다. 그렇게 늦장을 피우는 녀석이 쓸데없는 일에는 눈치코치가 보통 빠른 게 아니다.

잠깐 물을 마시려고 마스크 뺀 것을 목청이 엄청 큰 에디에게 들켰다.

"마스크 없는 네 얼굴 처음 봐. 너는 예쁜 사람이었구나!"

더 커진 에디의 외침에 수선을 피우며 점심을 먹던 남다른 아이들의 눈이 나를 향했다. 마스크를 다시 쓰려는데 에디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눈물이 찔끔 나게 웃는 나를 보며 우리 반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라 웃더니 곧 다시 수선스러운 점심시간 모드로 돌아갔다.

"내가 예뻐? 고마워, 에디."

다시 마스크 장착을 하고 다가가서 인사를 하자 에디는 까불거리며 히히히 웃었다.

누군가에게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이 언제인가? 아마도 이십 년도 훨씬 전에 남편과 연애하던 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에디 덕분에 오랜만에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오십이 코앞인 맨얼굴의 아줌마가 예쁠리는 없겠지만 마스크 없는 내 맨얼굴이 마스크에 질린 에디에게 더 친근하게 보였던 탓이리라 생각했다. 반갑고 편안한, 마스크 없는 얼굴을 어휘력이 약한 에디는 예쁘다고 표현한 것이겠지만 우렁찬 에디의 목소리로 들은 예쁘다는 말이 좋았다.     


매일 만나는 아이들이건만 교실 안에서 마스크를 쓴 채 눈만 껌뻑이는 아이들이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마스크를 벗고 맨얼굴로 돌아다니는 것을 마주하면 그 아이가 새롭게 보인다. 앞니가 빠진 것도 확인할 수 있고 웃을 때 얼굴이 어떻게 빛나는 지도 볼 수 있다. 못된 장난을 치고 싶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친구를 괴롭힐 때 눈과 입의 모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눈치챌 수 있다. 농구공이 골대에 들어갈 때 눈뿐만 아니라 입이 얼마나 활짝 웃는지, 구름사다리를 건널 때 미간뿐 아니라 입술에 얼마나 힘을 주는지 볼 수 있다. 마스크를 벗어난 아이들의 얼굴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귀여운지, 얼마나 장난스러운지 그제야 알 수 있다.

마스크 안에 숨겨진 이 아이의 미소는 저 햇살보다 더 빛날 텐데...

예상보다 긴 바이러스와 공생의 시간은 한 사람의 얼굴을 스스럼없이 볼 수 있던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만큼 마스크를 쓴 모습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기가 귀한 시대에 눈과 코와 입이 함께 웃고, 눈과 코와 입이 함께 찡그리는 아이들 얼굴을 마주할 때면 진짜 아이들을 만나는 것 같다. 마스크에 가려진 귀여운 코와 삐죽이는 입을 보지 못한 채, 씰룩대는 코와 목구멍까지 보여주는 커다란 웃음을 보지 못한 채 깜빡이는 두 눈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진짜 아이들의 얼굴이 있다.


예쁘다는 말을 들을 날이 다시 올 거라 생각지도 못한 날, 마스크를 벗었다고 예쁘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오늘은 눈만 내놓고 있던 아이들이 숨구멍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벗은 채 운동장에서 뛰노는 속에 서서 환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진짜 얼굴을 어디서나, 함부로, 마구 볼 수 있는 날을 꿈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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